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한국계 작가 바람… SF가 대세로

김남중 2022. 12. 2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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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출판·문학계의 현상들
2022년 출판·문학계를 돌아보며 어떤 현상이라고 할만한 움직임들을 정리해 본다. 올 한 해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건 한국 소설이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이 대거 소개된 해이기도 하다.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부커상 후보에 오르고, 이수지가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이는 SF(과학소설)와 그림책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지역 출판의 참신한 시도들, 새로운 저자들의 등장은 내년을 기대하게 한다.

왼쪽부터 환상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SF 작가 정보라,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그림책작가 이수지, ‘파친코’ 작가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 이민진. 국민일보DB

한국 소설 바람

교보문고의 ‘2022년 도서 판매 집계’를 보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 10위 안에 ‘불편한 편의점’(1위)을 비롯해 한국 소설이 5권이나 포함됐다. 100위 안에는 소설이 27권이나 들어갔다. ‘파친코’(이민진), ‘하얼빈’(김훈),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작별인사’(김영하) 등 정통 소설들이 올해 소설 바람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판타지 소설 붐이나 젊은 여성 작가들 중심의 문학 흐름과 차이를 보였다. 빨치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쏟아진 뜻밖의 관심은 정지아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주류가 된 SF

문학 시장에서 SF 장르가 눈에 띄게 늘었다. 국내 작가들의 SF 출간은 물론 해외 유명 SF 작가들의 소개도 활발했다. 김영하가 첫 SF 작품인 ‘작별인사’를 발표하고, 젊은 등단 작가들이 새로 SF 창작에 나서는 등 문학과 SF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정보라의 환상소설 ‘저주토끼’가 세계 3대 문학상에 속하는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고, 전통의 문학잡지 ‘현대문학’이 20명의 SF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집을 선보인 것은 SF의 주류화를 공인하는 사건이었다.
콘텐츠로서의 지역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강원도 고성, 충북 옥천, 대전, 전남 순천, 경남 통영에서 활동하는 지역 출판사 5곳이 공동 기획·출간한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와 충북 괴산의 1인출판사와 동네책방들이 뭉쳐 창간한 로컬잡지 ‘툭(to ook)’은 지역 출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역으로 이주하는 출판사와 책방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의해 발굴된 지역 이야기와 지역 작가들이 출판 콘텐츠에 활기를 공급하고 있다. 천현우 에세이집 ‘쇳밥일지’와 이기호 연작소설 ‘눈감지 마라’는 청년 담론에서 가려져 있던 ‘지방 청년들’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공간이 주인공

100만부 돌파한 ‘불편한 편의점’

100만부를 돌파한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비롯해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황보름의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김리리 동화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박정부 다이소 창업자 이야기 ‘천 원을 경영하라’까지 올해 베스트셀러 중에는 공간을 내세운 책들이 많다. 여기서 편의점이나 서점, 다이소 등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간 자체가 친근한 스토리가 되고, 이런 이야기들이 10대들까지 독자로 끌어들인다.
한국계 작가들

해외에서 거주하며 외국어로 글을 쓰는 한국계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민진(‘파친코’), 미셸 자우너(‘H마트에서 울다’), 김주혜(‘작은 땅의 야수들’) 등 재미 한인 작가들뿐만 아니라 덴마크에 입양된 후 시인이 된 마야 리 랑그바드(‘나는 화가 난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조선시대 배경 미스터리 역사소설을 쓰는 허주은(‘사라진 소녀들의 숲’) 등이 올해 소개됐다. 한국문학번역원을 중심으로 해외 한인들의 디아스포라 문학을 한국 문학으로 끌어 안아야 한다는 논의도 시작됐다.
그림책이라는 장르

지난 3월 이수지가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고, 이수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가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수지의 수상은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그동안 그림책은 아동문학이나 동화에 속한 채 독립된 장르로 인식되지 못했다. 이수지와 그림책계는 안데르센상 수상으로 쏠린 관심을 활용해 그림책 장르의 미분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동화작가’로 불리던 이수지는 ‘그림책작가’라는 제 이름을 찾았고, 그림책 분야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품이 된 책

수작업으로 완성된 책 ‘녹스’

올해 나온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녹스’를 꼽는 이들이 많다.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이 마약중독자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며 스크랩북처럼 만들어 종이 상자에 담은 책이다. 192쪽 전체를 수작업으로 풀칠해 긴 병풍처럼 이었다. 책이라는 물건이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한 권에 5만5000원인 이 책의 초판 1500권이 출간 직후 모두 판매됐다는 사실은 작품같은 책,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다. ‘여름이 온다’ 등 이수지의 그림책들 역시 미술 작품처럼 구성하는 걸로 유명하다.
문프셀러

문재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에서 눈에 띄는 게 책 추천이다. 그가 페이스북을 통해 추천한 책들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문프셀러’라는 말까지 생겼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하얼빈’은 문 전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판매에 가속이 붙었다. ‘짱깨주의의 탄생’ ‘시민의 한국사’ ‘나는 독일인입니다’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도 ‘문픽’을 받아 독자들에게 다시 발견되는 기회를 얻었다. 책을 읽고 추천하는 일을 퇴임 후 활동으로 삼은 전직 대통령은 한국에서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추천 도서가 주목을 받는다.
새로 떠오른 저자들

논픽션 분야에서는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20대 용접공으로 일한 경험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쇳밥일지’의 천현우와 ‘급진의 20대’를 통해 보수화된 청년 세대라는 담론을 일신한 문화연구자 김내훈이 호평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과하고 있는 세계 여성 17명의 인터뷰집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를 출간한 윤영호·윤지영은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국제 이슈에 대한 원천 콘텐츠를 생산하는 역량을 보여주었고 다음 작업을 기다리게 한다. 문학 분야에서는 ‘가녀장의 시대’를 통해 소설에 도전한 에세이스트 이슬아, 강렬한 데뷔작 ‘이중 작가 초롱’을 선보인 이미상이 올해의 발견으로 많이 언급됐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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