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한 ‘납품단가연동제’ 뭐길래…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2. 12. 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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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숙원 풀었지만…‘쌍방 합의’ 눈엣가시

국회가 최근 납품단가연동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재계 논란이 뜨겁다. 중소기업들은 “드디어 숙원 사업이 해결됐다”며 환영하지만 대기업들은 못내 속 쓰린 분위기라 양측 신경전이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관련 민당정협의회에서 정재계 인사들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주호영 원내대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연합뉴스)
▶납품단가연동제 들여다보니

▷원자재 가격 상승분 납품단가에 반영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2월 8일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념부터 들여다보자. 납품단가연동제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다.

법안이 시행되면 납품대금의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에는 납품단가연동제가 도입돼 10% 이내에서 양측이 협의해 납품대금을 정해야 한다. 앞으로 위탁기업이 수탁기업에 물품 등의 제조를 위탁할 때 주요 원재료는 무엇인지, 대금을 어떻게 조정할지 약정서에 기재해 수탁기업에 발급해야 한다. 관련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위탁기업에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개정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되면 납품단가연동제 표준약정서 도입, 우수 기업 지원 등은 공포일로부터 6개월 뒤 시행된다. 탈법 행위 금지, 과태료 부과 등 의무와 제재에 관한 사항은 공포일로부터 9개월 뒤 시행될 예정이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2008년부터 일찌감치 도입이 논의됐지만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이번에 결국 도입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당수 중소기업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중소기업 의견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원재료 가격은 2020년 대비 평균 47.6% 오른 반면 납품단가 상승률은 10.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7%에서 4.7%로 2.3%포인트 떨어졌다. 그럼에도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달라고 대기업에 직접 요청하기 곤란한 실정이다.

벤처기업협회는 논평을 통해 “납품단가연동제는 그간 대·중소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거래했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중소기업 서로 불만

▷국제협정 위반 우려 vs 예외 조항 많아

납품단가연동제가 공식 도입됐지만 벌써부터 재계 안팎 논란이 뜨겁다. 중소기업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대기업은 납품단가연동제를 법제화하면 계약법 기본 원리인 ‘사적자치의 원칙’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계약 내용의 결정, 변경을 강제하는 경우 자유로운 거래 질서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납품단가연동제 법제화를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성명서에서 “내년 국내외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설 것이라는 경고음이 들려오는 시점에서 기업 간 거래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납품단가연동제 법제화를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에서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이 위탁기업인 경우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대금을 추가 지급해야 하고, 수탁기업인 경우 원자재 가격 하락 때 대금이 감소해 예측 불가능한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다.

현행법과의 충돌 문제도 거론된다. 위탁, 수탁기업 간 연동 계약 협의 때 원가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 상생법, 하도급법상 경영 정보 요구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 또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위탁기업이 감액을 청구할 때 하도급법상 감액 금지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도 있다.

자칫 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기업이 또 다른 한국 기업에 하청을 주면 대금을 인상해주지만, 외국 기업에 하청 시 대금을 인상해주지 않아도 되는 구조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소지가 있는 만큼 예외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유예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 단체들 주장이다.

한편에서는 오히려 국내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켜 외국 기업에 먹거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했을 때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대기업 수요는 1.45% 감소한다. 이에 비해 외국 중소기업 제품 수요는 1.21% 증가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대기업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이를 중간재화로 사용하는 중소기업 생산비용도 오른다. 대기업은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재화로 대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납품단가연동제를 의무화하면 기업 간 거래 효율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계약 기간을 단축하거나 다른 거래 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화령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대로 불만이다. 공식적으로는 납품단가연동제를 환영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기색이다. 계약 주체 쌍방이 합의하는 경우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조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약 주체 양측이 합의하거나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소액 계약이나 단기 계약인 경우에는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납품단가연동제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갑(대기업)이 ‘합의됐다’고 을(중소기업)한테 말하라고 강제하는 것인데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영원히 상생할 수 없다. 이를 독소 조항으로 활용한다면 그 대기업은 나쁜 대기업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갑의 위치에 있는 위탁기업 요구에 따라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납품단가연동제가 우여곡절 끝에 시행되는 만큼 대기업, 중소기업 양측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현실에 맞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납품대금의 10%’라는 숫자를 강제하지 말고, 산업별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경제계가 문제를 제기해온 납품단가연동제 법제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행법과 충돌 문제 해소, 중소기업 혁신 방안 도입 등을 지속적으로 검토,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9호·송년호 (2022.12.21~2022.1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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