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경고는 현실이 됐다…ICBM 정각발사 위협, 이번에도?

정진우 2022. 12.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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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대남 스피커'로 불린다. 지금까지 총 23차례의 대외 담화를 발표했는데, 대부분이 한국을 향한 비난 메시지였다. 원색적인 표현과 욕설이 담긴 담화였지만, 그 이면엔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안에 대한 입장과 속내가 담겨 있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을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북한의 실질적 2인자, 김정은의 여동생, 백두혈통, 그림자 실세, 평화의 메신저…. 2020년 3월 본인 명의의 첫 담화를 발표하며 북한의 대외 메시지를 총괄한 이후엔 ‘대남(對南) 스피커’로 불린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단순히 개인 의견을 넘어 북한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된다는 의미다. 외교부·통일부 등 각 정부 부처와 대통령실이 김 부부장의 담화에 직접 반응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부부장이 지난 2년 9개월간 발표한 대외 담화는 23개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20년에 7개, 2021년엔 10개, 올해는 6개 담화를 발표했다. 김 부부장이 발표한 담화엔 주로 대북전단과 종전선언, 담대한 구상 등 남북 관계의 주요 현안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담겼다. 때론 한·미 정상을 저격하기 위한 원색적 비난으로 담화를 채웠고, 무력 도발에 나서기 전 경고성 메시지를 담화에 싣기도 했다. 북한의 ‘김여정 담화 활용법’을 분석했다.


①원색적 비난에 담긴 ‘속마음’


김 부부장이 발표한 담화는 대부분 격앙된 표현과 원색적인 비난으로 채워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에 비유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선 “인간 자체가 싫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하지만 거친 욕설의 이면엔 북한의 속내가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김 부부장은 2021년 3월 16일 연합훈련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특히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연합훈련이 지속될 경우 대화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겠단 점을 강조했다. 당시 한·미는 야외 실기동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연합훈련을 진행했음에도 김 부부장은 이를 비난했다. 북한은 연합훈련의 규모나 형식의 조정이 아닌 '훈련 취소'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 부부장은 2020년 7월 10일 담화를 통해 “위원장 동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전하라고 하시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메시지였다. 또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우리에게 무익하다”면서도 “하지만 또 모를 일”이라며 선결 조건을 요구했다. 결국 김 부부장의 이날 담화는 북·미 대화 거부가 아닌, 북·미 대화를 위해선 대북 제재 해제 등 적대시 정책 철회가 필요하다는 조건부 호응의 메시지였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호응할 뜻이 없다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 9월 담화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종전선언에 대해 “편견과 신뢰를 파괴하는 불씨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이중기준과 적대시정책 철회가 이뤄질 경우 종전선언에 호응하겠다는 긍정의 뜻에 가까웠다.

지난 8월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판한 것 역시 비핵화를 요구하기 전에 대북제재를 완화하고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②아프게 때리면 반응한다


김 부부장은 북한의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선 특히나 격앙된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2020년 6월 6일 대북전단 살포를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이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탈북민과 관련 단체를 향해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 추출물”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그만큼 북한 수뇌부가 대북전단을 극히 민감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1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노동당 8차대회 기념 열병식.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열병식 정황을 포착해 발표했는데, 이에 김여정 부부장은 즉각 비난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2021년 1월 12일엔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심야 열병식 정황을 포착해 발표한 것과 관련 “남의 집 경축행사에 군사기관이 나서 ‘정황 포착’이니 ‘정밀 추적’이니 하는 적대적 경각심을 표출하는 것은 남조선뿐”이라고 비판했다.

특정인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김 부부장은 2020년 12월 9일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다”는 비난 메시지를 날렸다. 강 전 장관이 북한의 ‘확진자 0명’ 주장에 대해 “이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③경고는 현실이 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 부부장은 담화는 한·미를 향한 위협용으로 활용되곤 했고, 이같은 위협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김 부부장의 담화엔 점차 무게가 실렸다. 김 부부장 역시 이같은 점을 이용하려는 듯 지난 20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정상 각도로 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담화에서 마지막 문장을 의미심장한 내용으로 채웠다. “최근의 사변들을 곰곰이 돌이켜보라. 우리가 하겠다고 한 것을 못한 것이 있었는가를…”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발표 사흘 후 북한은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연합뉴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위협이 실제가 된 대표적 사례다. 김 부부장은 2020년 6월 13일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전단 살포가 계속될 경우) 우리는 곧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부부장이 경고한 '다음 단계의 행동'은 사흘 후 현실화했다. 남북 소통의 상징인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한 것이다.

2021년 8월 10일엔 한·미가 연합훈련을 개시한 데 대해 “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다”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특히 당시 담화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덧붙이면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뜻임을 시사했다.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발표 당일 북한은 전격적으로 남북통신연락선을 차단했다 사진은 2021년 7월 27일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며 우리 측 연락대표가 북측 연락대표와 통화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김 부부장의 담화 발표 당일 북한은 남북 통신연락선을 차단했다. 당시는 19개월 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돼 14일간 소통이 유지되던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로선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임기 말 마지막 남북 관계 개선 시도에 나서려던 시도 자체가 무산된 셈이었다.


④담화에 즉각반응, ‘하명 논란’도


‘김여정 담화’의 무게감을 의식한 듯 전임 문재인 정부에선 유독 담화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2020년 6월 4일 김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에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담화 발표 4시간 만에 나온 정부 반응이었다. 김 부부장의 비난 섞인 요구사항을 발 빠르게 수용하는 모습은 ‘저자세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미 연합훈련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8월 김 부부장이 두 차례에 걸쳐 연합훈련 개시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자 정부는 훈련 규모를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은 “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실상의 훈련 연기를 주장했고,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은 아예 연합훈련 연기를 요청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와 여당의 이같은 즉각적인 반응에 '김여정 하명(下命)’ 논란이 일었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김여정 부부장의 비난 담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뉴스1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듯 김 부부장의 담화에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지난달엔 김 부부장이 윤 대통령을 조롱·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음에도 대통령실이 아닌 통일부가 나서는 등 절제된 방식을 택했다. 그 형식 역시 '성명'이 아닌 '입장 발표'를 택하며 수위를 조절했다. 특히 통일부의 입장문엔 “우리 국민은 누구도 동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북한당국에 대한 인식만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는 '김여정 하명'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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