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지구를 구하는 혁명은 나로부터
기록적 산불로 봄이 시작되더니 기록적 폭염과 가뭄의 여름을 지나, 다시 기록적 한파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기후 관련 재난이 유난히 두드러진 한 해였다. 파국의 징후는 나날이 선명해지는데, 회복을 향한 움직임은 드물기 그지없다. 국가도, 사회도, 개인도 여전히 탐욕을 부추기고 소비를 북돋우려 할 뿐,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고, 숲을 덜 개간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미국 작가 존 그린은 ‘인간 중심의 행성에서 살기 위하여’(뒤란)에서 ‘인류야말로 종말론’이라고 탄식하듯 말했다.
현재 지구상에 사는 인류의 총중량은 약 3억8500만t이다. 양, 닭, 소 등 우리 가축들의 총중량은 약 8500만t이고, 다른 모든 포유류와 조류를 합쳐도 1억t에 미치지 못한다. 인류는 지구를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이런 현실에서 다른 생명체의 존속 여부는 주로 그 종이 인류에게 유용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디즈니 영화 속 레밍처럼 몰아붙인다. "어리석게도 레밍들은 절벽으로 자기 몸을 던지며,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것들은 빠져 죽을 때까지 바다를 헤엄친다. 최종 운명과 마주칠 때까지, 죽음과 마주칠 때까지." 레밍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혁혁하게 이바지한 이 장면은 레밍의 생태와는 관련 없다. 실제의 레밍은 헤엄도 잘 치고, 대부분 이렇게 이주하지 않는다. 연출을 위해서 디즈니 영화 제작자는 트럭을 이용해 레밍을 내다 버리고는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다. 레밍의 익사는 전적으로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약자를 성찰하지 않는 강자는 그 존재 자체가 재앙이 될 뿐이다. 이 때문에 동양에선 항상 권력자가 성인(聖人)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聖)은 본래 하늘을 향해 발돋움(壬)한 채 기도 올리면서(口) 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耳) 행위를 뜻하는 글자다. 약자의 마음(民心)이 하늘의 마음(天心)이므로, 신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이 오만에 빠져 다른 생명체를 무시할 때 기후 위기 같은 파멸적 재난은 필연적이다. 디즈니 영화 속 레밍은 인간종의 은유이다.
그린에 따르면, 인간의 힘은 지구 전체의 온난화를 초래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나, 그 온난화를 멈추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진 않다. 우리는 조상들보다 더 많은 자원, 더 다양한 지식, 더 나은 협업 체계를 보유했고, 숱한 난관을 이기고 지구의 정복자로 올라설 만큼 ‘끈질긴’ 존재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기후 재앙을 해결함으로써 인류의 장기 생존을 보장할 기회를 서서히 잃어가는 중이다. 무한 낙관에 홀려 너도나도 흥청망청 살아가는 탐욕의 질주 앞에서 무력감과 두려움에 절망하는 마음이 번지는 중이다.
아마 미래의 역사책에는 우리가 어리석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될 터다. 1970년대에 우리는 탄소 배출이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리는 다양한 이유를 빌미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2000년대에 기후 변화의 결과가 막 드러나기 시작했는데도, 우리는 전 지구적인 대응을 조직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결을 미래로 떠넘기고 있다. 희생을 치를 미래 세대는 우리의 무능하고 야만적인 선택을 용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른의 행위가 아이의 절망이 되는 세상이 지옥이다.
현대인이 기후 변화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연과 격리돼 살기 때문이다. 딸기는 6월이 제철이다. 그러나 요즘엔 12월이면 주로 딸기가 나온다. 실내 재배로 출하 시기를 점차 앞당긴 탓이다. 이렇듯 우리는 날씨와 상관없이 생활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어두우면 불을 켜고, 추우면 난방 온도를 올리고, 더우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가동한다. 우리 신체 감각은 초자연적이다. 외부 기후는 아랑곳없이 화석연료 에너지의 도움을 받아서 유지되는 실내에 길들어 있다. 심지어 인슐린이나 항생제 같은 약도 섭씨 20~25도 사이의 ‘실내 온도’에 저장하지 않으면 약효를 상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강제와 제한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기후의 내부에 있다. 테리 윌리엄스는 말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이것 봐, 저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난 볼 수가 없어’라는 말이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할지라도, 우리 행위는 결국 우리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폭염을 견디려고 가동하는 에어컨은 주변 온도를 끌어올리고, 결국 더 많은 에어컨이 필요하게 만든다.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나누어지고 쪼개어져 결국 우리 몸으로 되돌아와 건강을 해친다. 기후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자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라고 그린이 주장하는 이유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피트리버인은 백인 미국인을 이날라두이, 즉 집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속한 땅에 있는 동물이나 식물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전혀 관심 없이 쫓기듯 산다는 뜻이다. 피트리버인은 백인들 마음의 한 부분이 죽어 있으리라고 비판한다. 자연과 좋은 관계를 이룩하지 못하면 우리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에너지 대부분을 상실한다.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절대 충만해지지 않는 공허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린은 인류가 다가오는 위기에도 끝내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리라고 긍정한다. 출발은 바깥으로 나가 자연의 경이를 즐기는 일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충만하다. 저녁놀만 바라봐도 누구나 이를 알 수 있다.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삶의 어느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심지어 그것을 기억할 필요조차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자연의 자연스러운 충만함을 받아들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기적으로 느껴질 만큼 비현실적 순간, 마법에 걸린 듯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순간들을 더 자주 삶으로 데려올수록 우리는 닥쳐온 절망과 우울에서 벗어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의 끝없는 놀라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연의 경이가 요구하는 일을 과감히 상상하고 실행할 때 기적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혁명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한다. 지구를 구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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