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1등급 94%가 이과…문과침공은 文정부 책임" [윤석만의 직격인터뷰]

윤석만 2022. 12. 2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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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한국교총 회장


윤석만 논설위원
교육 이슈는 계륵과 같다. 복지공약처럼 많은 예산이 들진 않으면서 입시정책 하나만 바꿔도 티가 크게 난다. 선거 때면 듣기 좋은 공약이 난무하지만 당선 뒤엔 모른 척하는 정치인이 많다. 유권자들 역시 자녀 입시가 걸렸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고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다. 교육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최근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 현상도 이런 측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수학의 영향력이 너무 커 문과생의 손해가 크지만 정부는 대안조차 못 내놓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 교총회관에서 만난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은 “수능 절대평가 전환 무산 뒤 대책을 제때 내놓지 못한 문재인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수능 만점 기준 ‘미적분’은 147점, ‘확률과 통계’는 144점
문 정부 수능 절대평가 공약 철회, 영어만 절대평가인 기형 구조
진보교육감 집권 10여년간 기초학력미달 증가, 교내 정치화 심각
‘성평등’ 빠진 새 교육과정 “헌법 36조대로 양성평등 명시했어야”

이과생이 유리한 통합수능

한국교총의 정성국 회장은 최초의 초등 교사 출신 회장이다. 1971년생인 그는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변화에 대한 13만 회원들의 열망이 ‘X세대’인 저를 선출했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현장 중심 교육정책이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교총]

Q : 올해 수능이 왜 논란인가.
A : “재수생 등 졸업생 응시자가 1996년 이후 역대 최다(28%)였다. 그 이유는 이번이 두 번째인 문·이과 통합수능 때문이다. 문과, 이과 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의 조합으로 시험을 보는데, 이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의 표준점수 만점이 문과생 다수가 보는 ‘확률과 통계’보다 높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만점이 100점으로 고정된 원점수와 달리 표준점수는 시험이 어려울수록 만점이 높아진다. 선택과목 간 상대 비교를 위해 응시자의 점수 분포를 토대로 점수를 보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에서 ‘미적분’의 표준점수 만점은 147점, ‘확률과 통계’는 144점이었다. 모든 문제를 다 맞혔다 해도 문과생이 이과생보다 3점 낮다.

Q :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수학능력’만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말도 있다.
A : “주요 과목 중 영어는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입시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문·이과 통합수능으로 수학의 변별력만 너무 커졌다. 그렇다 보니 수학 점수가 높은 이과생이 인문계열 학과에 교차 지원하는 ‘문과 침공’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수학 1등급 비율이다. 서울중등진학연구회가 지난해 수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등급 받은 학생의 94.2%가 ‘미적분’과 ‘기하’ 응시자였다. 문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확률과 통계’ 응시자는 5.8%에 불과했다. 올해 수능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올해 수학 1등급의 93.5%가 이과생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Q : 이것이 왜 문제인가.
A : “학생들은 다양한 재능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수학도 여러 재능 중 하나다. 다양한 방식으로 역량을 평가해야 하는데, 특정 과목의 영향력만 지나치게 큰 것은 잘못이다. 수학적 재능이 필요 없는 전공을 선택하는데도, 수학 성적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면 불합리한 것 아닌가.”
물거품 된 수능 절대평가 공약

Q : 왜 이런 일이 생겼나.
A : “문재인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공약했다. 첫 단추가 영어였다. 하지만 국어·수학까지 모두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다. 그러다 ‘조국 사태’가 터지고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정시가 오히려 확대됐다. 그 결과 수능 절대평가 전환도 무산됐다.”

Q : 정부가 대안을 내놔야 했지 않나.
A : “교육부가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면서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실시로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능은 더더욱 절대평가 전환이 어렵다. 그렇다고 영어를 또다시 상대평가로 바꾸기도 힘들다. 교육부가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아 난맥상이 돼버렸다.”

Q : 당초 고교 2, 3학년만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했다가 최근에 1학년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는데.
A : “방향은 옳다. 1학년만 상대평가로 놔두면 입시지옥이 된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줄 세우기 공부를 개선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 교실이 내신 집중 학생과 포기 학생으로 나뉘고, 옆자리의 친구는 경쟁자가 된 지 오래다.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학생들의 정서적 불안을 부추긴다.”

