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꺾이지 않는 마음' 통했나…경제보복 퍼붓던 中 결국 화해

신경진 2022. 12. 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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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페니 웡(왼쪽) 호주 외교장관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호주 수교 50주년 기념일인 21일 왕이(王毅·69)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페니 웡(黃英賢·53) 호주 외교장관이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제6차 중·호 외교·전략대화를 열었다. 호주 외교장관의 베이징 방문은 2019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이고, 중·호 외교·전략대화는 2018년 이후 4년 만에 재개됐다.

2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이번 만남에선 양국 간 축전 교환도 이뤄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데이비드 헐리 호주 연방 총독에게 보낸 축전에서 “중·호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은 양국 인민의 근본이익에 부합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세계 평화와 안정·번영에 유리하다”며 “중·호 전면 전략 동반자 관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동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에게 축전을 보내 “각 영역의 교류와 협력을 심화하고, 양국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 지속을 함께 추동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왕이 부장의 발언도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뤄졌던 웡 장관과의 첫 만남과 비교해 크게 완화됐다. 호주 앨버니지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양국 외교 수장이 만난 발리 회담에서 왕 부장은 “과거 몇 년간 중·호 관계는 호주 전임 정부가 집요하게 중국을 ‘라이벌’ 심지어 ‘위협’으로 여기고, 중국에 일련의 책임없는 언행을 취하면서 어려운 근원에 직면했다”면서 “중국을 라이벌로 여기지 말고, 구동존이(求同存異, 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두다)를 견지하며, 제3국(미국)의 통제를 받지 말고,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민의 기초를 구축하라”며 미국을 우회 언급하며 압박했다.

이번 베이징 회담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왕 부장은 “과거 몇 년 중·호 관계는 어려움과 좌절에 직면했지만 우리가 보기를 원한 바가 아니었다”라며 “중·호는 역사적으로 쌓인 원한이 없고, 근본적인 이해 충돌도 없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282자의 짧은 공동성명은 “양측은 안정되고 건설적인 중·호 관계의 양국·지역·세계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천명했다”며 “상호존중, 평등 공영, 이견 관리에 기초해 양자 관계, 경제무역문제, 영사사무, 기후변화, 국방, 지역 및 국제 문제 영역에서 대화와 소통을 재개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앨버니지 총리 “국익과 가치관 명확히 밝혔다”


호주는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도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가시 발언’을 빼놓지 않았다. 웡 장관은 회담 후 호주 외교부 공식 발표문에서 “양국이 이견을 현명하게 처리한다면 우리가 양자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고, 국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을 거듭 밝혔다”고 강조했다.

앨버니지 총리 역시 “호·중 양국 관계에는 많은 공동의 이익이 있다. 하지만 처리가 필요한 이견도 존재한다”며 “이견으로 양국 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견은 분명하고 열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지난 19일 주중 호주대사관 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호·중 수교 50주년 경축’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또 “우리는 솔직하고 정직하게 양국 사이의 의견을 논의했고, 나는 호주가 항상 우리의 이익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일을 처리할 것임을 명확하게 밝혔다”고 강조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또 “호주와 중국의 무역액은 제2·3·4위 국가와 총합보다도 많다”며 “중국으로 수출하는 우수한 품질의 보리·와인·육류·수산물·자연자원 등은 호주의 최대 경제 이익에 부합하고, 마찬가지로 중국이 이들 제품을 수입하는 것 역시 중국의 최대 경제 이익에 분명하게 부합한다”고 중국의 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무역 보복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중국과 호주 양자 관계는 지난 2020년 스콧 모리슨 당시 총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면서 급격히 악화했다. 앞서 호주 국적의 중국계 시사 평론가 양헝쥔(楊恒均·57, 본명 양쥔·楊軍)이 광저우 공항에서 실종됐으며, 청레이(成蕾·47) 전직 중국국제방송(CGTN) 앵커는 중국 당국에 체포돼 지난 3월 말 ‘해외 불법 국가기밀 제공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 영사 현안도 산적해 있다.

페니 웡 호주 외교부장이 2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6차 중·호 외교·전략대화 참석을 위해 20일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EPA=연합뉴스

무역보복에 호주산 보리 대중국 수출 2021년 ‘제로’


호주의 ‘공격’에 중국은 호주산 와인과 보리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석탄 수입을 규제하는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21년 호주의 대중국 주류 수출은 2019년보다 95%, 석탄은 99.8% 수출량이 감소했고, 보리는 100% 줄어 수출액이 0을 기록했다.

하지만 호주는 중국에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대화(쿼드)’,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국가 연합인 ‘파이브 아이즈’,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하는 신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의 핵심 참여국으로 중국에 맞서는 ‘맞대응 모델’을 취했다.


FT “호주, 최대 무역국 보복에 생존 가능성 보여줬다”


앨런 비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선임 라이터는 지난 2월 “(중국의) 수출 차단에 맞선 호주의 대응 정책은 반격보다 힘든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었고, 경제 체급을 고려할 때 현명한 전술이었다”며 “호주 정부는 수출업자의 무역 다각화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왔다”고 평가했다. 또 “호주의 경험은 한 나라가 해외 최대 시장의 무역 강압 조치에서도 생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며 “정치적 합의로 뒷받침하는 경제적 유연성이 최선의 방어선”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굴복하지 않는 호주를 상대로 관계 정상화를 선택함으로써 호주의 ‘맞대응 모델’이 성공적이었단 게 증명되는 셈이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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