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시 [시를 읽는 아침]
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주영헌 기자]
꾸역꾸역
-박상천
김치냉장고 맨 아래 넣어두었던
마지막 김치 포기를 정리했습니다
당신과 내가 농사지은 무와 배추로 담근 김치지요.
그러니까 벌써 두 해를 넘긴 김치네요.
당신이 담가놓은 김치가
늘 거기 있음에 안심이 되었기에
그냥 거기 두고 있었습니다.
그냥 거기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언제까지 거기 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늘은 마지막 남은 김치를 꺼내 찌개를 끓였습니다.
딸아이와 나는 저녁상을 차려
김치찌개를 가운데 두고 밥을 먹었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거기 둘 걸,
정리하지 말 걸,
자꾸만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곤 꾸역꾸역이라는 말이
어떤 모습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그녀를 그리다>, 나무발전소, 2022, 22~23쪽
가수만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낭독회에서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시를 읽어드리며 노래와 연주를 들려드리면, 독자 분들이 참 좋아하십니다. 요즘은 내가 시보다 노래 부르기를 더 좋아하는 시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저에게도 유독 부르기 힘든 노래가 한 곡 있습니다.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목이 메서 끝까지 부르기 힘듭니다. 김광석의 노래만큼이나 읽기 힘든 시가 시집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하려는 박상천 시인의 시집입니다.
2021년은 제가 아내와 결혼한 지 21년째입니다. 아내와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첫 아이를 의료사고로 잃었던 20여 년 전의 사건부터 크고 작은 위기들을 함께 했습니다. 이런저런 시간을 살아내다 보니 '사랑'과 함께 '전우애'까지 생깁니다.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저는 아내를 손꼽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제가 영원을 함께할 수 있을까요. 필연적으로 둘 중 한 사람은 먼저 삶의 뒤편으로 떠나야만 합니다.
생각해봅니다. 만약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남겨진 시간을 나는 어찌 견딜까?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낼 수는 있겠지만, 말 그대로 꾸역꾸역일 것입니다. 만약 그 반대라면 어떠할까요. 이 모진 세상에 아내 혼자 놔두고 먼저 마음이 편하게 떠나갈 수 있을까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마음이 불편합니다.
▲ 박상천 시인의 시집 |
ⓒ 나무발전소 |
시인의 아내가 살아생전에 담근 김치가 있습니다. 그냥 거기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김치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 김치, 평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오래 보관해도 몇 년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무리 아껴먹으려고 해도 김치통은 쑥쑥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약간의 김치. 시인은 이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입니다.
'딸아이와 나는 저녁상을 차려 / 김치찌개를 가운데 두고 밥을 먹었습니다.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같은 김치찌개를 사이에 둔 부녀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제삼자인 저도 겨우 눈물을 참고 있는데. 시인은 후회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한 마음을 '그냥 거기 둘 걸, / 정리하지 말 걸, / 자꾸만 후회가 되었습니다'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후회가 전부이겠습니까.
누군가는 이 후회의 감정을 읽으며 '부질없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부질없는 짓입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이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제 시 '첫'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첫 아이를 잃었을 때 십 년만 견디자 생각했다. / 앞서 떠나보낸 사람들처럼 / 누군가를 가슴에서 지우는 일은 딱 십 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당신은, / 사랑이 그리 쉽게 떠나갔는가?'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잊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나 또한 그 사람처럼 잊힌다면, 누가 내 사람을 기억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기억'과 '호명'입니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한,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한, 그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내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와 시집을 통해서 시인이 아내를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뿐만이 아니라 이 시와 시집을 읽어 줄 많은 독자의 가슴속에 살린 것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박상천 시인은...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시집으로 『사랑을 찾기까지』, 『낮술 한잔을 원하다』 등이 있다. 한국시협상,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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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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