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 전주영화제 위원장 선임 여진, 보이콧 주장도 솔솔

성하훈 2022. 12. 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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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사퇴는 최소한의 양심선언... 25일 이후 정준호 임명 예정

[성하훈 기자]

 우범기 전주시장과 정준호 배우
ⓒ 전주시청, 전주영화제 제공
 
영화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범기 전주시장이 정준호 배우를 전주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제의 독립성 훼손을 비판하고 있는 영화계 내부에서는 전주영화제 보이콧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주영화제 측은 사퇴 의사를 표명한 권해효 배우, 방은진 감독, 한승룡 감독 3인 영화인 이사들을 설득하고 있으나, 이들 모두 사퇴 의사를 접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전주영화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전주시장은 영화계의 비판과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크리스마스 이후 집행위원장 위촉장을 수여할 것으로 알려지고 영화계와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은진 감독은 이사직 사의에 대해 "정체성과 독립성을 훼손한 당연직 조직위원장인 현 전주시장의 불통에 대해 고육지책이었다"며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속적으로 영화계 우려를 전달하고 그것을 경청해주길 바랐던 과정이 결국 '공동집행위원장'이라는 해괴한 차선 안건으로 이사회에 올라왔다"며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표결을 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향해 던진, 영화인 이사들이 최소한의 양심선언이었다"고 덧붙였다.

임순례 감독은 "시장이 정체성과 대중성확보를 위한 선임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는데, 전주영화제는 이미 정체성과 대중성이 확립된 영화제 아니냐"며 "새로운 집행부가 정체성과 대중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영화계 내부에서는 "전주시장의 판단 잘못이 곧 확인될 것 같다"면서 "그전에 영화계 제 단체가 보이콧을 공개선언 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서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가  집행위원장에 임명돼 전주영화제가 혼란을 겪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주 출신으로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민병록 동국대 명예교수는 "영화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시장이 영화제를 망쳐 놓으려 작정한 것 같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는 "영화인들 참여 없이 영화제를 어떻게 치를 수 있냐"며 "지금껏 전주영화제에서 현 시장을 만난 적이 없는데, 영화나 한 편 제대로 본 게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 이상 비전문가들이 영화제를 흔들지 못하게 부산이나 부천처럼 별도로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를 지낸 정낙성 전 전북청소년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왜 A급 영화제를 굳이 F급으로 떨어뜨리는지 모르겠다"면서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집행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뻔뻔하다"고 비판했다.

블랙리스트 때 싸웠던 전주영화제인데
 

영화계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는 보수정권의 블랙리스트 문제도 연관이 있다. 독립영화인들 상당수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양 각색의 탄압을 받았고, 권해효 배우와 방은진 이사 역시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2017년 10월 발표한 '문예계 내 左(좌)성향 인물 현황'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관련기사: 박찬욱·봉준호 이력이 왜 이래? MB 국정원도 의심해 봐야 http://omn.kr/oi80)

우범기 시장의 반말에 모욕감을 느끼고 사표를 낸 박흥식 전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만큼, 국내 영화계의 중심인물 대다수가 보수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라 크고 작은 불이익을 당했다.

반헌법적 국가범죄가 자행된 것인데도, 여기에 책임 있는 정치세력인 집권 여당은 한마디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최근 부마항쟁기념식에서 노래 가사로 가수 이랑이 배제된 문제도 블랙리스트 재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주영화제는 블랙리스트 시기 한국영화의 방파제 역할을 맡아왔다. 2014년 다이빙벨 사태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로 보수 정치 권력이 영화제의 독립성을 침해할 때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전임 김승수 시장은 "영화의 본질은 영화를 만드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있다"면서 전주영화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강조했고, 이전 시장들과 마찬가지로 영화계의 뜻을 존중하며 신뢰를 받았다.

표현의 자유가 생명인 영화제와 블랙리스트로 탄압한 보수 정치세력이 서로 어울리지 않다보니, 정준호 배우가 선거 과정 등에서 보수 정치인들을 도왔던 전력에 대해 영화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다.

금강역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김대현 감독은 "전주시장이 앞장서서 전주국제영화제를 풍비박산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며 "정준호 임명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2016년 부산영화제 탄압에 맞서 연대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국내영화제 집행위원장들. 당시 이충직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 성하훈
 
"배우나 전주영화제 모두에게 불행"

물론 일부 보수적인 영화인들은 "오랜 시간 영화 활동을 한 배우가 집행위원장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나"며 "영화계의 배우 출신 영화제 집행위원장 반대는 폭력으로 비친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꾸준하게 독립영화 창작활동을 하는 박석영 감독은 "기존 배우 출신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의 경우 이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낙하산으로 떨어진 경우가 아닌 신생 영화제를 맡아 성장시키거나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하며 영화제에 애정을 쏟은 분들 아니냐"고 단순 비교를 일축했다.

이어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상장 받은 것처럼 인식되는 자리가 아니고, 2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전주영화제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보인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자리인데, 독립영화에 대한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다 이해도 부족한 사람이 집행위원장을 하는 것은 정준호 배우나 전주영화제 모두에게 불행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20년 넘게 독립영화제를 지지하고 사비를 털어 묵묵히 독립영화를 지원해 신뢰를 받고 있는 권해효 배우 같은 분들이 여럿 있듯이, 정준호 배우가 굳이 집행위원장을 하겠다면 맨 아래에서부터 신뢰를 쌓고 올라와서 자신의 역량과 진정성을 보이는 게 먼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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