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도그마로 변질된 노론, 물의 이치를 거스르다
속리산 화양계곡과 송시열
그런데 화양계곡에 막상 들어서면 이런 분위기는 금세 흐트러진다. 화양계곡 한가운데 위치한 만동묘와 우암사 때문이다. 이 건물들은 성리학적 이념으로 철저히 무장된 공간이다. 그래서 화양계곡을 오르다 보면 계곡의 ‘자연스러운’ 미(美)보다 묘와 서원의 ‘인위적인’ 꾸밈이 이곳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이 건물들의 설계자 내지는 주인공이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란 사실에 미치면 화양계곡은 그의 공고한 왕국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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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본거지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절대화
명나라의 문물·사상 일방적 추종
조정·사림 장악하고 민생은 뒷전
규범·질서 앞세운 이념의 부작용
계곡물·바위는 여전히 의연한데…
」
조선실록에 3000번 넘게 등장
송시열은 누구인가.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000번 이상 등장한다. 살아서 1000번, 죽어서 2000번인데 웬만한 왕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그가 실록에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건 어째서인가. 사림을 대표하는 선비로 조선의 의식세계를 지배해서다. 그래서 조선의 그 많은 선비 중에 유일하게 자(子)가 붙여져 공자·맹자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성 뒤에 ‘자’는 성현의 위치에 오른 사람을 뜻한다. 더욱이 정조의 명으로 간행된 『송자대전』에 의해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이렇게 추앙되었음에도 송시열은 비난의 수렁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한다. 모든 사림이 받드는 영수보다 철저히 한쪽 사림의 영수로 머문 탓이다. 그가 화양계곡에 은거하면서 노론의 영수로 활약했던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노론의 반대편이었던 남인과 소론은 그를 철천지원수로 여겼다. 게다가 현실 정치까지 좌지우지해 지금으로 치면 이란의 호메이니 같은 존재였다. 남인 거점이었던 영남지방에선 그에게 원한이 얼마나 많았으면 개 이름을 ‘시열’이라고까지 지었을까.
우암에 대한 이런 부정적 시각은 주자학만 신봉한 나머지 이를 유일사상으로 받든 결과이다. 그의 폐쇄적 학문관이 조선의 의식세계를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주자학은 주의화(主義化)되고 유학은 이념화되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나름 유연했던 조선의 유학이 탄력성을 잃고 경직화한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학문은 도그마적 성격이 강해 늘 다툼을 수반한다. 오늘날에도 특정 이론만을 진실이라 우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우암의 학문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학문관을 우암은 화양계곡에서 다듬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는데 이들이 나중에 조정을 장악하면서 화양서원은 노론의 소굴이 되었다. 이런 탓에 화양서원의 행패도 심했다. 화양서원에 쓸 제수전(祭需錢)을 빙자해 각 고을에 보냈던 화양 묵패(墨牌·서원에서 발부한 문서)가 관청의 명령을 능가해 이를 거부하는 수령은 통문을 돌려 쫓아냈다. 이에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묵패로 평민을 붙잡아 껍질을 벗기고, 뼈를 빻아 남쪽 지방의 좀이 된 지 백 년이나 흘렀다”라고 개탄했다.
명나라 황제에 제사 지낸 만동묘
만동묘도 화양계곡을 노론의 본거지로 만드는 데 빠질 수 없다. 만동묘는 우암이 제주도에서 압송되는 도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으며 죽을 때 제자 권상하에게 부탁해 만들어졌다. 이 묘는 명(明)나라 만력제와 숭정제를 기리는 사당인데 만력제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사를 파병한 황제이고, 숭정제는 명의 마지막 황제이다. 만동은 만절필동(萬折必東), 즉 ‘중국의 모든 강은 꺾여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에서 비롯된다. 이는 중국의 정통이 조선으로 모이는 걸 의미하는데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중국 문물과 사상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말이다.
