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젊은이의 양지’ 돼야 할 정치
국내 여행을 다닐수록 우리 조상들이 이 땅을 왜 금수강산이라고 표현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곳곳에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광과 해안선들이 펼쳐져 있다. 사시사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전국의 명산과 그 계곡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속에서 지저귀며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과 철 따라 펼쳐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의 향연은? 꽃피는 봄이면 봄이라서, 산사에 단풍 지는 가을이면 가을이라, 차가운 겨울이면 달빛 속 눈을 이고 서 있는 소나무, 바람에 울어대는 갈대숲이 있어 더 정겹다. 여행을 하노라면 우리의 국토는 이리도 아름다운데 정치는 왜 아름답지 못한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정치 선진국인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근래 정치가 추락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의민주주의는 상업적 민주주의로 변질하였고, 지도자는 점점 대중들의 추종자가 되어가고 있다. 대중은 오늘을 보고 지도자는 미래를 본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을 관찰하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율하며, 필요한 개혁을 수행하는 것이 사회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도자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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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대에 선 민주주의·자본주의
정치·경제 제도의 출구 모색돼야
특히 한국정치는 더 나아져야 해
젊은이들 수혈할 제도 정비 시급
」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 18세기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 등을 거치며 서구에서는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제도의 모습이 갖춰졌다. 그러나 20세기 초반까지 여전히 일반 대중의 참정권은 제한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17~8세기 이후 사유재산권과 기업 제도가 확립되면서 자리를 잡았으나, 20세기 초 러시아혁명과 대공황 등으로 큰 위기를 맞고 수정 보완된 제도로 생존하고 있다. 둘 다 역사의 시계추에 따라 흔들리며 발전해 온 제도다.
사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상호모순된 제도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에, 자본주의는 1원 1표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매우 다른 원칙이다. 국제기구 중에서도 유엔은 1국가 1표지만,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등은 국가의 경제력과 교역 규모에 따라 투표권이 다르다. 1원 1표에 가깝다. 1국가 1표인 유엔의 의사결정은 강대국들이 외면하면 실효력을 갖기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안전보장이사회를 두고 상임이사국 5개국에 비토권을 주고 있다.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항해 중의 의사결정은 1인 1표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경험과 지식, 자격을 갖춘 선장이 한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다른 더 좋은 대안을 찾기 어려울 뿐이다.
자본주의 역시 태생적으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불안정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며 과잉으로 치닫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시장의 승자는 더 많은 선택과 자유를 누리게 되고, 패자의 선택권과 자유는 축소된다. 국가가 개입하고 보완해주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제도다. 자본주의가 21세기 들어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을 만나면서 빈부격차가 다시 크게 심화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다시 민주주의 정치의 토양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시대 정치와 경제 제도는 새로운 출구 모색이 필요하다. 지난 25년간 상위 1%가 전 세계 부의 증가분 38%를 가져간 반면 하위 50%의 증가분은 2%에 그쳤다. 이러한 경제적 토양이 점점 포퓰리즘 정치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당장 출구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는 지금보다 더 좋아져야 하고 좋아질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정치는 그렇다. 정치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 나라의 거의 모든 정책과 미래 방향을 지배한다. 욕하고 외면하기보다 바꾸려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그것에 지배당한다.
한국 정치는 새로운 문화와 주역들을 필요로 한다. 젊은이들이 더 정치에 들어와야 한다. 지금의 40대 이하는 세계에서 가장 학력 수준이 높다. 정보와 데이터를 다루고 해석하는 능력이나 지식수준, 글로벌 감각에서 어느 선진국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주먹구구식, 이전투구식 기성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가장 빠른 길이다. 기성세대 눈에는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사회는 발전이 없다. 포용하고, 그들의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도리다.
오늘날 정치에는 진입장벽이 높다. 무엇보다 지명도와 돈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정치자금법을 개선해 우수한 젊은이들이 정치를 배고픈 직업,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직업이라고 인식하는 현실을 바꿀 필요도 있다. 돈 많은 자산가나 변호사 자격증 있는 이들만 정치를 할 수 있는 제도여서는 안된다. 정치가 젊은이들의 음지가 아닌 양지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수출과 산업발전을 위해 많은 제도적·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결국 수출산업국으로 성공했다. 한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에 왜 바른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겠는가.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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