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뜨겁던 열탕이 냉탕 돌변…집값 하락에 400조 사라졌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안장원 2022. 12. 2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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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환란 이후 집값 최대 하락
손절매 잇따르고 로또 분양 실종
공급 줄고 대출 풀어도 금리 장벽
새해 규제완화로 ‘낙하산’ 펴질까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숫자로 돌아본 2022년 주택시장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올해는 주택시장이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보냈다. 길이 더욱 기울어지고 끝이 보이지 않은 가운데 해가 저물고 있다. 9년을 이어오던 상승장이 순식간에 급락장으로 바뀌었다. 기온이 급강하하며 열탕이 냉탕으로 돌변했다.

주택시장이 잔뜩 얼어붙은 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말 서울 잠실 123층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석양. 뉴시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19%, 거래량 81% 떨어져

올해 주택시장 실적이 2000년 이후 가장 저조하다. 전국 아파트값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까지 지난해 말 대비 4.79% 내렸다. 그동안 외환위기(-13.56%, KB국민은행 조사) 이후 연간 하락 폭이 가장 컸던 2012년(-2.13%)을 넘어섰다. 올해 서울과 인천·부산 등 6개 광역시와 세종시 총 75개 시·군·구 모두 '마이너스'다. 4.89% 하락한 서울 아파트값이 1년 반 전인 지난해 6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피부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더욱 낮다. 실제로 거래된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하는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지난해 10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달까지 전국 14.33%, 서울 18.72% 각각 내렸다. 2008년 금융위기로 그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의 단기 급락 폭이나, 반등했다가 2009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3년 3개월간의 장기 하락 폭을 능가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76㎡(이하 전용면적)가 지난해 말 26억3500만원까지 올랐다가 이달 초 18억5000만원으로 30% 내렸다. 2008년엔 6월 10억원선에서 그해 말 25% 정도 빠진 7억4000만원까지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 시계는 시세보다 1년 더 뒤로 돌아간 2020년 8월을 가리키고 있다. 은마는 다시 1년 전인 2019년 10월이다.

거래시장도 ‘급속 냉동’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전국·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가 최근 5년 평균보다 각각 52%, 80.9% 줄었다.

올해 집값 하락으로 전국적으로 400조원 정도의 시가총액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월 1일 기준 주택 공시가격에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적용해 추산한 시가총액(8436조원)에 예상 집값 하락률 5%를 적용했다.


1년 새 4억5000만원 손절매

시가총액 감소는 장부상 평가금액으로 그치지 않는다. 10월부터 구매 가격보다 싸게 팔아 억대 손해를 보는 손절매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2020년 이후 30대가 매입해 단기간에 되판 집이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준공한 지 4년 된 매머드급 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 지난 10~11월 거래된 3건이 손절매였다. 손절매 금액이 2억3500만~4억5000만원이고 모두 매수자가 30대다. 지난달 17억5000만원에 팔린 84㎡ 지난해 22억원에 거래된 집이다. 같은 달 거래가격이 16억7000만원인 다른 84㎡는 불과 4개월 전 21억원에 산 집이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경제적인 이유 등 다급한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판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실거래가 하락 폭이 큰 노원구·강북구 등 강북 지역에서 30대가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7000여만원까지 손해를 보고 되팔기도 했다. 중국인이 1년여 만에 매입 가격보다 7억원 낮춰 판 사실이 알려진 인천 송도와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도 1억원이 넘는 손절매 사례가 잇따랐다. 성남에 사는 30대가 지난해 9억원에 산 송도 72㎡를 최근 6억2000만원에 팔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난해까지 주택시장에 열기를 보탠 ‘로또 분양’이 사라졌다.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훨씬 저렴한 상당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신규 분양 아파트를 말한다. 아파트값이 급락했지만 정부가 땅값과 건축비 범위 내에서 가격을 규제하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 아파트 분양가가 뛰었기 때문이다.

같은 서울 성북구에서 지난해 12월 3.3㎡(평)당 2650만원인 분양가가 지난달 2840만원으로 오르며 국민주택 규모인 84㎡가 1억원 가까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성북구 아파트 실거래가가 12%가량 내렸다.

이달 분양한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올림픽파크포레온) 분양가가 3.3㎡당 3829만원으로 84㎡가 12억원대였다. 강동구에서 지난해 20억원까지 오른 새 아파트 84㎡ 실거래가가 지난달 13억원대로 내렸다. 1년 새 ‘7억 로또’가 없어진 셈이다.

