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 사용 의료법 위반 아냐"… 첫 판시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한의사가 환자에게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 사용과 관련 그동안 하급심에서 의료법 위반 혐의 유죄가 확정된 사례는 여러건 있었지만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한 적은 없었고, 헌법재판소가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대법원은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 사용은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2일 오후 열린 한의사 A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A씨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강남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씨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환자 B씨를 치료하면서 모두 68회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모델명 LOGIQ P5)를 사용해 진료행위를 함으로써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혐의(의료법 제27조 1항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가 치료한 B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자궁내막증식증이라는 진단명으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자궁난소 치료 전문병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A씨의 한의원을 찾았고, A씨는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 B씨의 신체 내부를 촬영해 초음파 화면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자궁내막의 상태를 확인·진단하는 방법으로 진료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에게 진료를 받은 B씨는 2012년 7월 초순경 산부인과 병원에서 초음파검사를 받은 결과 '덩어리가 보이니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고,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에서 실시한 조직검사에서 자궁내막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검찰은 A씨가 의료법상 금지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의료법 제27조 1항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같은 법 제87조의2(벌칙) 2항 2호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된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 유죄를 인정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새로운 판단기준 제시하며 종전 대법원 판례 변경재판부는 "원심은 한의사가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종전 대법원 판결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그러나 의료행위 관련 법령의 규정과 취지는 물론 의료행위의 가변성, 그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및 과학기술의 발전과 응용 영역의 확대, 이와 관련한 교육과정·국가시험 기타 공적·사회적 제도의 변화,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선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 우려가 없음을 전제로 하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해 종전 판단기준은 새롭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부는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으로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의 특성과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춰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춰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구체적 근거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를 적용 또는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히 증명됐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춰 살펴보면, 한의사인 피고인이 이 사건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구 의료법 제27조 1항 본문의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구 의료법 제27조 1항 본문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의 범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와 달리 진단용 의료기기의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종전 판단기준'이 적용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2010도10352 판결을 비롯해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모두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하급심에서는 대법원이 제시한 종전 기준 따라 유죄 판결… 헌재도 의료법 위반 판단하급심 재판에서 A씨 측은 A씨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범위 내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A씨의 변호인은 그 근거로 ▲초음파 진단기의 작동원리는 물리학적 원리에 기초한 것이지 서양의학적인 원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초음파 진단기는 태아나 산모에게도 사용되는 등 그 자체로 안정성에 문제가 없으며 ▲한의사들은 정규 과정을 통해 초음파 진단기의 사용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방의료행위를 하는 범위 내에서만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고 있고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 보호와 증진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앞선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대법원은 2014년 한의사 C씨가 잡티제거 등 피부질환 치료를 위한 광선조사기인 아이피엘(IPL, Intense Pulse Light)을 이용해 1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C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의료법령에는 의사, 한의사 등의 면허된 의료행위의 내용을 정의하거나 구분 기준을 제시한 규정이 없으므로, 의사나 한의사의 구체적인 의료행위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이원적 의료체계의 입법 목적, 당해 의료행위에 관련된 법령의 규정 및 취지, 당해 의료행위의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당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 의과대학 및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국가시험 등을 통해 당해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비춰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 이외에 의료공학의 발전에 따라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이러한 법리에 기초해,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당해 의료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당해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당해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당해 의료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의 의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하급심 재판부는 A씨가 사용한 초음파 진단기는 당시의 의료기기법 시행규칙상 등급분류 기준을 따를 때 상대적으로 위해성이 낮은 2등급 기기에 해당되고, 사용시 온도 상승효과가 미미해 세포막 손상, 염색체 손상 등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된 적이 없으므로 사용 자체로 인한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전제했다.
또 A씨가 한의학과에서 초음파 진단과 관련된 과목을 수강했고, 한의사로 일하면서 한방초음파장부형상학회에서 초음파 진단기의 사용방법 등과 관련된 수업을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한 검사 및 진단 행위는 이상 증세가 있거나 특정 질환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검사자가 즉각적으로 결정해 추가 검사를 시행하는 등으로 정확하게 판독하는 작업이 필수적이고,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 검사 및 진단을 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면 적절한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없게 돼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상의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한 검사 및 진단 행위는 기본적으로 영상의학과의 전문 진료과목이다"라며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한 검사 및 진단 행위가 그 시행은 비교적 간단하다고 볼 수 있으나 영상을 평가하는 데는 인체 및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현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 영상의학과 의사나 초음파검사 경험이 많은 해당과의 전문의사가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록 초음파 진단기의 사용이 어렵지 않고 위험성이 크지 않더라도, 영상을 보고 검사 결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한의사의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2년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 'Osteoimager plus'를 이용해 성장판 검사를 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갈근해기탕 등 체질개선 한약을 제조해준 의사들이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을 기각하며 "청구인들이 이 사건 초음파기기를 사용해 환자들의 성장판의 상태, 성장 부진 여부, 골다공증 등의 진단을 하거나 이를 토대로 한약을 처방한 행위는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헌재는 "한의사인 청구인들에게 면허된 의료행위는 한방의료행위라 할 것인데, 우리 의료법 및 의료관계 법령에서는 양·한방의 의료영역을 구분하고, 각각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금지·처벌하면서도 특정한 의료행위가 허용 내지 금지되는지 여부에 관해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정 행위가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의료행위의 태양 및 목적, 학문적 기초,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 정도, 관련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라고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또 헌재는 의료법상 '의사'나 '면허범위', '한방의료행위' 등 표현이 죄형법정주의로부터 파생된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수의견 및 이번 판결의 의의… 앞선 헌재 결정과 배치되지 않아반면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우리의 의료체계는 양방과 한방을 엄격히 구분하는 양방·한방 이원화 원칙을 취하고 있고, 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를 구별해 각각의 면허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한의사가 서양의학적인 방법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다면 이는 이원적 의료체계에 반하는 것으로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할 것인지는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방향으로 제도적·입법적으로 해결함이 바람직하다"며 "그러한 제도적·법률적 정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의 의의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의료행위의 가변성, 과학기술의 발전, 교육과정·국가시험의 변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가능성 등을 감안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해당 여부에 관하여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 의료법 위반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라면서도 "다만, 이번 판결은 한의사로 하여금 침습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다. 또 이번 판결을 의료법에 규정된 이원적 의료체계를 부정하는 취지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한편 앞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 사용을 의료법 위반으로 판단한 헌재 결정과 관련해 재판부는 "과거 헌재는 2012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으나, 그 당시와 비교할 때 현재 한의과 대학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의료행위의 전문성 제고의 기초가 되는 교육 제도·과정이 지속적으로 보완·강화돼 왔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내지 헌법소원 청구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기속력이 인정되지 않는 데다가, 당시 헌재가 의료법 제27조 1항의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해석의 기본적 방향에 관해서 '국민의 건강 보호 및 증진에 중점을 둬야 하고, 과학기술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해석돼야 한다'라고 선언한 바도 있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 전합 판결과 헌재 결정의 취지가 배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헌재법상 헌재의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 헌법소원 인용 결정 등에는 기속력이 있지만 헌법소원이 기각된 경우에는 기속력이 없기 때문에, 헌재가 청구인의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한 사건의 결정이유에서 위와 같은 입장을 밝혔더라도 국가기관 등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는 의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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