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스쿨존의 슬픈 역설

2022. 12.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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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어린이 보호구역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몇몇 지자체들이 스쿨존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여서다. 입법 당시에도 법률의 실효성과 규제 수준을 두고 말이 많았으니, 논쟁이 계속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소위 ‘민식이법’ 제정 즈음에 나오던 ‘안전’대 ‘실용’이란 가치 논쟁만 똑같이 반복되는 건 서글픈 일이다. 법 시행 후 3년간 쌓인 데이터를 활용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쿨존 속도 제한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시의 위험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어린이 보행사고를 기준으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린이 수’를 ‘전체 어린이 교통사고 수’로 나누면, 교통사고 사망률 형태로 위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민식이법 전후에 바뀌었는지, 스쿨존 내에서와 비(非) 스쿨존에서의 차이가 어떻게 변했는지만 확인하면 민식이법의 효과가 어땠는지도 드러난다. 그런데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의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면, 결과가 일반적인 예상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난다는 게 문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12년부터 2019년까지의 어린이 교통사고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면, 스쿨존 내에서의 사망률은 스쿨존 바깥에서의 사망률보다 늘 높았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명칭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역설적인 결과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모호한 상태다. 스쿨존 인근에는 저연령 아동이 많아 교통사고 시의 사망 위험성이 더 높다는 지적도 있고, 오래된 학교 주변이 도로가 유독 좁고 사각(死角)이 많아서란 주장도 있다. 이유야 어쨌거나 스쿨존에서의 사망률이 더 높게 나오는 게 한국에서는 상시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바뀐 게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이다. 2020년에는 처음으로 스쿨존의 사망률(0.62%)이 스쿨존 바깥에서의 사망률(0.81%)보다 낮아졌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휴교의 영향이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으나, 2021년에도 스쿨존 사망률(0.38%)이 비스쿨존 사망률(0.41%)보다 더 낮게 유지됐단 걸 고려하면 그럴 개연성은 낮다. 해를 넘겨 나올 22년도 통계치도 확인해야겠지만, 현재까진 민식이법이 스쿨존에서의 교통사고 사망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걸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어린이가 없는 야간에도 속도 제한을 하는 게 과도하다는 주장, 시속 30㎞라는 현행 속도 제한이 너무 낮으니 이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 나름의 합리성은 갖췄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민식이법 도입 후 스쿨존에서의 사망률 감소가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규제를, 어느 정도로 완화해야 할지를 무슨 수로 알아낼 셈인가. 지금은 데이터에 근거한 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한 때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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