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입고 美 의회서 “반드시 승리” 열변… 18차례 기립박수
미, 패트리엇 등 추가 지원 약속
러 “평화 준비 안 돼 있다” 비난
우크라이나 전쟁 300일을 맞은 21일(현지시간) 미국을 전격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의 마지막 인사말은 “해피 빅토리어스 뉴 이어(Happy Victorious New Year)”였다. 전통적인 미국식 새해 인사에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함축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상·하원 의원들 앞에서 유창한 영어로 25분간 연설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리를 절멸시키려 하지만 절대로 항복하지 않겠다”며 미 의원들을 설득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상정한 450억 달러의 추가 경제원조·군사지원안 인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여러분의 돈은 절대 자선금이 아니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와 안보를 가장 책임 있는 방법으로 지키는 투자”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의원들이 전원 기립했고,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고무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러분이 우리의 승리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나치 독일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1944년 ‘크리스마스 대공세’ 때처럼 이번 겨울 똑같은 타격을 러시아에 안겨주려 한다”고 말했을 때도 기립박수가 나왔다. 이날 기립박수는 모두 18차례 나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일본의 진주만 공습 다음 날인 1941년 12월 8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이 의회에서 “미국 국민은 정의로운 힘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인용한 뒤 “우크라이나 국민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설을 마친 뒤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병사들의 ‘조국 수호’ 서명이 담긴 우크라이나 국기를 선물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의사당에 게양된 성조기로 답례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대표는 “우크라이나는 행복하다. 존경하고 우러러볼 만한 지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명연설에 대한 감동의 표현이었다. 다만 전폭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일부 공화당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고, 참석자 중 일부는 기립하지도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미 군용기 편으로 워싱턴DC를 찾았다. 전쟁 발발 이후 첫 외국 방문이었지만 옷차림은 전쟁 내내 단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는 군복이었다. 우크라이나군 휘장이 선명하게 새겨진 군용 스웨터와 카고바지, 전투화 차림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였다.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철통 보안 속에 열차 편으로 폴란드로 이동하게 한 뒤 군 수송기인 C-40B에 태웠다. 조기경보기와 F-15E 공군 전투기가 이를 호위했다.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을 언급하며 “당신은 미국에서 진짜 올해의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포대 지휘관인 우크라이나군 대위의 부탁이라며 대위가 받은 무공훈장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건넸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를 포함한 185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지원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이어지는 한 우크라이나의 걸음걸음마다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패트리엇 시스템은 방공능력을 강화하는데 핵심적 조치로, 우리 영토와 상공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화답했다.
극비리에 추진된 이번 방문은 지난 11일 두 정상의 통화에서 제안됐고, 방문 3일 전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러시아는 젤렌스키의 방미를 강력히 비난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대사는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정권 수뇌의 방미는 러시아와의 대결을 원치 않는다고 한 미국 정부의 제스처가 공허한 소리였음을 확인해줬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이 전했다. 안토노프 대사는 또 “미국도 우크라이나도 평화를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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