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휘돌아가는 요새에 스민 신라·고구려 옛 이야기
충북지역은 한반도의 중부내륙이라는 지리적 환경 때문에 삼국시대에 처절했던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충북의 동북쪽 끝에 자리한 단양은 남으로 죽령을 넘으면 경북 영주로, 서쪽으로 천등산고개를 넘으면 충주로 통한다.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원도 영월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를 거쳐 한양으로 이어지는 사통팔달의 요충지였다.
단양은 삼한시대 백제 영역 마한의 땅이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장수왕의 강력한 남진정책으로 고구려에 병합된다. 당시 지명이 적산현(赤山縣) 또는 적성현(赤城縣)이다. 장수왕이 죽은 뒤 6세기 중반 고구려의 국력이 약화된 틈을 타 신라가 한강 유역을 공략해 적성현을 차지한다. 이 무렵(545∼550년) 신라는 적성산성을 쌓았다.
산성은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해발 323.7m 성재산 정상부에 있다. 남한강 본류와 단양천·죽령천 등 남한강 지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주변을 굽어보는 천혜의 요새다. 동서로 뻗은 산성은 둘레 900여m, 성벽 높이 3m가량으로 파악됐다. 남서쪽, 남쪽, 동남쪽 3곳에 성 문터가 확인됐다. 삼국시대 토기와 기와조각, 고려·조선시대 유물 등도 대량 출토됐다.
적성산성은 과거 성산성 또는 산성이라고만 불렸다. 1978년 1월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가 발견돼 산성 이름이 확정됐다. 단양 적성비는 진흥왕이 단양을 차지한 뒤 세운 척경비(拓境碑)다.
비석은 산성 안 비각에 보존돼 있다. 높이 93㎝, 최대 너비 107㎝로 크지 않다. 당초 430자가 음각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윗 부분이 깨진 채 발견돼 남은 글자는 284자다. 장기간 땅속에 파묻혀 비문의 보존상태가 좋다. 왕명으로 이사부 장군과 휘하 장수들이 적성현을 공략해 점령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적성산성은 구 단양읍에서 길이 이어진다. 중앙고속도로 상행선 단양팔경휴게소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휴게소 동쪽 철망 문을 벗어나면 왼쪽에 안내판이 있다. 바로 뒤 돌 계단을 오르면 남문 터에 이른다. 눈앞에 웅장한 성벽이 이어진다. 입구에 비각이 보인다.
동문 터 근처에서 성벽 위에 올라서면 발아래 남한강이 유장하게 흐른다. 물줄기를 따라가면 시루섬을 지나 멀리 산 위 만천하스카이워크가 보인다. 그 아래 절벽에 단양강 잔도가 놓여 있다. 남쪽으로는 죽령과 소백산, 중앙고속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남한강을 거슬러 가면 단양의 북동쪽 영춘면에 온달산성이 있다. 신라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뒷받침할 만한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물은 없다. 온달관광지에서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된다. 산성에 오르면 683m의 성곽 둘레를 따라 걸으며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아래에 영춘면 일대와 남한강이 내려다보인다. 온달산성 동쪽으로 문필봉을 위시해 소백산 줄기를 따라 우뚝 솟은 연봉들이 줄달음친다.
산성 아래 온달관광지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주제로 조성됐다. 온달동굴, 온달전시관, 드라마세트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동굴은 약 4억5000만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굴과 지굴의 길이를 합쳐 800m 정도이며 내부에는 다채로운 종유석과 석순이 있다. 온달장군이 수련을 하고 평강공주와 사랑을 나눴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드라마세트장에서는 드라마 ‘연개소문’과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천추태후’ 등이 촬영됐다.
온달관광지에서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5㎞ 정도 떨어진 북쪽에 ‘단양 사지원리 방단적석유구’라는 유적이 있다.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대형 고대유적이다. 커다란 석재를 계단형으로 쌓아올린 이 유적은 고구려의 적석총처럼 생겼지만 무덤도, 성곽 유적도 아니다. 태장이묘로도 불리며, 삼국시대 때 이곳에서 전사한 장군의 무덤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만 발굴 당시 무덤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온달장군이 전사한 뒤 평강공주가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온달의 시신을 모셔놓았던 제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단양에서 영주로 통하는 소백산과 도솔봉 사이 죽령에 죽령산성이 있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뤄져 있으며 둘레 461.5m로 비교적 작은 산성이다. 내성은 석축으로 안쪽 높이는 11∼40㎝, 바깥쪽높이는 1.5∼14m이며 너비는 65∼80㎝이다. 5번 국도에서 북쪽으로 연화봉쪽 능선 150여m는 6·25전쟁 때 훼손돼 흔적조차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적성산성 무료주차장… 도보 10분
도담삼봉·‘제2 단양팔경’도 명소
승용차로 적성산성에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이 편하다. 단양읍내에서 간다면 2020년 4월 개통된 하현천대교를 건너면 가깝다. 산성 아래 무료주차장이 있다. 가는 길이 가파른 데다 겨울철에는 얼어 있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상행선 단양팔경휴게소에 주차하고 가도 된다. 휴게소에서 적성산성 북측 끝머리까지는 채 1㎞가 되지 않는다. 쉬엄쉬엄 걸어도 10여분이면 도착한다.
수도권에서 온달산성에 가기 위해서는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좋다. 온달관광지에서 온달산성까지는 850m. 30분 남짓 걸린다.
단양팔경의 하나인 도담삼봉도 빼놓을 수 없다. 남한강 상류 한 가운데에 들어앉은 세 개의 큰 바위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삼을 정도로 사랑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 단양팔경과 별개로 새로운 명소로 선정된 ‘제2 단양팔경’도 있다. 북벽, 금수산, 일광굴, 죽령폭포, 칠성암, 온달산성, 구봉팔문, 다리안산이다.
단양 읍내에 관광호텔과 리조트, 관광펜션 등 묵을 곳이 많다. 온달관광지에는 식당이 여러 곳 있다.
단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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