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 100일… 국제사회 응원에도 ‘혁명’은 먼 길

백재연 2022. 12. 2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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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항의하다 ‘국가 전복’ 꿈
제재 잇따르고 중국도 등 돌려
경제난이 시위 멈추게 할 수도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이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 시민들은 이날 이란에서 시위자 두 명이 사형당한 것을 두고 이란 정부를 규탄했다. EPA연합뉴스


이란 반정부 시위가 오는 24일로 100일을 맞는다. 이란에선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간 마흐사 아미니(22)가 의문사한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부터 시위가 시작됐다. 정부의 거센 탄압 속에 그간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8000명 이상이 체포됐지만 이란 시위는 오늘도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시위대는 처음에는 히잡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이슬람 공화국의 전복을 꿈꾸고 있다.

아미니의 영정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위대는 이제 정부의 탄압으로 숨진 이들의 사진도 함께 챙긴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9월 16일부터 지난 20일까지 시위대 약 506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최소 69명이 미성년자라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에서 구금된 이들의 정확한 숫자를 제공하지 않고 있지만 HRANA는 학생 652명을 포함해 최소 1만8457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고 밝혔다.

시위가 멈추지 않자 이란 정부는 최근 사형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시위자 2명이 처형됐으며 58명이 사형 위기에 처해 있다. 11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47명이 사형 선고가 가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위대와 이란 정부 사이 강대강 구도가 계속되면서 이란은 국제사회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미국은 반정부 시위대 유혈 진압에 책임이 있는 이란 검찰총장과 군 주요 인사들에 제재를 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지난 9월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은 일찌감치 이란 도덕 경찰 등을 제재 명단에 올린 바 있다. 미국은 이란 정부가 시위 진압을 위해 인터넷을 차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제재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확대해 인터넷 자유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는 지난 14일 이란을 퇴출했다.

이란과 친밀한 관계였던 중국마저 최근 이란에 등을 돌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사흘간의 중동 일정을 소화하며 아랍권 10개국과 양자 정상회담을 했지만 이란은 끝내 찾지 않았다. 이란을 방문한 건 지난 10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24인에 들어가지 못하고 권력에서 밀려난 후춘화 부총리였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이란의 위치가 내부 시위 정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관계 전문가 메흐디 모타하르니아는 이란 매체 Rouydad24와의 인터뷰에서 “반정부 시위로 인한 긴장이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손을 내밀도록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며 “이란의 국내외 정책에는 현실주의가 없으며 이제 현실주의를 폐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의 심각성과 국제사회의 비판을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3일 이란 정부가 ‘히잡법’ 완화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미니를 체포했던 풍속 단속을 담당하는 ‘도덕 경찰’은 이미 폐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결정이 이란 사회 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보는 시각은 적다. 히잡법 완화의 정도는 아직 미지수이고 도덕 경찰이 폐지되더라도 ‘히잡법’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다. 도덕 경찰이 없더라도 여전히 법에 따라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처벌할 수 있다.

미국 테네시대의 사에이드 골카르 정치학과 조교수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과거와 달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카네기중동센터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금 일어나는 시위는 이란의 하층민에서부터 중산층·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계층의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며 “이번 시위의 목표는 과거처럼 경제적 구제나 제도 개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위는 이슬람 공화국을 폐지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반정부 시위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위대에는 이슬람 공화국의 설립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같이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없다. 또 이란 정부는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포함해 반정부 시위를 견뎌낸 경험이 많다. 2000년 이후 있었던 세 차례 대규모 시위 모두 이란 보안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다.

중동 및 이슬람 연구자인 찰스 커즈만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사회학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로 하여금 시위를 그만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 시민들은 물가 상승과 빈부격차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이란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보안군이 정부에 헌신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도 시위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에 “통계적으로 혁명은 드물어서 ‘실패’에 거는 것이 안전한 내기”라며 “결국 시위는 중단되고 대중의 분노는 역사적 기억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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