Q : 입시 스트레스는 큰데 기초학력은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A : “일단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줌과 같은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의 집중력에 한계가 있다. 지난 10여년 간 진보 교육감들의 문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평가를 터부시한다. 그러나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생들이 뭐가 부족한지 알 수 없다. 줄 세우자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자는 의미에서 평가는 꼭 필요하다.”

Q : 교육감 직선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A : “말로는 정치적 중립이라지만, 실제 교육감 선거 현장을 보면 어느 곳보다 정치적이다. 능력과 덕망을 두루 갖춘 교육자인데 조직과 돈이 없어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분도 많다. 이런 분들이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를 하거나 교육 관계인으로 한정한 제한적 직선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심각한 교권침해, 무기력감 커져

Q : 교육감들의 이념 편향도 문제 아닌가.
A : “진보 교육감들이 교내 민주화나 학생인권이란 미명 아래 학교 현장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학교 입장에선 교육부가 아니라 시·도교육청의 압박이 훨씬 크다. 학생인권 같은 경우도 권리만 강조하고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여긴다. 되레 요즘은 교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1197건이었던 교권침해는 2021년 2269건으로 늘었고 올 상반기에만 1596건을 기록했다. 유형별로는 2021년 기준 모욕·명예훼손(56%), 폭행(10.5%), 성적 굴욕감(8.8%), 성범죄(2.9%) 등 순이었다. 학교별로는 중학교(53.9%)가 과반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고등학교(35.4%)와 초등학교(10.7%)였다.

Q : 교권침해를 막을 순 없나.
A : “학생이 수업시간에 딴짓을 해도 교사가 제지할 권한이 없다. 교실 뒤로 나가 서 있으라고 하면 학대 행위로 걸릴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학교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들이 있어도 그저 방치할 뿐이다.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손해를 본다. 교사들은 무력감이 커지고 일부는 폭력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Q : 마침 지난 8일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A : “늦었지만 다행이다. 법적으로 교권침해 행위가 명시됐고, 이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근거가 생겼다. 궁극적으로 다수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교권침해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법안(교원지위법)도 추가로 개정해야 한다. 적어도 출석정지, 전·퇴학 등의 징계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새로운 변화, MZ 교사 부상

Q :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 ‘성평등’ 명시 여부를 놓고 갈등이 많았다.
A : “야당 측 위원 3명이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했는데 결과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게 교육자로서 맞는 일인지 묻고 싶다. 나와 다른 생각도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다.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정치적 액션 같아 보였다. 국가교육위원이 정치인처럼 진영에 따라 거수기 노릇을 해선 안 된다.”
지난 14일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야당 측 위원인 정대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김석준(부산)·장석웅(전남) 전 교육감이 의결을 거부하며 퇴장했다. 이틀 후 정 회장을 포함한 10명의 위원은 성명을 통해 “6번의 전체 회의와 2차례 소위원회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며 “합의정신을 파기한 것은 중도 퇴장한 3명”이라고 비판했다.

Q : ‘성평등’을 삭제한 건 인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 보인다.
A : “교육부가 제시한 ‘성에 대한 편견’이란 표현으로 통과됐는데, 나는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교육과정은 정확한 근거를 토대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헌법 36조에는 이미 ‘양성평등’ 조항이 있다. ‘성평등’이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교육부가 반대한 거라면, ‘양성평등’이란 표현만큼은 넣어야 했다.”

Q : 교육계에서도 MZ노조가 부상하고 있다.
A : “젊은 교사 중심인 교사노조연맹 회원 수가 전교조와 비슷하다. 전교조가 이념 투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한 전교조는 반성해야 한다. 교총은 전 세대를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3만 회원이 초등교사 출신의 X세대 회장을 선출한 것은 이제 교총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정성국=한국교총 75년 역사상 최초의 초등교사 출신 회장이다. 1971년생으로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25년간 평교사로 재직했다. 지난 7월 교총 회장으로 취임해 3년 임기를 시작했다.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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