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설리번의 ‘중산층 외교’ 다시 읽기
‘미국의 외교정책을 중산층에 더 적합하게 만들기’(카네기 국제평화재단, 2020년) 보고서를 처음 봤을 땐 으레 선거철 나오는 자료집 정도로 여겼다. 제목도 워싱턴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들렸다.
이후 집필에 참여한 살만 아메드는 국무부에 들어갔고, 제이크 설리번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 2년여가 지난 지금 보니 그간 조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이 보고서 내용을 착실히도 따랐다.
미국은 사회·경제 모든 면에서 중산층이 핵심인데, 그간 미국 외교는 이와 괴리됐다는 문제의식에서 보고서는 출발한다. 세계화는 일부 기업만 살찌우고 미국 내 수백만 제조업 일자리를 없앴다. 따라서 앞으로 외교는 중산층의 수입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관계가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경쟁을 관리하면서도 경제·기술 패권을 쥐려는 시도에 반격해야 한다고 적었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공급망에 대한 보호조치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잘 안다며 위기 순간에 먼저 전화를 걸면서도, 뒤에선 CIA ‘중국미션센터’, 국무부 ‘차이나 하우스’를 만들어 이전 정권보다 더 견제에 나선 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북미산에만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특정국에 시설 투자를 막는 반도체법 등 무역규정을 무시하는 듯한 입법을 거리낌 없이 추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규탄하지만 대화에 열려있다”는 대응을 반복하고, 여러 갈등에 현상 유지만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던 것은, 앞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은 덜 야심 차 보일 것’이라고 예고한 보고서 내용과 맞닿아 있다.
보고서는 이 전략을 실행하는 데 무엇이 걸림돌일지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보조를 맞춰야 할 동맹들이 미국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정권만 바뀌어도 약속이 지켜질 거란 확신이 없다 보니, 동맹들은 미국과 좋은 관계는 유지하되 중국이란 옵션 역시 놓지 않으면서 위험을 분산하려 한다고 봤다.
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IRA가 “너무 공격적”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시 주석을 만나고 온 독일 숄츠 총리는 “중국을 고립시켜선 안 된다”며 슬쩍 중국 편을 들었다. 보고서가 우려한, 동맹 신뢰에 균열이 가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미국은 ‘중산층을 위한 외교’라는 실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동맹의 관심을 온통 집중시킨 IRA에 바이든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가 그 중간평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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