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한·중수교 30년…미·중격돌 헤쳐갈 새해 우리의 전략은?
2022년에 기억했어야 할 것들
50년 전 통화개혁, 왜 단행했나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지만, 이후의 진행 방향에 따라 긍정적으로 평가가 바뀌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아무런 평가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막상 주목받았던 사건이 쉽게 잊히기도 한다. 60년 전인 1962년 통화개혁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군사정부는 국내 자본을 만들기 위해 은행계좌를 봉쇄하고, 10대1의 비율로 환화를 원화로 바꾸었다. 당시에는 계좌가 봉쇄되면서 불편하다는 것 외에 통화개혁의 전말을 알 수 없었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통화개혁의 이유와 실패 원인을 알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압력으로 통화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을까. 박정희 의장은 자신의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미국의 원조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통화개혁이 국내 화교들이 은행에 저축하고 있지 않았던 현금을 타깃으로 해서 실시되었다는 회고록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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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미래에 대한 장기적 설계 필수
전략적 동반자였던 한·중관계 악화가 미칠 파장에 대비해야
한·베트남 수교 30년도 상징적, 50년 전 적국에서 파트너로
정치·경제 요동칠 2023년…전쟁과 평화, 안정과 공황의 길목
」
7·4 공동성명과 8·3 조치, 10월 유신
50년 전에 있었던 1972년 7·4 공동성명과 8·3 조치, 그리고 10월 유신도 마찬가지다. 7·4 공동성명은 모든 국민에게 큰 환영을 받았지만, 이후 남한의 10월 유신과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남북한 모두에서 독재를 강화하기 위한 배경이 되었다는 비판적 평가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8·3 조치는 은행 문턱이 높아 사채를 빌릴 수밖에 없었던 부실기업들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지만, 이후 부동산 투기와 위장사채가 야기한 부실기업을 살려주었다는 사실과 함께 대규모의 산업합리화 자금이 투입되었다는 점이 주목되면서 8·3조치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40년 전인 1982년 2월과 6월에 C-123 수송기가 두 차례 추락하면서 장병 106명이 순직했고, 4월에는 경상남도 의령에서 소위 우순경의 난사사건으로 9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발생하여 외채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국 경제를 흔들어놓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었지만, 대부분 잊힌 사건이 되었다.
1982년에는 또한 일본 문부성이 역사교과서 검정에서 ‘중국 침략’을 ‘중국 진출’과 ‘파견’으로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동아시아 사회를 흔들어 놓았지만, 막상 40년이 지난 지금은 프로야구가 시작된 원년으로 더 많이 기억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국가안보전략에 ‘반격능력’을 명시한 현재의 시점에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은 잊혀서는 안 될 사안이 아닐까?
한국 사회의 전환점이 된 1992년
조선 건국 600년이자,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2년에는 한국 사회가 큰 전환이 이루어졌다. 1월 1일부터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인들의 주식매수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1월 8일 시작되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를 통해 1961년 이후 처음으로 직접 선거를 통해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4월에는 LA 폭동으로 교민들의 피해가 발생했고, 5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에서 북한의 핵재처리 능력을 확인하면서 북핵 문제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1992년에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한국과 중국의 수교였다.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 참전으로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한국은 타이완과 단교하고 타이완 소유의 모든 시설을 중국에 이양했다.
한·중수교는 한국의 무역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도 일본과 미국 외에 수출시장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었던 한국으로서는 경제적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수 있었고, 향후 30여년 간 한국의 주요 무역상대국 순위를 바꾸어놓았다. 또한 한·미동맹을 외교의 축으로 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한국의 외교정책을 실리외교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래에 결정될 2022년에 대한 평가
1992년에는 그 전해에 있었던 남북기본합의서로 인해 팀 스피릿 한미합동훈련이 실시되지 않았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베트남과의 수교가 이루어졌다. 보수 정부 아래에서 북한과의 관계로 인해 한·미합동훈련을 연기되었고, 불과 20년 전 5000명이 넘는 한국의 젊은이가 희생되었을 때 적국이었던 베트남이 한국의 수교국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난 2022년에 발생했던 사건들에 대한 현재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면 그 사건에 대한 평가가 바뀔 수도 있고, 지금 주목받았던 사건이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으며, 눈에 띄지 않았던 사건이 새롭게 주목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던 노태우 정부 시기의 정책과 사건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그런데 막상 2022년이 지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기억해야 할 많은 사건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는 점이다. 워낙 많은 사건이 있었기에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몇십 주년’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이슈나 사건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어왔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사건에 대한 입장 정리 필요
특히 한·중수교와 한·베수교는 30년이 지난 지금 그간의 과정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마침 올 12월 4~6일 베트남 주석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태극기와 베트남의 국가기 함께 나부꼈다. 50년 전인 1972년 베트남의 안케패스에서 베트콩·북베트남군과 싸우고 있었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만약 현 정권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를 함께 걸어 놓았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
한·중관계는 수교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축이 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보적 협력 강화를 약속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천안문 망루에 함께 올라갔다. 그런데 지금의 한·중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국제 상황이 변하면 대외관계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를 되짚어보면서 특정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의미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또 다른 전환으로 인한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미·중 갈등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나 베트남을 비롯해 다른 공급망을 뚫는 과정에서 나타날 가치관의 충돌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023년에 대한 역사학자의 기대
2023년은 전후 아시아 국제질서의 기원이 된 카이로 선언 80주년이면서,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70주년, 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의 기원이 되는 6·23 선언 후 50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문민정부 출범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다섯 가지 사건은 모두 2023년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이슈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2023년은 어쩌면 미·중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사태와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 선언 등으로 제3차 세계대전의 기원이 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역으로 지난 70년간 한반도 안보위기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인 정전협정 문제가 해결되면서 동북아에서의 평화가 세계평화의 기반으로 이어지는 한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929년 이후 90여년 만에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는 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에 2023년도 다사다난하겠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실을 고민하고, 미래에 대한 장기적 설계를 마련해볼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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