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참사 이후의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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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는 두 번째 실패 위기 앞에 서 있다.
이태원 참사는 구조에 한 번 실패했고, 회복에 또 한 번 실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행정과 안전의 총체적 실패였지만, 책임을 맡은 장관은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당의 한 최고위원은 이태원 참사를 빌미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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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는 두 번째 실패 위기 앞에 서 있다. 이태원 참사는 구조에 한 번 실패했고, 회복에 또 한 번 실패하고 있다.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은 참사 그 자체만큼이나 절망적이다. 1주일간의 국가애도기간 뒤 참사는 갈등 소재가 됐다. 158명의 죽음 이후 위로와 회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혐오와 분열이 자리 잡았다. 여당의 한 인사는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 했고, 극우단체들은 이태원 분향소 앞에 “윤석열 잘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참사가 벌어진 지 불과 50여일 만이다. 참사 이후의 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압사당할 것 같아요.”(10월 29일 오후 6시34분) 사건 당일 첫 신고 이후 구조 요청은 이어졌다. “많아서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어요”(8시53분), “지금 압사당할 위기 있거든요”(9시7분)처럼 ‘압사’라는 말이 들어간 신고만 여러 차례 있었다. 절박한 신고는 응답받지 못했고, 158명은 결국 압사했다. 참사 당시 경찰의 무능이 담긴 ‘112 신고 녹취록’을 정부 스스로 공개할 때만 해도 걸맞은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통령이 지난달 1일 희생자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할 때만 해도 빠른 수습과 회복을 믿었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월드컵 열기가 전국을 뒤덮자 정부·여당은 이태원 참사를 지나간 일로 치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주무부처 장관이지만 정무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 장관은 참사 이튿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고 했던 사람이다. 이태원 참사는 행정과 안전의 총체적 실패였지만, 책임을 맡은 장관은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휘하의 여러 경찰 간부들이 참사 대응 실패로 수사를 받고 있지만, 사의를 표명하거나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공직자의 ‘명예’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처신이다. ‘선 규명 후 조치’가 정부·여당의 입장이라지만 이미 명백하게 규명된 사실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안전사고로 죽었다’ ‘적절한 안전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부·여당이 보여준 게 책임감과 공감 능력 결여라면 야당이 보여준 건 위선과 정쟁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이태원 참사 당일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DMAT)의 ‘닥터카’를 콜택시처럼 불러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재난과 직접 관련 없는 치과의사 남편까지 닥터카에 함께 탔다. 닥터카의 현장 투입은 20~30분 정도 늦어졌다. 재난 현장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리고, 방송에 나와선 압사 사고의 골든타임은 4분이라고 했다. 이 당의 한 최고위원은 이태원 참사를 빌미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정부·여당의 비정한 대응을 비판하는 사람조차 야당에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니 참사 이후 사회는 나아갈 방향을 잃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건강한 사회는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다. 예상치 못한 비극을 만나더라도 극복하고 한 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갖춘 사회다. 나쁜 사회는 참사를 예방하지 못하고, 참사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사회다.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증폭시키며 드잡이하는 사회다. 이미 벌어진 참사를 되돌린 순 없다. 하지만 참사 이후 회복은 가능하다.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그 사회의 수준과 역량이 달려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이 추운 겨울 길거리로 나선 유가족은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있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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