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독일·폴란드도 갈린다…푸틴 노림수, 내년이 더 섬찟 [우크라이나 전쟁 10개월]

임주리 2022. 12.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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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10개월-무엇을 남겼나 ㊦


소비자물가 상승률 10%(유로존 11월 전년 대비), 내년 예상되는 유럽연합(EU) 경제성장률 0.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유럽 경제의 현주소다. 경제 위기의 시작은 전쟁발 에너지 공급 충격이었지만, 이로 인해 수 년 간 곪아있던 유럽 내 문제가 터졌다.
EU의 굵직한 의제들을 진두지휘하는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뚜렷한 성장동력 없던 유럽 경제, 고물가ㆍ저성장 ‘쌍두괴물’ 철퇴


시작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었다. EU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40%를 쥐고 있는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항해 에너지를 무기 삼아 가스 수출을 의도적으로 줄인 게 원인이었다. “유럽에 경제 위기를 촉발하고 정치적 분열을 노린 푸틴의 의도”(폴리티코)는 적중했다. 당장 쓸 에너지가 부족해진 것은 물론, 에너지ㆍ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기업 비용이 증가해 투자는 줄어들었다.

반면 물가는 줄줄이 올랐다. 지난해 11월부터 상승세를 보이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소비자물가는 전쟁 이후 더욱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지난 10월, 상승률 10.6%를 기록했다. 1997년 집계 이후 최고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석유생산국들이 딱히 증산할 생각이 없기에 에너지 가격은 계속 비쌀 것”이라며 “내년 인플레이션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일 것이다”고 진단했다.

이번 겨울 많은 유럽 도시들이 에너지 절약 문제로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을 고민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모습. AP=연합뉴스

이런 상황 속에서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던 유럽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렇지 않아도 “고령화와 늘어날 대로 늘어난 복지 비용이 유럽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에너지 위기로 보조금이 더욱 늘어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EU 특유의 복잡한 규제로 신생 산업의 성장이 쉽지 않았단 자성도 나온다.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몇 년간 억눌려 있던 소비심리가 폭발해 경제를 부양했지만, 내년에는 그런 요인마저 보이지 않는다.

유럽 경제를 이끄는 산업 대부분이 에너지 집약도가 높단 점도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철강ㆍ금속ㆍ화학ㆍ식품 가공 산업 등이 모두 큰 영향을 받았다”며 “지금까진 보조금으로 겨우 버텼지만 공장을 폐쇄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곳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산업이 발달한 독일의 출혈은 상당하다는 것이 FT의 설명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경기침체까지 덮쳐 1970년대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옴)’이 현실화하고 있단 보도가 쏟아진다.


유럽 내부 분열 더욱 심화하고, 글로벌 경기도 도움 안 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유럽의 내년 경제가 더 센 한파를 맞이할 거라 내다본다. “2023년 유럽 경제는 고물가와 저성장이라는 ‘쌍두괴물’을 맞이하게 될 것”(이코노미스트)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2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을 깜짝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패트리엇 미사일을 포함한 여러 지원을 약속받은 것도 ‘전쟁의 장기화’에 대한 예고라서 유럽으로선 쾌재를 부를 일만도 아니다. 특히 경제 대국인 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EU가 올해는 러시아에 대항해 똘똘 뭉쳐 있었지만,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분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지난 15일에 있었다. EU 정상들이 ‘9차 러시아 제재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더 강력한 조치를 원한 반면 독일 등 서유럽은 꺼렸다.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에는 ‘안보’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 등에는 ‘경제’가 더 중요해서다. 이번 달 초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가를 정할 당시에도 비슷한 갈등 구도가 있었다. 19일에는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에 합의했지만, 회원국 간 견해차가 커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상한을 즉각 해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기조에 대한 생각도 각기 다르다.

갈등의 층위는 다양하지만 특히 ‘맏형’ 독일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심하게 받은 독일은 에너지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풀며 ‘단일 시장을 훼손하지 마라’는 지적을 받았다. 독일은 2017년 이후 최대 경제적 파트너로 부상한 중국을 놓칠 수 없단 의지로 다가서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시진핑 주석의 독재에 명분만 준다고 비난한다. “유럽을 희생시키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아메리칸 프로스펙트)는 비판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독일은 유럽 제일의 경제대국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AP=연합뉴스

이런 분열 속에서 글로벌 경제 역시 유럽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위기와 고금리, 달러 강세로 전 세계적으로 성장 둔화가 전망된다”며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고 미국의 물가가 잡혀야 글로벌 성장이 유럽의 회복을 뒷받침할 텐데 2023년에 이를 기대하긴 무리수”라고 보도했다. 설상가상, 미국과는 자국 전기차 혜택을 주며 보호무역주의 논란을 부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갈등을 빚는 중이다.


‘에너지 위기’ 급한 불 꺼야 하지만 단기간 극복 어려워


가장 먼저 꺼야 할 불은 역시 ‘에너지 위기’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자력ㆍ친환경 에너지 등의 활용을 늘리고 수입처를 다각화하겠단 계획이다. 관련 인프라도 빠르게 구축 중이다. 그러나 전쟁발 에너지 위기가 2026년까진 갈 것이란 전망(블룸버그통신) 속에서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 석탄발전소 가동을 늘려야 한단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어, 장기적으론 ‘탈원전ㆍ친환경’ 딜레마에 처할 위험도 크다.
러시아와 서유럽을 연결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폴란드 구간.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으로도 유럽의 이런 취약성을 더 악용할 위험이 크다. FT는 “결국 전쟁 때문에 시작된 에너지 문제가 현재 위기의 핵심”이라며 “에너지 집약도 높은 산업을 재편하고 청정에너지에 더욱 힘을 싣는 등 새로운 산업 마스터 플랜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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