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투표지 분류기 오류 논란
2020년 4·15 총선만큼 논란이 많았던 선거도 드물다. 투·개표 과정에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2년 10개월이 지나도록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그중 하나가 개표 당일 충남 부여 개표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여 개표소에서 옥산면 사전선거 투표지 415장을 투표지 분류기(분류기)로 집계한 결과 후보 간 표가 섞이는 현상이 목격됐다. 선관위가 해당 투표지를 분류기로 다시 집계했더니 후보별 득표수가 달라졌다. 그러자 선거사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먼저 작성한 기록지(개표상황표)를 찢었다.
이와 관련, 김소연 변호사는 “개표상황표는 국가기관이 공적 업무 중 작성한 엄연한 공문서(대법원 판례)”라며 선관위 관계자를 공용서류무효,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2020년 12월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무려 2년 만에 이 사건 결론이 나왔다.
대전지검 논산지청은 고발당한 선관위 관계자 2명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최근 불기소처분했다. 불기소처분서에 따르면 검찰은 “피의자들이 권한 없이 공용서류를 파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파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또 “중앙선관위가 개표 과정에서 발생한 미완료 서류를 권한 있는 자가 폐기할 수 있다고 (4·15총선 1년 뒤에) 판단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검찰은 “현장 폐쇄회로TV(CCTV) 동영상과 관계자 진술에 의하면 개표 당시 무소속 후보 투표지와 재확인 대상 투표지가 섞여 재분류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분류기에 오류가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재분류해 새로 작성한 개표상황표는 믿을 수 있는 것인지, 1~2차 출력한 것 중 어느 것을 공문서로 인정할 것인지, 분류기로 재분류한다면 몇 회까지 가능한 것인지 등이다. 이런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개표 절차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투표지 분류기는 노트북 컴퓨터와 일체형으로 초당 5.66장(분당 340장)의 투표지를 처리한다. 분류기는 내장된 프린터로 개표상황표까지 출력하는 능력도 갖췄다. 은행에서 지폐를 세는 장비처럼 단순한 기계는 아니다.
의문이 제기되자 국회도 나섰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일본 등 선진국처럼 사람이 표를 일일이 세는 ‘손(手) 개표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해 3월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태 잠을 자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은 선거다. 선거제도 핵심은 투·개표 과정의 정확성이다. 많은 국민은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류기를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 선거를 치르기 전에 분류기를 포함한 투·개표 과정에서 제기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김방현 내셔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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