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내일 빼요 누나"... 'SNL코리아' 웃음이 찜찜한 까닭
무엇이든 내가 발 디딘 현실과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마침표로 끝나는 OTT 시청 말고, 물음표로 이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선채경 기자]
▲ 12월 3일 올라온 <SNL코리아 시즌3> '나는 술로'의 한 장면 |
ⓒ SNL코리아 |
지난 3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코미디 쇼 < SNL코리아 리부트 시즌3 > 3화 '나는 술로'라는 코너에 등장한 한 장면이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방영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환승연애> 시즌2에 등장한 출연자 정현규씨를 따라한 것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환승연애2>에서 정현규씨는 뒤늦게 합류했지만, 전 연인에게 일편단심이었던 성해은씨를 향해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며 다가가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당시 프로그램 룰에 따라 데이트 신청을 하면서 정현규씨는 "내일 봬요, 누나"라고 말했고, 이는 <환승연애2> 최고의 유행어가 될 만큼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환승연애2>는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누적 유료가입 기여자수 1위를 기록했고, 지난 10월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한국갤럽 제공) 20위에 올랐다. 단연 하반기 최고 흥행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만큼, 많은 패러디 콘텐츠가 양산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 SNL 코리아 >의 '<환승연애2> 따라하기'는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무례한 희화화에 가까워 보였다.
▲ 12월 3일 올라온 <SNL코리아 시즌3> '나는 술로'의 한 장면 |
ⓒ SNL코리아 |
극중 코미디언 이수지는 성해은씨의 화장법과 옷차림, 말투, 표정을 복사·붙여넣기 한 듯 연기하면서 '팻 셰이밍(fat shaming, 살찐 몸을 비하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을 더했다. 전 연인을 잊지 못하는 성해은씨의 상황을 빗대어 "이별의 아픔이 너무 커서 맨날 술로 버티다 보니까 몸무게도 늘었어요", "나 요즘에 술살 올랐거든. 살 빼야 돼"라는 대사로 풍자하며 '살'을 개그코드로 설정했다.
'나는 술로' 코너에 실존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기발한 재창조는 없었다. '비만 여성'을 폄하하는 식의 뻔한 웃음 코드를 그대로 답습할 뿐이었다.
더구나 패러디 대상이 된 이들은 모두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다. 일반인은 이러한 희화화에 불쾌감을 느껴도 표현하기 어렵다. 제작진 입장에서 이들을 소재로 삼는 것의 장점은 뒤탈이 없다는 것이다. 발화 권력이 없는 일반인을 희화화할 때는 돌아올 불이익이나 후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다. 만만한 사람, '아래를 향한 풍자'는 쉽다. 하지만 쉬운 선택만 한다면 < SNL 코리아 >는 저열하고 질 낮은 콘텐츠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 SNL >은 본디 '유명 인사들의 코믹한 변신과 정치풍자를 만날 수 있는 코미디'라는 취지로 시작했다. 지난 2011년 한국 채널 tvN이 포맷 라이센스를 구입하면서 시작된 < SNL 코리아 > 역시 그 취지를 잊지 않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선보인 < SNL 코리아 >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는 유력 정치인들을 거침없이 풍자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모난 돌처럼 튀어나와서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
2014년 3월, '여의도 텔레토비'가 정치적 편파성 문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이 된 후, 안상휘 책임프로듀서(CP)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한 제작진의 고군분투 때문이었을까. < SNL 코리아 >의 '위(권력)를 향한 풍자'는 정세에 따라 무뎌졌다가 날카롭게 날을 세우기를 반복하는 기복을 보였다.
프로그램을 존폐 위기에 놓이게 하는 정치 풍자보다 오히려 약자를 겨냥하는 건 쉬웠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물론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에서 리부트된 현재까지도, < SNL 코리아 >는 외국인, 장애인, 입양아 등 사회적 약자를 유머의 단골 소재로 삼고 있다.
2014년에는 해외입양인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을 소재로 삼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제이슨 두영 앤더슨'이 있었다. 해당 방송은 해외입양인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항의와 비판을 받았다. 2016년 시즌8에서는 방송인 탁재훈씨가 "제주도에 외국인 범죄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전하며 중국인의 말투를 따라하는 장면으로 비판을 받았다.
리부트 시즌 이후에도 < SNL 코리아 >의 희극 양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2년 2월 방송된 'AI 수어 통역사' 코너는 엉터리 수어와 몸짓으로 수어를 비하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국농아인협회로부터 공식 항의도 받았다. 농아인협회는 "< SNL코리아 >의 수어 비하 영상은 명백하게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다"며 성명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 '쿠팡플레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시된 사과문. '수어 비하'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
ⓒ 쿠팡플레이 |
장애인, 입양인, 일반인, 외국인 등 < SNL 코리아 >의 풍자는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원작인 미국 NBC의 < SNL(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는 신선함과 날카로운 정치 풍자가 핵심이건만, 한국판에서는 그 날카로움이 무뎌져 오히려 자극적인 유튜브, 인터넷방송 콘텐츠와 차별점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올해 초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안상휘 CP는 "방송 뉴스와 신문을 보면 소재는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아예 작정하고 정치 풍자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안 CP의 말대로 소재가 쏟아지는 사회다. 종영한지 한 달 넘게 지난 연애 리얼리티의 일반인 출연자를 희화화하는 것이 더 중요했을까?
< SNL 코리아 >가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2011년에는 케이블 방송이 가장 개방적이고 빠르게 유행을 반영했을 것이다. 이제는 유튜브, 틱톡, 등 무수히 다양한 플랫폼의 콘텐츠들이 더 빠르게 시대의 조류를 탄다. '아래로 향하는 풍자, 조롱'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대규모로 양산되는 저질 콘텐츠와 다를 바 없다면, < SNL 코리아 >의 존재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결국 '모난 돌' 되지 않으려다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로 남을 수도 있다. 날카로운 풍자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없이, 타인을 얼마나 똑같이, 얼마나 웃기게 따라 하느냐에 집중한다면 말이다. < SNL 코리아 > 제작진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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