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도담보로 제공한 차량 처분해도 배임죄 아냐"… 일반동산·부동산처럼 견해 변경

최석진 2022. 12. 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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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대법원 제공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타인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한 차량을 제3자에게 처분해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양도담보를 설정해준 채무자가 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한 타인의 사무가 아니기 때문에 애초부터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미 대법원은 일반 동산 양도담보와 부동산 양도담보에 대해 기존의 입장을 변경해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채권자에게 부담하는 여러 의무(담보물의 가치를 유지·보전하고 담보권자가 담보권을 실행할 때 담보물을 인도할 의무 등)는 채무자 자신의 채무이지 타인의 사무가 아니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동산과 부동산의 중간 영역에 있는 등기나 등록을 요하는 동산(자동차, 중기 등)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됨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2일 오후 열린 A씨의 배임 혐의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배임죄 유죄를 인정,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 소유의 이 사건 자동차를 피해자 회사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약정하여 소유권이전등록의무를 부담하더라도 그러한 의무는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른 자신의 사무일 뿐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와 신임관계에 기초해 피해자 회사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을 피해자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권리이전에 등기·등록을 요하는 동산인 자동차를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한다"고 밝혔다.

멀티탭 판매 회사 대표인 A씨는 회사의 미납대금 변제를 담보하기 위해 멀티탭 납품회사 대표인 B씨에게 자신의 봉고 차량을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공정증서까지 작성해놓고 약속과 달리 245만원에 차량을 제3자에게 매각한 혐의(배임)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과 2심은 자동차처럼 권리이전에 등기나 등록이 필요한 동산에 대한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이를 임의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A씨에게 배임죄 유죄를 인정,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전합 자동차처럼 권리이전에 등기나 등록이 필요한 동산의 경우에도 일반 동산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법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금전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의 급부이행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금전을 대여하고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채권의 만족이라는 이익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신임을 기초로 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했다고 할 수 없고,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의무를 다하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따라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또 재판부는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 즉 동산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하거나 담보물을 손상, 감소 또는 멸실시키지 않을 소극적 의무, 담보권 실행 시 채권자나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담보물을 현실로 인도할 의무와 같이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 등은 모두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급부의무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위와 같은 법리는, 권리이전에 등기·등록을 요하는 동산에 관한 양도담보설정계약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며 "따라서 자동차 등에 관해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해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이를 타에 처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이라며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닌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민사적 채무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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