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스토리] ‘멋진 30대 언니’ 이정민
드라이버 입스 5년 7개월 만에 극복 ‘인간 드라마 주인공’
묵묵히 한 길만 가는 고수 "30대 언니들의 선전 기대해"
[아시아경제 노우래 기자] ‘멋진 언니.’
이정민이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후배들이 가장 좋아하는 우상이다. 임희정도 대선배인 이정민만 보면 미소부터 나온다. 이정민은 플레이 스타일이 호쾌하고, 동료들을 아끼는 마음도 남다르다. 성격이 좋다. 선수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도 들어준다. ‘골프계에서 적이 없는 유일한 선수’라는 평가다.
2015년 6월 한국여자오픈 4라운드에서 박성현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우승 경험이 없던 박성현이 막판 급격히 흔들리자 "캐디와 얘기하며 긴장을 풀어보라"고 조언했다. 박성현은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정민의 ‘황금 매너’는 경기가 끝난 뒤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30대에 접어든 이정민은 지난주 베트남에서 승전보를 전했다. 2023시즌 두 번째 대회 PLK 퍼시픽링스코리아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2010년 KLPGA투어에 데뷔해 291개 대회 만에 거둔 역대 14번째 통산 10승째다. 국내 다승 순위도 공동 11위에 올랐다. 이정민은 이제 KLPGA투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증인이 됐다.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대표 출신인 이정민은 미국의 아마추어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폴로 주니어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루키 시절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순조롭게 프로에 발을 내딛었었지만 첫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드라이브 샷 '입스(Yips)'에 걸렸다. 2년 6개월 동안 무관에 시달리다가 2012년 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이후 2014년 2승 , 2015년 3승, 2016년 1승 등 꾸준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고진영, 전인지 등과 함께 ‘빅 3’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두번째 시련이 닥쳤다. 2016년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2017년 그린 적중률이 80위로 뚝 떨어졌다.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다. 샷 난조에 허리 부상까지 겹쳤다.
그러나 이정민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성적이 나지 않는다고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5년 7개월 만에 9승째를 수확했고, 다시 1년 2개월 만에 베트남에서 우승 트로피를 추가했다.
이정민은 분석하고 연구하는 선수다. 올해 평균 퍼팅이 111위로 부진하자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지난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스티븐 스위니 코치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김규태 코치와 진행한 퍼팅 세미나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정민은 "퍼터 연구를 많이 한 게 베트남 대회에서 효과를 봤다"고 웃었다.
이정민은 ‘의리녀’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믿고 간다. 매니지먼트사인 스포티즌과는 2012년부터 10년 동안 함께 하고 있다. 미즈노골프와는 8년째, 후원사인 한화큐셸과도 5년째다. 이정민은 목표가 특이하다. ‘몇 승을 하고 싶다’, ‘상금왕을 하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한발 한발 걷다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자세다.
이정민은 13년째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20대 초반 선수들이 투어를 주름잡고 있는 상황에서 ‘언니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시즌 30대 우승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회 코스가 길어지고,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무서울 정도다. 매주 강행군을 펼쳐 체력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 30대 선수들은 시드 유지도 쉽지 않다.
이정민은 ‘30대 가뭄 시대’에서 롱런을 하겠다는 각오다. "지금 투어에서 뛰는 친구가 2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정민은 "새로운 방법을 계속 시도하겠다"며 "매일 매일 노력하면서 살겠다. 선수 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부상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내년에도 씩씩한 발걸음으로 필드를 누비는 ‘멋진 언니’ 이정민의 모습이 그려진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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