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소부장업체 유치 놓고 '한일전' 치열…"유치 지원 확대해야"
탈중국을 검토하는 글로벌 소부장업체들의 유치를 두고 ‘한일전’이 예상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오준석 숙명여대 교수팀에게 의뢰해 22일 내놓은 ‘글로벌 소부장업체 국내 투자유치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위치한 다수의 글로벌 소부장업체들은 코로나 봉쇄 경험과 그에 따른 인건비 상승, 미중 패권 경쟁 심화가 촉발한 공급망 불안 고조로 인해 탈중국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주중 EU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주중 유럽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Is your company considering shifting current or planned investments in China to other markets?)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투자를 중국 외 국가로 이전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비중은 23%로 최근 10년 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주상하이 미국상의가 주중 미국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7~8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기업의 3분의 1 가량이 중국에 계획했던 투자를 이미 다른 국가로 돌렸다고 답했으며, 이는 작년보다 2배 늘어난 수치다.
보고서는 “기존 글로벌 공급망 조성이 경제학적 효율성과 최적화를 통한 비용절감에 기인했다면, 최근에는 비용손실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는 위험절연(risk-insulation) 기조로 재편되는 추세”라며 “한국의 취약한 공급망을 보완하고 산업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특히 글로벌 소부장업체들의 탈중국 움직임이 한국에는 큰 기회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들이 선호하는 대체후보지로서의 요건을 일본 또한 갖고 있어 국내유치를 두고 일본과의 경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망 전반에서 ‘아세안 시프트(ASEAN shift)’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세계공장’의 역할을 이어받으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소부장의 경우 공급망의 운영․유지에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생태계가 필요하므로 아세안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유는 탈중국 검토 소부장업체들의 내면을 보면, 완전철수라기 보다는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 혹은 리스크 헤지 전략의 일환일 뿐, 생산된 제품을 중국시장으로 다시 공급하는 것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공정에 대한 투자는 일부 철수하더라도 판매시장으로서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이 큰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아세안(ASEAN)의 경우, 부품생산과 조립공정 위주의 업스트림(upstream 후방산업) 시장이기 때문에 중국시장 진입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느끼는 기업들이 많다”며 “반면, 한국과 일본의 경우 업스트림은 물론 새롭게 시장을 만들어내는 시장기술이 발달했고 시장데이터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다운스트림(downstream, 완제품) 분야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중국 공략이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 외에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을 갖춘 곳 중 중국과 문화나 종교적 이질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점도 호재요인으로 꼽았다.
대만 역시 대체투자처로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중국 리스크’에 노출돼 있어 불안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일본을 포함한 경쟁국들보다 더 빨리, 더 획기적인 방법으로 글로벌 기업 유치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를 수행한 오준석 숙명여대 교수는 “중국을 이탈하려는 기업들의 성향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기존 외자기업들이 생산시설 및 R&D센터를 이전할 때 손실최소화 전략을 출구전략으로 주로 택했다면, 현재 탈중국 하려는 외자기업들은 최대한 빠른 이전을 우선순위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의 투자유치 정책이 제공하는 최대혜택을 이미 다 향유한 경우가 많고, 봉쇄정책 및 미중경쟁 심화에 따른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국내유치를 위한 속도감 있는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별도의 소부장 정책을 통해 자국의 소부장 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한 정책은 미비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소부장 관련 해외기업에 대한 지원은 행정절차상 지원에 국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고서는 일본보다 한발 앞서 파격적인 투자유치 지원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빠른 이전을 원하는 외국기업들의 비자, 세제, 환경, 입지 문의에 대한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확대 보강하고,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장비 및 공급망 안정품목을 보유한 외국기업들의 생산·연구시설 이전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및 규제완화 특례 등 국내기업과 동일한 혜택을 제공할 것을 제언했다.
또한 해외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의 크기를 투자기간에 비례하도록 설계해 국내 소부장 생태계를 중장기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해외인력에 대한 비자(E7) 발급 및 체류여건 완화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최근 해외석학에 대한 전자비자 절차 적용 등 외국인 전문인력 유치를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채용 조건과 절차가 복잡하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보고서는 고급인력에 대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한편 임금 규정 완화, 비자 발급 조건 완화 및 기간 단축 등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위기와 기회의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며 “글로벌 소부장업체들의 탈중국 움직임이 일본 수출규제에 이어 국내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또다른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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