앞서 청약 돌풍을 일으킨 단지의 로또 금액도 줄어들었다. 2020년 11월 분양 당시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84㎡ 분양가가 8억원 정도였다. 인근 최고가 단지가 20억원까지 나갔다가 지난달 14억원대에 거래됐다. 로또가 반 토막 난 셈이다.


16개월간 기준금리 9차례 올라

올해 집값 급락은 집값 변동 원인을 한 번 더 곱씹어보게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집값 급등 원인을 두고 당시 정부는 투기와 유동성을 지목했고, 다른 편에선 공급 부족과 과도한 규제를 꼽았다. 대표적인 공급 지표인 준공 물량을 보면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들어선 아파트가 최근 5년 평균 대비 전국·서울 모두 20% 적다. 2015년 이후 가장 적다.

올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정상화’를 내세우며 문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공급 감소와 규제 완화가 예상과 달리 집값을 떠받치지 못했다.

문 정부 동안과 윤 정부 첫해 집값 롤러코스터의 결정적인 원인은 금리였다. 2020년 코로나 이후 급격한 금리 인하가 집값 급등을 불렀고, 지난해 이후 단기간에 치솟은 금리가 급락을 가져왔다. 2019년 7월 1.75%인 기준금리가 2020년 5월까지 0.5%로 3분의 1 아래로 내려갔다. 기준금리가 1%를 밑돌던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년 6개월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가 40% 뛰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난해 8월 0.5%에서 지난달 3.25%까지 1년 4개월 동안 9차례에 걸쳐 6배 가까이 치솟았다. 유례가 없는 단기 급등이었다. 문 정부 이전 집값 침체기였던 2010년대 초반 수준인 2%대로 오른 지난 7월부터 금리 상승효과가 누적되며 집값 하락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다고 집값의 원인으로 공급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동성 수도꼭지인 금리에 따라 집값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집값 변동성을 파도라면 공급은 깊은 해저 기류이고 금리는 바람인 셈이다. 물론 바람에는 금리 외에 경제 상황 등도 있다.


소득 대비 서울 집값 17.7배

2023년 새해가 되면 주택시장이 달라질까. 금융위기 직후 실거래가가 30% 정도 급락한 뒤 반등한 경험이 소환되기도 한다.

새해에도 금리가 주요 변수다.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반짝 상승한 2009년에 기준금리가 잇따라 인하됐지만 내년에는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집값이 내렸다 해도 소득 대비 집값이 여전히 비싸다. 서울에서 중간 소득 대비 중간 집값 비율이 지난해 말 19까지 올랐다가 지난 9월 17.7까지 내려왔고 올해 17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으로 대출 원리금을 반영한 주택 구매력이 조사를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최저다. 집값 하락 폭보다 이자 부담이 더 커졌다는 말이다.

새해 금리 장세가 이어지더라도 위력이 다소 떨어지고 다른 요인이 부각될 수 있다. 금리 상승세가 꺾이거나 상승이 끝나면 경기 침체가 기다리고 있다. 빠른 금리 인상으로 대출 엄두를 못 내던 수요자가 경기 침체 땐 허리띠를 졸라매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내년엔 금리보다 경기침체 먹구름이 더 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21일 밝힌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대폭적인 규제 완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집값 경착륙을 막기 위해 다주택자에 손을 내밀었다. 취득세 중과·대출 규제 완화 등으로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임대사업자 부활 당근을 제시했다.

정부가 양도세·종부세 다주택자 중과 폐지 등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다주택자에게 주는 임대사업자 당근이 줄어들었다. 문턱을 낮췄다고 해도 취득세 중과가 남아있고 집값이 뛰기 전 가격 기준(수도권 6억원 이하) 등 요건이 문 정부의 2017년 말 임대사업 활성화 대책보다 까다롭다. 다주택자 주택 매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값 추락기에 시장 반전을 꾀할 ‘역 추진력’으로 약할 수 있어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언급한 ‘매트’ ‘낙하산’ 역할은 해낼지 두고 볼 일이다. 거대 야당이 거들지 않으면 펴지도 못한다.

격동기에는 불확실성만 가장 확실하고 예상은 언제든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새해 토끼띠를 맞아 토끼의 토영삼굴(兎營三窟) 지혜가 필요하다. 토끼가 만일을 대비해 세 개의 굴을 파놓듯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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