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2022년 단 하나의 물건을 고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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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전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인파에 휩쓸려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반가사유상을 다시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전 같은 특별전시는 돈을 받지만 일반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오전에 상설 전시를 보고 오후에는 합스부르크 특별전을 관람했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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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전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인파에 휩쓸려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반가사유상을 다시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전 같은 특별전시는 돈을 받지만 일반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아직 중앙박물관을 한 번도 안 가본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주말은 상당히 붐빌 수 있으니 평일에 시간을 내어 가보기를 권한다. 시간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워낙 큰 박물관이라 이 짧은 지면에는 소장품 제목도 다 적지 못할 테니 몇 가지만 적어본다.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로 꼽히는 ‘사유의 방’ 이야기부터. 1년쯤 전 전시 초기에는 관람객이 너무 붐벼 생각할 틈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한적한 분위기에서 사유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소장품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어둡고 고요한 공간에서 마주한 부처님은 속되기 이를 데 없는 중생에게 감히 문자로 옮길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해주었다.
놀라운 경험을 안겨준 사유의 방에서 나온 뒤, 다른 상설 전시도 둘러보았다. 좋은 책이나 영화가 그렇듯 좋은 박물관은 갈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선물해준다. 이번에 눈에 띈 소장품은 ‘임진록’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조선시대의 역사소설이라는 정도로 간단히 배우고 넘어가는 이 작품은 누가 처음 썼는지 알 수 없고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이본이 만들어진 전쟁 설화에 가깝다. 실제 역사와 달리 우리가 번번이 일본군을 대파하는 허구적 기록이 이어지고 당시 인물들의 영웅적 면모가 신화처럼 과장되게 묘사돼 있다. 요즘으로 치면 판타지 소설이다.
웹소설의 여러 장르 중 하나인 ‘현대 판타지’는 다양한 하위 장르를 두고 있다. 멀티유니버스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은 ‘이세계(異世界)물’이라고 부르고, 현실과 게임이 뒤섞이는 이야기는 ‘게임판타지’,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을 가진 이야기는 ‘회귀물’로 분류한다. 최근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이 회귀물의 대표적인 예다. 소위 ‘순수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은 이런 작품들을 유치하다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당치 않은 소리. 원래 우리 문학에는 판타지의 뿌리가 있다. 조선시대 소설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 ‘구운몽’부터가 그렇다. 거기에 ‘대체 역사물’ 장르로 분류가 가능한 임진록까지 내 눈으로 확인했다. 당시 소설 중에 회귀물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양반집 막내아들’ 같은?
오전에 상설 전시를 보고 오후에는 합스부르크 특별전을 관람했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더라. 관람기가 워낙 많으니 참고하시고, 전시관을 나올 때 관람객을 배웅해주는 마지막 소장품 얘기를 해주고 싶다. 고종 황제가 오스트리아 왕가에 선물로 보낸 갑옷이 출구 앞에 떡하니 걸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작품이 다시 우리나라로 초대된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수백 년 뒤 중앙박물관에 2022년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는 어떤 물건이 전시될까. 손흥민 선수가 월드컵에서 썼던 안면보호대? 이태원참사 희생자의 유류품? 연말에 한해를 돌아보니 별로 한 일도 없이 세월만 흘러간 헛헛한 기분이 든다면, 중앙박물관 나들이를 추천해드린다. 세월과 역사 속에서 내 존재를 가늠하기에 이만한 경험이 없다. 독자님들 모두,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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