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전격 용퇴…신한금융 회장 면접장서 무슨 일 있었나

유제훈 2022. 12. 2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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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 의지 뚜렷했는데…하룻밤 새 용퇴 '반전'
외압설·비토설 등 횡행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결전의 날'이었던 12월8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중구 신한금융그룹 본사 1층. 신한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면접을 앞두고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자인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과 만난 후보자들은 최종 면접에서 강조할 '비전'을 제시했다. 임 사장은 "변화와 혁신"을, 진 행장은 "100년 신한을 위한 지속 가능 경영"을 언급했다. 조 회장은 조직개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조직이 커진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추위가 열렸던 신한금융 본사 16층 회의실. 성재호 회추위원장(사외이사)의 모두발언이 끝나고 후보자 면접이 시작됐다. 당초 면접순서는 가나다 순으로 임 사장, 조 회장, 진 행장 순이었다. 그러나 면접 순서는 임 사장, 진 행장, 조 회장 순으로 변경됐다. 조 회장 차례에서 그가 "내가 마지막에 하겠습니다"라고 해서 진 행장이 먼저 프레젠테이션(PT)를 진행했다. 진 행장의 PT가 끝나자 조 회장은 전격 용퇴의사를 밝혔다.

올해 연말 금융권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변'이었다. 조 회장은 각종 사법리스크를 벗은 데다 '리딩뱅크' 탈환이란 성적표를 낸 만큼 3연임이 유력하다는 게 회사 안팎의 전망이었지만 그는 최종면접 당일 돌연 퇴진을 선언했다.

조 회장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나가는 것과, 할 수 없이 나가는 것은 다르지 않느냐'며 용퇴를 개인적인 결단이라고 설명했지만 금융권에선 석연찮은 이번 리더십 교체를 두고 정권 외압설, 대주주의 비토설 등이 힘을 얻고 있다. 조 회장을 기점으로 BNK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리더십 교체를 앞둔 금융사에도 긴장감이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8일 열린 신한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및 이사회 직전까지 회사 안팎에선 조 회장의 3연임을 유력하게 점쳤다. 3분기 누적 4조300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해 숙적 KB금융지주를 제치고 '리딩뱅크'로 올라선데다, 신한라이프·신한EZ손해보험 인수로 종합 금융사로서의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성공한 까닭이다.

복병처럼 조 회장을 옥죄던 사법리스크도 하나 둘씩 해소됐다. 라임자산운용 펀드환매 사태와 관련해선 지난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최종 '주의' 처분을 받아 중징계를 면했고, 지난 6월엔 대법원으로부터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무죄 판결을 받아 사법리스크도 털어냈다. 재일교포 대주주들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 측면에서 외풍(外風)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또한 조 회장의 3연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였다.

조 회장 역시 연임 의지가 분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은 회추위가 열리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최종 면접 PT 준비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 회장이 모처로부터 메시지를 직접 전달받았는지,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국의 의중을 확실하게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8일 회추위 직전에 본인의 용퇴 의사를 진 행장에게 전달하면서 면접 준비를 잘하라고 했다고 한다.

금융권에선 당혹스럽단 반응이 나왔다. 회추위 직전까지 신한금융지주 내 부회장급 총괄직 신설 등 조직 개편안을 고민하던 그였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당일 출근길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조직이 커진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조직을 더 정교화해야 하고, 스피드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가 준비했던 부회장직 신설은 최근 신한지주 인사에서 현실화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외압설이 회자된다. 여권을 중심으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를 의식한 윗선의 개입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위 '윗선'이 이사회 또는 모종의 통로를 거쳐 (회추위) 하루 전날 밤 연임 불가의 뜻을 전했다는 후문"이라면서 "조 회장도 이를 수용하고 진 내정자에겐 의사를 귀띔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같은 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생각해 보면 4개월 전부터 이런저런 경고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정치권이 보낸 여러 시그널(signal)을 간과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고 전했다.

조 회장이 라임 사태를 전격 용퇴의 이유 중 하나로 꼽은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란 평이다. 라임 사태는 최근 금융권 CEO 선임과 관련한 최대 이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문책 경고'란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문책경고 이상의 징계는 중징계로 분류되며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데, 소송을 하지 않는 한 연임은 불가능해진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손 회장에 대한 징계 당시 "(손 회장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라임 사태를 이유로 먼저 용퇴를 선언한 것은 조 회장이었다. 조 회장은 지난 7월 라임사태와 관련해 경징계인 '주의' 처분을 받았다. 주의는 가장 낮은 징계 수준이다. 조 회장은 지난 8일 회추위 후 취재진과 만나 "(라임 사태로) 많은 고객들이 피해를 봤고, 많은 임직원들이 징계 처분을 받기도 했다"면서 "개인적으로 제재심에선 주의를 받았지만 누군가가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한편 조 회장의 석연찮은 용퇴를 시작으로 금융권엔 '빅뱅'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이미 NH농협금융지주는 연임 가능성이 유력했던 손병환 회장 대신 인수위원회 출신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회장으로 내정했으며, BNK금융지주 역시 김지완 전 회장이 중도 사퇴하고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가동 중이다. BNK지주엔 내외부 18명에 달하는 후보들이 경합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에선 손 회장의 연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 회장의 용퇴는 일종의 '선례'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1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조 회장은 3연임을 할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후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서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회추위에서 진옥동 행장이 차기 신한금융 회장으로 내정된 8일 밤, 진 행장과 조 회장은 밤늦게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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