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이 벌주 먹인 창덕궁 비밀공간
옥류천
2 옥류천은 본래 낙차 큰 자연 개울이었다. 여기에 정자를 짓고 물길을 돌리고 작은 폭포를 만들어 명품 정원으로 꾸민 임금은 인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창덕궁을 다시 지으며 옥류천 일대도 손봤다. 이곳의 중심은 큰 바위 소요암(逍遙巖)이다. 말발굽 모양으로 홈을 판 물길이 소요암 앞의 널찍한 바위를 돌아나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폭포가 된다. 주위에 석축을 쌓아 만든 인공폭포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소요암 앞에서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열기도 했다. 물에 띄운 술잔이 자신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는 놀이다. 짓지 못하면 벌주로 석 잔을 마셔야 했단다. 시는 지을 수 있지만 잘난 척하지 않으려고, 또는 좋은 술을 많이 먹으려고 일부러 벌주를 자청한 이도 있지 않았을까.
소요암 아래에는 인조의 글씨 옥류천(玉流川)이, 그 위에는 다음과 같은 숙종의 오언절구 시가 새겨져 있다.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
삼백 척 높이로 날아 흐르니
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
저 멀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
看時白虹起(간시백홍기)
바라볼 때 흰 무지개 일더니
翻成萬壑雷(번성만학뢰)
골짜기 가득 퍼지는 우렛소리
폭포 앞에 있는 소요정에서 보는 풍경이 으뜸이다. 그 위로 태극정과 청의정이 있다. 소요암 바로 뒤에는 임금을 위한 우물인 어정(御井)이 있다.
옥류천은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청나라 군인들이 창덕궁에 쳐들어왔다. 고종은 옥류천을 통해 북관묘로 피신했다. 이때 고종을 호위하던 홍영식과 박영교(박영효의 형)가 이 근처에서 청군의 손에 죽었다. 북관묘는 관우 장군을 모시는 사당 가운데 하나인데, 서울 북쪽에 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3 소요암 주변에는 서울에선 보기 힘든 나무들이 모여 있다. 한라산·태백산 같은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주목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성장 속도가 느려 낫살이 좀 들어 보인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나무인 만큼 왕실의 영속을 바라는 마음으로 심지 않았을까.
활엽수가 많은 창덕궁 후원의 가을은 숨넘어갈 정도로 황홀하다. 그런데 1820년대에 그린 동궐도를 보면 일대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많다. 역사 격변기에 조경 관리를 제대로 못 한 틈을 타 활엽수가 영역을 넓혀왔겠다.
4 창덕궁 후원 담을 넘어가서 놀았다. 이 말에 다들 “에이” “설마” “말도 안 돼” 한다. 관리인이 수시로 오가고, CCTV가 촘촘히 박혀 있는데 어떻게 일반인이 들어가서 논다는 말인가. 하지만 실제 그랬다. 물론 오래전 얘기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물어 교차 확인했으니 틀림없다.
후원 북쪽 좌우에는 학교들이 바짝 붙어 있다. 왼쪽에 중앙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가, 오른쪽에 성균관대가 있다. 후원과 학교의 경계는 담장 하나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담치기는 일도 아니었을 테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 때, 성대생들은 창덕궁 담을 넘고 창경궁을 통해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창덕궁 후원은 그런 시절을 겪으며 오늘까지 왔다.
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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