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열쇠 갖고 다니던 시절이 그립다

김유리 2022. 12. 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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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에는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또 동생이 어딨는 지 가늠해서 가족을 찾으러 삼만 리, 열쇠를 찾으러 사만 리씩 걸어가곤 했다.

가끔 그런 열쇠를 잔뜩 가지고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예쁜 열쇠고리를 사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꾸며 지니고 다니던 그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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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기자]

 아참, 열쇠 챙겼어?
ⓒ Filip Szalbot
내가 어렸을 때는 가족 모두 집열쇠를 각자 가지고 다녔다. 철로 만들어진 동그란 손잡이에 열쇠를 끼우고 잡아 돌리면 금세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혹여나 열쇠를 잃어버린 날이면 무척이나 당황하곤 했다. 열쇠가 없으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에는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또 동생이 어딨는 지 가늠해서 가족을 찾으러 삼만 리, 열쇠를 찾으러 사만 리씩 걸어가곤 했다.

항상 소지해야 할 필수품인 열쇠를 안 가지고 나오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럴 땐 문손잡이 위엔 '열쇠 출장'이라는 글귀와 함께 전화번호가 쓰여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철물통을 들고 나타나 쓱싹쓱싹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 문을 따주던 맥가이버 아저씨가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2023년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열쇠와 자물쇠는 거의 역사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다하는 요즘 세상에는 열쇠를 지니지 않는다. 혹여나 집에 늦게 들어갈 땐 가족 누군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또 열쇠를 놓고 나와도 디지털키의 숫자, 혹은 지문인식으로 쉽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열쇠에 대한 인식한 것은 몇 해 전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이다. 디지털키에 익숙해져서 번호를 기억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300여 년이 된 호텔건물에서 체크인할 때 열쇠 뭉텅이를 잔뜩 받은 것이다. 이 열쇠는 출입구 열쇠, 이 열쇠는 층 열쇠, 또 마지막 열쇠는 방 열쇠였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쇠냄새가 신기하기도 했다.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다 보니 잠그는 법도 잊어버렸달까? 왼쪽으로 한번 돌려도 문이 잠기지 않는다. 오른쪽인가? 열심히 돌려보지만 그대로다. 왼쪽으로 한번 더 그리고 또 한 번을 돌려보니 그제야 잠긴다. 문이 이렇게 두 번 360도를 돌려야 잠기는 거였는지 새삼 신기하기만 하다. 

열쇠를 가지고 다니며 여행하면서 불안감도 샘솟았다. 이 열쇠를 잃어버리면 호텔에도 못 들어가고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주머니에 꽁꽁 숨겨놓은 열쇠는 걸을 때마다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무겁고 복잡하고 또 번거로워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열쇠가 손에 쥐어지니 내 소유가 된 것 마냥 기분까지 나아졌다. 

가끔 그런 열쇠를 잔뜩 가지고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예쁜 열쇠고리를 사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꾸며 지니고 다니던 그 시절 말이다. 열쇠가 없으면 오늘은 수요일이니깐 '엄마가 수영하러 가셨을 거야'라 생각하며 엄마를 찾아 나섰다. 마침 끝나고 나온 엄마 손을 잡고 나오면서 열쇠를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혼나기도 했지만 함께 사서 나눠먹을 붕어빵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디지털키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손이 가벼워지면서 가족을 찾아 나서거나 기다리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집이 만남의 장소가 된 걸까? 집에 쉽게 들어가니 함께 산책하며 군것질할 기회도 줄어들고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을 나누는 시간도 희미해져 간다. 열쇠를 잃어버려 혼날 걸 아는 두려움, 가족을 기다리는 설렘, 오래됐지만 좋은, 무거운 열쇠를 가지고 다니던 그 시절이 붕어빵이 보이는 오늘따라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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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함께 실린 글(https://brunch.co.kr/@sweet-dreams/32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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