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닦다 도 튼 사람 같다"…강성 용산·거대 야당 사이 낀 주호영

심새롬 2022. 12.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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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국회 운영위원장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주호영 대표는 도를 닦다가 도가 튼 사람 같다.” 21일 국민의힘 원내대표단 소속의 한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야당 대표를 정조준하는 험악한 국면에서 주 원내대표는 야당과 협상을 벌여 내년도 예산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등의 굵직한 현안을 풀어내야 한다. 가히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그는 이날 기자들에게 “예산안 (협상)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진전이나 변화가 없다”며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지역 상품권, 법인세 부분에서 문제가 해결되면 금방이라도 될 것이고,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얼마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은 이미 법정기한(2일), 정기국회 종료일(9일), 그리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준 두 차례의 합의 권고일(15일, 19일)까지 네 번의 처리 시한을 모두 넘긴 상태다. 정치권 일각에서 준예산 현실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전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단독으로 개문발차한 국조특위에 참여하기로 정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도 “국민의힘도 더는 ’용산 바라기’가 아닌 ‘민생 바라기’가 되길 바란다”(박홍근 원내대표)며 여당 측 예산안 양보를 요구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4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주 원내대표를 압박하는 건 169석의 거대 야당뿐만이 아니다. 당내에서는 “‘강성 용산’의 압박이 주 원내대표를 옥죄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 파업·북한 도발 등 각종 이슈에서 대통령실이 ‘단호한 대응과 법치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의 협상 재량이 적다는 것이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마지막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적폐 청산’과 ‘노동조합 부패 척결’을 강조하며 “2023년엔 더 적극적으로, 더 아주 어그레시브(aggressive·공격적)하게 뛰자”고 제안했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과 무슨 협상을 하나. 확실하게 맺고 끊어줘야 한다”며 “자꾸 야당에 끌려가는 모양새의 원내 전략이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대선 캠프 시절 선거대책위원장, 지난 8월 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됐던 주 원내대표는 취임 초만 해도 ‘윤심’을 업은 원내 사령탑이었다.

하지만 최근 두 달간 각종 이슈에서 대통령실 및 친윤계와의 불협화음에 시달렸다. 지난달 8일 주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장에서 김은혜·강승규 수석을 퇴장시켰을 때 장제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의원들 사이에서 부글부글하다. 당원들이 모욕감을 느낀다”며 주 원내대표를 공개 비난한 게 시작이었다. 주 원내대표가 지난달 23일 대통령실을 조사 대상에 포함한 국정조사 합의문에 서명하자 대통령실에서 “정쟁의 한복판으로 대통령을 끌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주호영 국정조사 책임론’은 지난 11일 민주당이 이상민 장관 해임 건의안을 단독 처리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또 주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대구 지역 언론인 토론회에서 ‘수도권·MZ세대 대표론’을 거론한 것도 당내 친윤계와 불화를 키운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주 원내대표 본인은 “일반론을 말한 것”이라고 진화했지만, 친윤계는 “한동훈 차출설을 띄우려고 김기현·윤상현·조경태 의원과 황교안 전 대표를 모조리 실명으로 깎아내린 것”(재선 의원)이라는 시선을 보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런 와중에 주 원내대표는 설상가상으로 점점 더 무거운 대야 협상 과제를 받아들고 있다. 지난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참석한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조속한 노동개혁 입법”을 최우선 과제로 주문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야당 의원 집에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설득해야 한다”며 당정의 폭넓은 지원을 호소했다. 이날 저녁 원내대표단 송년 회식 후 박홍근 원내대표 자택으로 향했다는 주 원내대표를 두고 원내에서는 “원내대표해서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친윤계와 차별화되는 독자적 색채를 내면서 주 원내대표의 정치적 자생력은 커지고 있다.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에게 실시한 차기 국민의힘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주 원내대표(5.7%)는 김기현 의원(5.6%), 황교안 전 대표(4.1%), 권성동 의원(2.5%)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4위를 기록했다. 유승민 전 의원(36.9%), 나경원 전 의원(14.0%), 안철수 의원(11.7%) 등 1~3위와 격차가 꽤 크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분석 범위를 좁혀도 주 원내대표(9.4%)는 김기현 의원(10.3%)에 버금가는 지지도였다. (※자세한 내용은 선거여론조사심의 홈페이지 참조)

주 원내대표는 이날 백봉신사상(白峰紳士賞) 대상을 받으며“다수당의 원내대표, 다수당의 당 대표가 받게 되면 의회민주주의가 훨씬 품격 있고 협치가 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소수당의 원내대표로 받으니 제대로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백봉신사상은 동료 국회의원과 국회 출입 언론사 기자, 상임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선정하는 모범 의원상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4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으로부터 대상을 받고 있다. 뉴스1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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