[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8>] 논점 흐리기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68화 논점 흐리기
“술만 문제입니까?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건 많이 있어요. 담배 있죠. 이혼을 조장해서 가정을 파괴하는 간통 있죠. 아, 간통죄는 폐지되었군요. 난 이것도 맘에 안 들어요. 그럼 전 국민 바람피우기 운동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뭡니까? 사회자님. 오늘 시간되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간통죄 폐지 한번 다뤄봅시다.”
음주철의 제안에 사회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금주성이 한 마디 하려고 마이크 쪽으로 입을 대다가 김석규의 제지를 받고는 원위치하는 광경도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에이즈나 성병을 옮기는 성매매도 사실 심각한 문제죠. 그럼 이런 것도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해 줘야 하나요? 성매매를 안 하겠다, 성매매 불참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면 세제 혜택을 주고 성병이 걸리면 의료비·생계비를 지원해주고, 이건 코미디예요. 이런 법은 세상에 없어요.”
음주철이 카운터펀치를 날린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상대 패널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 할 말 없죠? 하는 표정을 짓고는 상체를 뒤쪽으로 한껏 제친 거만한 태도였다.
“술은 대중적인 것이라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성매매는 소수의 일탈이라 파급효과가 적기 때문에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봐요.”
김석규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럼 알코올중독도 대중적입니까? 알코올중독도 소수에 불과하잖아요.”
주정한 교수가 곧장 받아쳤다.
“현재 150만 가량이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중독자로 추정되고요.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도에 알코올사용에 의한 정신장애 진료 실인원이 10만 명이나 됩니다. 이래도 알코올중독이 대중적이 아닙니까?”
금주성 의원이 다그치자 주정한 교수가 할 말을 잃고 자료를 뒤적이는 척하며 딴전을 피웠다. 금주성 의원이 확인 사살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알코올중독이 대중적이냐 아니냐는 차치하고 현행법상 형사처분 대상인 성매매를 음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죠.”
“좋습니다. 술은 기호식품이죠. 그리고 음주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다 떠나서 과음이 해롭기 때문에 규제를 하자고 하면 그럼 과식은 어떡해야 할까요? 과식은 비만의 원인이고 비만은 현대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질병입니다. 과식도 특별법을 만들어 규제해야 할까요?”
음주철 의원이 방향을 틀어 질문했다. 방청석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석규도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상대 패널은 진지하고 수준 있는 토론을 원하는 게 아니라 어떡하든지 철저하게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가 싶어 정말 비애를 느낍니다. 과음으로 양산되는 알코올중독자로 인해 가정이 풍비박산난다는 건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에 알코올중독자가 있으면 그 구성원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경제적 고통과 폭력에 의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 이들을 외면하고 단지 술 경기가 경제지표에 호재가 된다고 음주를 방치한다면,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기반으로 경제를 살린다면 그게 국가가 할 일일까요?”
김석규의 호소에 방청객들도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주정한 교수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며 분위기 흐리기에 나섰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합니다. 술은 규제한다고 해서 규제되지도 않고 또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아요. 그건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이 잘 말해주고 있죠. 음주문제 때문에 아예 금주법을 제정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만 키워준 꼴이 되었죠. 결국 13년 만에 금주법을 폐지했는데요. 술은 강제로 막으면 음지로 숨어들어서 더 큰 사회문제만 일으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술을 아예 못 마시게 완전 금주를 추진하자는 게 아니라 과음하지 않게끔 잘 관리하자는 거죠. 또한 금주해야 할 대상자는 금주를 유도하고요.”
“과음하지 않게끔 관리하자는 게 너무 추상적인 것 같지 않나요?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음주를 일일이 통제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겁니까.”
“국민의 음주를 관리한다는 게 따라다니면서 그만 마셔라,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과음하지 않고 절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에 술꾼들만 있으면 당연히 과음하게 되고, 반대로 술 못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연히 술과 멀어지잖아요? 그처럼 술 마시지 않는, 절주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게 금주특별법의 취지입니다.”
“잘 될까요? 만약 금주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칩시다. 그러면 유사한 문제가 대두될 시엔 또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나중엔 감당할 수가 없어요.”
“감당할 수 없다면 국가가 아니죠. 국가는 사회적인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할 의무가 있어요. 그걸 외면하는 국가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죠!”
김석규가 순간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뭐요? 차라리 국가가 없는 게 낫다니! 당신 반국가적인 발언이야!”
음주철 의원이 드디어 불순한 꼬리를 잡았다는 듯 탁자를 치며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사회자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요즘 금주운동으로 온갖 유언비어가 양산되고 있는데 금주운동의 대표 격인 김석규 씨는 조금 전 국가를 부정하는 아주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없는 게 차라리 낫다니요.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이 들으면 지하에서 통곡을 할 그런 노릇입니다.”
주정한 교수가 혀를 끌끌 차며 나무라듯 말하자 흥분을 가라앉힌 음주철 의원이 뒤이어 발언했다.
“김석규 씨의 강연과 저작으로 촉발된 금주운동은 순수함을 잃고 정치투쟁으로 변질되었어요.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이 금주파와 음주파로 양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건 전적으로 김석규 씨가 책임져야 할 문젭니다.”
“김석규 씨가 뭘 책임져요. 금주운동을 정치문제로 비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정부여당 아닙니까? 금주운동이 부담스러우니까 방송에서 퇴출시키고 어쩌고 하면서 문제를 키운 건 바로 당신들입니다. 똑똑히 아세요.”
금주성 의원이 삿대질을 하며 음주철 의원을 겨냥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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