조선에선 왕만 명나라 황제에게 제사 지낼 수 있다. 그런데도 송시열 제자들이 사사로이 감행했던 건 만동묘 제사가 노론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해서다. 이 제사는 노론이 강조한 숭명반청(崇明反淸) 명분과 맞아떨어지는 데다 황제의 권위를 빙자해 조선 왕을 제후로 낮춰 보는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효종 사망으로 촉발된 기해년 예송논쟁에서 송시열이 삼년상 대신 일년상을 고집했던 것도 조선 왕을 독립된 나라의 왕이 아닌 제후로 낮춰본 탓이다.
노자의 ‘상선약수’에 담긴 뜻
명에 대한 송시열의 의리는 암서재에서 잘 발견된다. 암서재는 그가 공부하던 곳으로 화양계곡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금사담 위에 위치한다. 그런데 암서재가 위치한 방향이 색다르다. 계곡 옆 건물들은 대부분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위치하는데 암서재는 그 반대라서 황하에 우뚝 솟은 지주(砥柱)와 같다. 지주는 황하의 격류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아 난세에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비유로 잘 쓰인다. 그러니 청나라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도 우암은 명나라에 충성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도덕경』을 대표하는 문구 중 하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만물과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서다. 이처럼 다투지 않아 노자는 물에는 허물이 없다고 말한다. 금사담 앞을 흐르는 화양계곡의 물도 상선약수에 비유할 만한데 흐르는 물과 거슬러 위치한 암서재를 보노라면 자연 다툼이 연상된다. 한때 아꼈던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고, 절친의 아들이자 제자였던 윤증과도 사이가 멀어져 견원지간이 된 것도 계곡의 상선약수보다 황하의 지주를 더 받든 탓이 아닐까.
또 화양계곡 돌벽에는 비례부동(非禮不動), 즉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명나라 숭정제가 쓴 친필인데 송시열이 이를 입수해 새겼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무너진 양반-평민-노비로 서열화된 조선의 신분질서를 예학을 통해 다시 확립하려 했던 것과 관련이 깊다. 오늘날에도 ‘법과 질서’를 앞세워 흐트러진 사회 기강을 잡으려 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마찬가지 행동으로 본다. 그런데 좋은 정치란 법과 질서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지 않은가.
큰아들 중심의 가정의례 폐해
노론 예학은 ‘자연스러운’ 혈연보다 ‘인위적인’ 명분을 중시해 종법(宗法)의 규범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 결과 아들 중심, 그것도 장자 중심의 가정의례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전만 해도 아들딸 구분하지 않고 재산도 똑같이 분배했으며, 사위도 돌아가며 제사 지내는 일이 이상하지 않았다. 또 장가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랑이 처가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론 예학이 이를 무너뜨리면서 가정의례가 점차 경직화하고, 엄격히 실시되었다. 어디 가정뿐인가.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임진왜란 때 류성룡이 앞장섰던 면천제(免賤制) 약속이 지켜졌다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의병이 출현해 인조를 구출하러 왔을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자 신분질서 확립이 집권 서인의 중요한 명분이 되면서 면천제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이에 백성도 더 속고 싶지 않아 조정의 위기를 바라만 봤다. 또 조선말 진주민란으로 시작된 농민반란이 전국으로 번지자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구한말 외세를 끌어들인 원인이 되었는데 신분제 폐지를 통해 백성이 숨 쉴 여지가 조금만 있었어도 조선은 외세에 의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화양동은 황양목이 많아 원래는 황양동(黃楊洞)이었다. 송시열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화양동으로 고쳐 불렀는데 ‘화’는 중화(中華)를 뜻하고, ‘양’은 일양내복(一陽來復)에서 따왔다. 그러니 송시열이 구상한 화양은 불행이 지나가고 행운이 찾아오는 걸 뜻한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화양계곡은 물론이고, 조선도 그 길을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위적인’ 노력이 아무리 지극정성이어도 ‘자연스러운’ 흐름만 못하다는 무위자연의 노장사상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화양계곡을 걸으며 이런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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