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처벌규정 유리하게 바뀌면 항상 신법 적용해야"… 60년 만에 판례 변경

최석진 2022. 12. 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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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채택한 '동기설' 폐기
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대법원 제공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형사처벌 규정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바뀐 경우 법령이 개정된 동기와 관계없이 항상 유리한 신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유리한 신법 우선의 원칙'을 정한 형법 제1조 2항의 해석과 관련 1963년 법률개정의 동기에 따라 그동안의 처벌이 부당했거나 형이 과중했다는 반성적 고려 혹은 법적 견해의 변경에 따른 개정일 때만 유리한 개정법을 적용하고, 단순한 사실관계의 변경에 따른 개정일 때는 종전법을 적용하는 이른바 '동기설(動機說)'을 채택한 이후 줄곧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60년 만에 판례를 변경했다.

반성적 고려에 따른 법령 개정일 때만 유리한 신법 적용했던 동기설 폐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2일 열린 A씨의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등 혐의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징역 2년 10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범죄행위 당시 적용되는 형벌법규 자체 또는 그로부터 수권 내지 위임을 받은 법령이 범죄행위 이후 변경돼, 범죄행위 이후에는 범죄를 구성하지 않게 되거나 형이 가벼워진 경우에는, 개정 법령의 취지가 '종전 법령이 범죄로 정해 처벌한 것이 부당했다거나 과형이 과중했다는 반성적 고려에 따라 변경된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원칙적으로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가 적용되므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변경된 신법(재판시법)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와 달리 범죄행위 이후 피고인에게 유리한 법령 변경이 있는 경우 유리한 신법을 적용하도록 한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는 법령 변경의 동기가 종래의 처벌 자체가 부당했다거나 과형이 과중했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변경됐을 때에만 적용된다는 이른바 동기설을 따른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이 부분 공소사실과 같이 도로교통법 제44조 1항 위반 전력이 있는 사람이 다시 술에 취한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운전한 행위는, 이 사건 법률 개정 전에는 구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1항이 적용돼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됐으나, 이 사건 법률 개정 후에는 도로교통법 제156조 11호가 적용돼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되게 됐다"며 "이러한 이 사건 법률 개정은 구성요건을 규정한 형벌법규 자체의 개정에 따라 형이 가벼워진 경우에 해당함이 명백하므로, 종전 법령이 반성적 고려에 따라 변경된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형법 제1조 2항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판결 중 이 부분 공소사실에 관한 부분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2호의 '판결 후 형의 변경이 있는 때'에 해당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라며 "따라서 원심판결 중 이 부분 공소사실에 관한 부분은 파기돼야 하는데, 이 부분은 유죄로 인정된 나머지 부분과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이 선고됐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돼야 한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같이 견해를 변경하는 근거로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의 법문언에 기초해 정당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위 규정들은 범죄 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법령이 변경된 경우 행위시법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유리한 재판시법을 적용한다는 취지임이 문언상 명백하다는 점 ▲이 같은 문언의 명확한 개념과 다르게 종래 대법원판례와 같이 반성적 고려에 따른 것인지에 따라 위 규정들의 적용 여부를 달리해야 하는 근거를 찾기가 어려운 점 ▲종래 대법원판례는 법문에 없는 추가적인 적용 요건을 설정한 것으로 목적론적 축소해석에 해당하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규정에 대한 축소해석은 불가피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로 최대한 제한돼야 하는 점 ▲입법자가 법령의 변경 후에도 종전 법령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할 경우 이에 상응한 경과규정을 둘 수 있다는 점 ▲형법 제1조의 문언과 입법취지 등을 종합해 보면,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에서 말하는 법령의 변경은 해당 형벌법규의 가벌성에 관한 형사법적 관점의 변화를 전제로 한 법령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2심 재판 도중 도로교통법 유리하게 개정, 2심 선고 뒤 시행

A씨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인출책으로 가담한 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와 무면허나 음주 상태에서 사고를 낸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및 음주운전) 등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처벌된 전력이 있는 A씨의 혐의 중 2020년 1월 5일 용인시 기흥구청 인근 도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209%의 음주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적발된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가 쟁점이 됐다.

A씨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2심 재판을 받고 있던 중 도로교통법이 개정됐고, 2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 개정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검사는 A씨의 전동킥보드 음주운전 행위에 대해 개정 전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1항을 적용해 기소했다.

