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감춘 광기 핵전쟁의 민낯
데니얼 엘스버그 지음, 강미경 옮김
두레, 498쪽, 2만3000원
‘인류 종말 기계’는 미국에서 최고 기밀에 속하는 핵전쟁 정책에 대한 내부고발이다. 핵전쟁의 파괴력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핵전쟁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동안 핵전쟁 위기가 얼마나 있었는지,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종말 가능성에서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식은 땀을 흘리며 읽게 되는 책이다.
저자 데니얼 엘스버그(91)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군사 개입을 강화하는 구실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었다는 내용 등을 담은 국방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1971년 폭로해 전쟁을 끝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 공군을 위한 비밀 연구 및 분석을 전담할 목적으로 설립된 랜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미국의 핵전쟁 정책 입안에 관여했다. 또 군사전략가로서 미 국방부 차관보의 특별 보좌관, 국방부 장관실 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수많은 기밀문서를 보았다. 그가 폭로를 결심하고 복사해서 빼낸 기밀문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작성하기도 한 핵전쟁 정책 관련 기밀문서가 훨씬 더 많았다. 엘스버그는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을 통해 1960년대 미국의 핵전쟁 정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폭로했다.
엘스버그가 국방부에서 일하던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합동참모본부에 “전면적 핵전쟁에 대한 계획이 애초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소련과 중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까요?”라는 질문을 보냈다. 1주일 후 ‘대통령만 열람 가능’이라고 적힌 합참 답변서에는 최소 2억7500만명, 6개월째 되는 시점엔 3억2500만명이라고 나와 있었다. 직접 타격을 받는 중국과 소련뿐만 아니라 낙진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될 다른 모든 나라까지 포함하면? 합참의 답변은 약 6억명이었다.
여기에는 미국의 핵탄두가 가져올 결과만 포함됐을 뿐 소련의 보복공격이 가져올 결과는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엔 ‘핵겨울’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않았다. 불폭풍으로 성층권까지 밀어올려진 수백만 톤의 연기와 그을음이 지구를 에워싸 10년 넘게 햇빛 대부분을 차단하게 되고, 지상의 거의 모든 인간과 동물이 굶어 죽게 된다는 게 핵겨울이다.
엘스버그는 핵전쟁 정책을 ‘인류 종말 기계(The Doomsday Machine)’라고 명명하고 “미국의 인류 종말 기계는 1961년에 이미 존재했다”고 증언한다. 미국의 핵전쟁 정책이 전쟁 억지나 보복 수단으로 입안된 것도 아니다. ‘선제적 경보 즉시 발사’가 미국 전략의 핵심이다. 미국은 국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 선제 사용 포기 약속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 대통령들이 그동안 수십 차례가 넘는 ‘위기’ 때마다 미국 대중에게 비밀로 한 채 적들에게 핵무기 사용을 위협했다고 주장한다. 핵공격 위협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힘이었다. 책에 제시된 미국의 핵위협 사례 25건 중에는 한반도 관련 4건도 포함돼 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자 트루먼은 1950년 11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은 원자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1953년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의 해결을 강요하고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은밀하게 핵위협을 가했다.” “1976년 8월 19일 포드 대통령은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도끼 만행 사건’에 대응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데프콘 3를 발령했다.” “1995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핵 원자로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은밀하지만 명백한 위협을 가했다.”
이런 핵위협이 실제 핵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저자는 누군가 실수로라도 핵폭탄을 발사할 경우 곧바로 핵전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시스템은 어느 한 곳만 공격당해도 자동적으로 발사하게 돼 있다. 또 대통령이 ‘핵버튼’을 눌러야만 핵전쟁이 시작되는 게 아니다. 워싱턴에 핵탄두 하나만 떨어져도 대통령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 보복 핵공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핵전쟁 실행 명령 권한은 대통령 휘하의 사령관들에게 비밀리에 위임돼 있다.
핵폭탄은 너무 위험하지만 너무 많고 실행 명령 체계도 불안정하다. 미국 항공모함에는 1000대가 넘는 전술 폭격기들이 러시아와 중국을 코 앞에 두고 수소폭탄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 전투기들은 핵무기를 탑재한 출격 훈련도 한다. 이중 한 전투기가 어떤 이유로 출격해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투하한다면 핵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잘못된 오경보나 테러 활동에 의해, 또는 인가를 받지 않은 발사, 자포자기식 확전 결정에 의해 방아쇠가 당겨지기 쉽다.”
저자는 핵전쟁은 신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위험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 어떤 국가에 모든 나라와 주민, 도시, 나아가 문명 전체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는 핵 능력을 보유할 권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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