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산업계 결산]쏟아진 악재에 가슴졸인 기업들

유현석 2022. 12. 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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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교란
美·中 대결구도에 IRA 변수
반도체 주춤·원자재값 급등
정책·지정학적 리스크 여전

[아시아경제 유현석 기자, 정동훈 기자, 문채석 기자] 기대감을 잔뜩 머금고 출발했으나 걱정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산업계가 올 한해를 겪으며 느꼈을 법한 심정이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따라 지난해 연말께부터 불거졌던 경기회복 기대감은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금세 사그라들었다. 러시아 침공으로 부각된 지정학적 리스크는 코로나19에 이어 또다시 우리가 의지하는 글로벌 공급망 기반이 예상보다 취약하다는 걸 일깨웠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돈줄을 죄면서 기업 어려움은 한층 가중됐다. 녹록지 않은 여건인 만큼, 국내 산업계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며 내년을 대비하는 모양새다.

◇상수된 공급망 교란…美·中 대결구도 여전= 글로벌 제조업이 탈 없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호혜로운 자유무역’이라는 전제를 전 세계 경제주체가 골고루 공유해야 한다. 20세기 당연하게 여겼던 이러한 전제는 흔들렸다. 코로나19가 의도치 않은 변수였다면 러시아 침공이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은 다분히 의도가 담긴 변수였다. 여기에 코로나19 재확산과 중국 방역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공급망 교란은 연중 상시 이벤트가 됐다.

먼저 에너지·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중국에 설비투자를 집중했던 기업은 혼비백산 수준으로 ‘탈(脫)중국’을 외쳤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미·중 양국이 관세를 올리고 희토류 등 자원무기화를 시작할 때부터 비롯됐는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수사(修辭)나 강도 측면에서 한층 심화됐다. 미국은 제조업 전반에서 기초로 쓰이는 반도체 장악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칩4(Chip4·한국 미국 일본 대만) 협의체 결성을 주도했다.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지만, 우리 반도체의 위상은 다소 주춤했다. 소비 감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지고 재고가 쌓이는 악재를 맞았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2위 자리를 일본 업체에 내줬고, 삼성 파운드리 사업은 1위 TSMC와 격차가 벌어졌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로 소비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급락했다.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올해 3분기 기준 전년 대비 각각 31%, 60% 빠졌다.

원자잿값 급등도 내내 산업계를 괴롭혔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40달러 수준까지 올라갔고 철광석·구리·리튬·곡물 등 기초 원자재 가격도 치솟았다. 자연스레 생산비용이나 소비자 부담이 늘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복합 위기 상황에서 기업은 신규 투자를 철회하거나 재검토하는 등 잔뜩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두 차례 불거진 화물연대 파업도 산업계에 적잖은 상흔을 남겼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진행한 파업으로 철강 등 5대 업종에서 파악된 피해 규모만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앞서 올해 6월 파업 당시 손실은 2조원대였다. 연초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뒷말이 나온다. 실질적인 예방보다는 애먼 처벌에 집중한다는 비판이 따랐다. 시행 후 지난달 말까지 10달간 발생한 중대재해는 533건, 숨진 이는 542명에 달한다.

◇정책·지정학 리스크 여전…움츠린 재계= 인플레 감축법은 당초 내년 1월 전면 시행에서 3월로 일단 늦춰진 상태다. 국내 주력산업인 자동차나 2차전지 분야 영향이 불가피하다. 우리 정부가 기업은 적용 유예나 예외 조항으로 수혜를 바라고 있으나 현지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터라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유럽판 인플레 감축법으로 꼽히는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CRMA)도 내년 시행을 앞뒀다. 서방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도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갈등이 해소는커녕 갈수록 복잡하게 꼬이는 모양새다.

여기에 러시아와 유럽의 갈등, 중국과 대만의 갈등 심화 등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반기부터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은 재계 전반에 번질 가능성이 높다. 경영 불확실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대기업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상경영을 선언하는 등 전방위 대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진행 중인 미·중 간 기술패권경쟁에 따라 우리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5월 한국·일본·호주·인도 등 12개국과 함께 경제 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10월 첨단 반도체 등의 중국 수출 통제 방침을 발표했다. 그간 말로 했던 미국의 중국 견제가 현실 제도로 작동하면서 우리 기업도 난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업종별로는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도 첨단기술을 활용한 친환경 사업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법·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대기업이 중고차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점도 소비자 후생에 큰 파급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드라이브를 거는 노동개혁이 노사관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끼칠 영향을 두고서도 다양한 전망이 나온다.

엔데믹 본격화에 따라 재계 총수의 해외 발길도 보다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연초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3을 비롯해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등 글로벌 이벤트, 전 세계 사업장의 현장경영도 올해보다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본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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