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노신사가 결국 향한 곳

공병선 2022. 12. 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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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 앞 이태원 광장, 무스탕을 입은 한 노신사가 당황한 듯 두리번거렸다.

좁은 광장 안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와 보수단체 신자유연대의 천막이 동시에 자리 잡은 것.

분향소 자원봉사자와 신자유연대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이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신자유연대가 이태원 광장에서 내놓고 있는 말들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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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 앞 이태원 광장, 무스탕을 입은 한 노신사가 당황한 듯 두리번거렸다. 좁은 광장 안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와 보수단체 신자유연대의 천막이 동시에 자리 잡은 것. 한쪽에선 시민들이 흰 국화꽃을 헌화하는 반면 신자유연대 쪽은 둘러싸고 있는 경찰 틈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지켜봤다. 분향소 자원봉사자와 신자유연대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이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신자유연대가 이태원 광장에서 내놓고 있는 말들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태원 참사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이재명 구속' 또는 '문재인 구속'을 외쳤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윤석열 잘한다'고 적힌 현수막도 달았다. '2021년도 사망자 31만7680명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보면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다.

신자유연대의 표면적 이유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정치다. 윤석열 정부를 향할 책임론을 희석하는 게 이들의 제1 목표가 아닐까. 지난해 사망자 수나 문재인 정권 당시 사고를 당했던 대성호·창진호 사망자 및 실종자 등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태원 참사는 158명이 숨진 안타까운 일이지만 모두가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국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마다 가지는 생각은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자유의 영역이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는 분향소 앞에서 굳이 그런 말들을 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자식들을 잃은 유가족들도 찾는 곳인데 말이다. 지난 19일 쏟아지는 2차 가해에 유가족 2명은 실신하기도 했다.

두리번거리던 노신사는 분향소로 걸음을 향했다. 그는 말없이 흰 국화를 손에 쥐고 영정사진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는 사이 '이재명 구속'이 적힌 현수막은 분향소 옆에서 찬바람에 휘날렸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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