당시 조항의 법정형은 '징역 2년 이상 5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였다.

그런데 2심 유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 제2조 19호의2 및 21호의2에서 이 사건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와 이를 포함하는 '자전거등'에 관한 정의규정이 신설됐다.

그리고 개정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 음주운전 행위는 '자동차등'에 관한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자전거등'에 관한 제156조 11호의 적용 대상이 됐다.

법정형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 대폭 낮아진 것.

형법은 행위시법 적용이 원칙… 유리한 경우 예외적으로 신법(재판시법) 적용

형법 제1조(범죄의 성립과 처벌) 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고 행위시법주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범죄 행위가 있은 뒤 사후에 법을 개정해 무겁게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파생원칙인 '소급효금지의 원칙'을 명시한 형법의 시간적 적용범위에 관한 원칙적 규정이다.

다만 같은 조 2항은 '범죄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구법(舊法)보다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新法)에 따른다'며 예외적으로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경우 신법을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 같은 조 3항은 '재판이 확정된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한다'고 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26조(면소의 판결) 4호는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 판결로써 면소의 선고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는 입법자가 법령의 변경 이후에도 종전 법령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유지한다는 내용의 경과규정을 따로 두지 않는 한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형벌법규가 법규명령이 아닌 고시 등 규정에 구성요건의 일부를 수권 내지 위임한 경우'에도 이러한 고시 등 규정이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형벌법규와 결합해 법령을 보충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므로, 그 변경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않게 되거나 형이 가벼워졌다면 마찬가지로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가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그러나 해당 형벌법규 자체 또는 그로부터 수권 내지 위임을 받은 법령이 아닌 '다른 법령이 변경된 경우'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를 적용하려면, 해당 형벌법규에 따른 범죄의 성립 및 처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형사법적 관점의 변화를 주된 근거로 하는 법령의 변경에 해당해야 하므로, 이와 관련이 없는 법령의 변경으로 인해 해당 형벌법규의 가벌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에는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법령이 개정 내지 폐지된 경우가 아니라 '스스로 유효기간을 구체적인 일자나 기간으로 특정해 효력의 상실을 예정하고 있던 법령(이른바 한시법)이 그 유효기간을 경과함으로써 더 이상 효력을 갖지 않게 된 경우'도 형법 제1조 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에서 말하는 법령의 변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형사처벌 내용을 담은 법령 자체가 개정되거나, 상위 법령의 위임에 따라 처벌 조항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한 고시 등 규정이 개정된 경우에는 개정의 이유를 따지지 않고 항상 유리한 신법이 적용돼야 하지만, '다른 법령'이 개정된 경우에는 형사법적 관점의 변화를 근거로 한 법령의 개정인 경우에만 신법을 적용해야 하고, 유효기간이 있는 한시법의 경우에는 법이 유리하게 개정된 이후라도 유효기간 중의 범죄행위는 기존 법령에 따라 처벌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별개의견 및 이번 판결의 의의

한편 조재연·안철상 대법관은 "이 사건은 형벌법규 자체가 변경된 원칙적인 경우이므로 행위시법을 적용한 원심판결을 유지할 수 없어 파기해야 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지만, 나머지 유형들은 추후 해당 사건에서 이러한 기본 법리를 기초로 한 균형 잡힌 해석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돼야 하므로, 다수의견이 이 사건의 직접 쟁점이 아닌 예외적 유형들에 관해 설시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또 노태악·천대엽 대법관은 "이 사건은 법령의 유효기간이 문제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해야 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지만, 유효기간을 구체적인 일자나 기간으로 특정한 법령(한시법)이 이를 경과한 경우 일률적으로 행위시법을 적용하도록 판시한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령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변경된 경우 행위시법과 재판시법 사이에서 재판규범을 결정하는 기준에 관해 1960년대부터 장기간 형성·유지돼온 판례 법리(이른바 동기설)를 폐기하고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법령의 변경이 문제되는 경우 재판규범의 결정에 관해 법문에 기초해 보다 분명하고 예측가능한 판단기준과 방법을 제시하고, 대표적인 사안들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법리를 제시한 판결"이라며 "이로써 수범자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고, 행정청과 사법기관의 자의적인 법해석을 방지해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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