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세법, 막판 합의…법인세 1%p 인하, 금투세 유예
2023년도 예산안이 확정됐다. 당초 정부안(639조원)보다 소폭 줄어든 규모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예산 부수 법안인 세법 개정안도 함께 국회 문턱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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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지역화폐, 늘어난 공공임대 예산
주호영 국민의힘·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내년도 예산안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지면서 사상 초유의 준예산 공포는 불식됐다. 합의안엔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요구한 예산이 일부 포함됐다. 정부는 올해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예산을 0원으로 완전히 삭감한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부활했다. 최종 예산안에 3525억원이 포함되면서다.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6600억원, 노인 일자리 등 예산은 957억원 정부안보다 각각 늘었다. 0~2세 장애아 지원 보육료 인상,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복지 예산도 소폭 증액됐다. 기초연금 부부 감액 폐지와 단계별 인상 방안은 여야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건전 재정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지역화폐 예산에 대해서도 “지자체 예산으로 할 수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건 부적절한 사업”이라며 전액 삭감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야당 ‘버티기’에 막혔다. 국회 합의 과정에서 정치적 셈법에 따라 예산이 늘어나는 전례가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경비는 정부안에서 50%씩 감액됐다.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이 윤석열 정부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커 여야가 마지막까지 대립한 부분이다. 앞서 정부안엔 5억1600만원이 편성됐었다. 민주당은 해당 기관을 인정할 수 없는 만큼 예산 편성이 불가능하다고 맞섰지만, 결국 절반을 감액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대신 정부조직법 개정 때 국회에서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다.
법인세, 전 구간 1%포인트 인하
내년도 세법 개정의 핵심 쟁점이었던 법인세 개정안도 막판 합의가 이뤄졌다. 법인세율은 현행 과세표준 구간별로 각각 1%포인트씩 낮아진다. 과표 기준 세율은 ▶2억원 이하 10% ▶2억~200억원 20% ▶200억~3000억원 22% ▶3000억원 초과 25%로 나눠져 있는데 이를 각각 1%포인트씩 인하하는 방식이다. 이로써 내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에서 24%로 낮아진다. 다만 법인세 인하가 1%포인트에 그쳐 정부·여당이 강조했던 기업 활력 제고와 투자 선순환이라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계도 “아쉽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성명에서 “기업이 당면한 경영 위기를 극복하는데 (법인세 개편안이) 조금이나마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면서도 “법인세율 인하 폭이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충분하지 못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해외 자본의 국내 유치를 촉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여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투세 유예, 양도세 대주주 기준 유지
종합부동산세 공제금액은 6억원에서 9억원(1주택자 11억→12억원)으로 올라간다. 조정대상지역과 무관하게 2주택자까지는 기본세율을 적용하고, 3주택자부터 다주택자 중과세율(2~5%)을 매기기로 했다. 대신 과세표준이 12억원을 넘지 않으면 3주택자라도 중과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정부안대로 시행을 2년 유예키로 했다. 금투세란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이 상장주식 기준 5000만원을 넘으면 22~27.5%(지방소득세 포함)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현행 주식양도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은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로 유지된다. 민주당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당초 정부는 투자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 요건을 100억원으로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현행 0.23%인 증권거래세는 내년(0.2%)부터 2025년(0.15%)까지 단계적으로 내려간다.
가업상속공제는 중견기업 매출액 기준 5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월세 세액공제율은 총급여 5500만원 이하는 17%, 5500~7000만원인 사람은 15%로 상향 조정한다.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는 3년간 한시로 신설한다.
최장 지각 예산…“5년간 이럴 듯”
이날 여야는 막판 예산안 합의를 이뤄냈지만,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이란 꼬리표도 달았다.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올해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립으로 준예산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준예산은 회계연도 개시일(1월 1일)까지 예산안 심의가 확정되지 않았을 때 전년도 예산에 준해 잠정 집행하는 예산을 말한다. 여야가 역대급 대치 상태를 이어가면서 “최악의 경우 준예산 사태가 발생하면 재량지출이 막힌다”(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는 지적이 있었다.
야당은 예산안 합의 과정에서 헌정 사상 유례없는 단독 수정안 처리 가능성을 수시로 언급했다. 국회 의석 과반이 넘는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예산·세법·정책 등이 다 막히는 현실이 드러났다. 정부·여당이 앞으로도 계속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정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소신이 강하다. 적당히 여야가 합의하고 타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향후 5년간 이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여야는 올해 말에 일몰되는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28일 국회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 화물차운수사업법, 근로기준법, 한국전력공사법, 한국가스공사법 등 본회의에 상정된다. 한전의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2배에서 5배로 높이는 한전법 개정안은 지난 8일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로 인한 요금압박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고, 한전법 개정안은 다시 본회의에 오르게 됐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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