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 ‘리딩뱅크’ 탈환…‘고졸 샐러리맨 신화’ 진행형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신한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는 진옥동 신한은행장(61)을 내년 3월부터 임기 시작인 차기 지주 회장에 선임했다고 밝혔다. 조용병 회장이 ‘후배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용퇴 의사를 밝힌 이래 회추위는 심사숙고 끝에 신한금융그룹 새 수장으로 진 행장을 낙점했다.
진 행장은 2019년 행장 선임 때부터 이미 ‘상고 출신 샐러리맨 신화’로 회자돼왔다. 여기에 더해 이번 회장 내정으로 그의 신화는 더욱 강건해졌다. 그는 덕수상고 졸업 후 1980년 기업은행에서 은행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6년 신한은행으로 이직, 2018년 일본 법인 생활을 거쳐 행장까지 올랐다.
일본 근무 시절 신한금융지주 최대 주주인 재일동포 주주 사이에서는 ‘크게 될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여러 일화가 존재한다. 특히 그가 일본에서 10년간 이끌었던 SBJ은행은 뚜렷한 성장세를 보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4년 SBJ은행의 영업이익은 243억원이었는데 2016년 714억원으로 2배 이상 끌어올렸다. 자산도 2014년 4조8000억원대였는데 2년 만에 6조원대로 키워냈다.
특히 그는 ‘인화형’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일본 법인장 시절 일본인 직원 간 서먹서먹하던 때 ‘S4(S Four) 제도’를 만들어 분위기를 일신시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S4란 ‘신한의 S, 네 명이 식사를 해야 하는 4(Four), 그리고 직원을 위한(For)’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았다. 직원 4명이 모여 식사를 하면 점심값을 회사에서 지원한다는 캠페인으로 ‘혼밥’에 익숙한 일본인 직원에게는 신선한 제도였다. 이후 자연스레 사내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회사 분위기도 좋아졌다는 후문이다.
행장이 되고 나서도 그는 인사 시스템에 특히 관심을 많이 가졌다. 취임 이듬해인 2020년 기존의 성과평가제도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같이 성장 성과평가제도’로 뜯어고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은행원은 실적 위주로 성과를 평가받았다. 그러다 보니 은행이 특별 판매하는 상품, 즉 미는 상품 위주로 판매를 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런데 이러다 보면 수익률 등 여러 면에서 고객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논란도 뒤따르고는 했다.
진 행장은 행장 취임 2년 차에 고객 중심 영업을 통해 고객과 은행이 균형 있게 동반 성장하는 인사 실험을 했다. 핵심은 영업점의 환경에 맞는 자율적인 영업을 추진하도록 해, 단순 상품 판매 중심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하고 적절한 사후 관리를 하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방식 또한 은행권 최초로 절대평가 방식의 목표 달성률 평가를 도입했다. 내부 경쟁을 유발하는 상대평가 방식을 폐지, 직원 간 과다 경쟁을 방지하고 협업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진 행장은 “외형과 손익을 비교하며 은행 간 경쟁에서 1등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사랑받는 ‘一流 은행’이 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지금과는 다른 은행, 이른바 ‘인비저블 은행(Invisible Bank)’ 시대가 올 것이라 강조했다. 취임 당시부터 ‘돈키호테적 발상’을 강조하며, 직원들이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갖기를 당부했다. 미래의 은행은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은행’으로, 이용자 상황을 파악하고(Sensing) 알아서 해결해주는(Acting) 금융 회사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 결과물이 금융권 최초 AI 은행원, 은행권 최초 RPA 도입을 통한 업무 효율화, 금융권 최초 대직원 지능형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AI 몰리’, 금융권 1호 전자서명 인증사업 ‘신한 Sign’ ‘CBDC 대비 디지털 화폐 플랫폼 시범 구축’, 금융권 최초 자체 구축 메타버스 플랫폼 ‘시나몬’ 등이다.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신사업에도 발군이다. 대표적으로 진 행장은 올해 금융권 최초 배달 애플리케이션 ‘땡겨요’를 선보였다. ‘땡겨요’는 2020년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우리 동네 착한 배달 앱’을 슬로건으로 한 상생형 플랫폼이다. 가맹점, 고객, 라이더 등 모두에게 이로운 상생 경영을 추구하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많은 금융 회사가 꿈만 갖는 해외 진출도 진 행장에게는 ‘현재진행형’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신한은행은 일본, 베트남에서 은행 브랜드만으로 현지인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진 은행장은 글로벌 전략에 대해 늘 ‘차별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국가 지역에 맞는 플랫폼 모델을 발굴, 지역별 특화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식이다.
특히 SBJ은행은 디지털·ICT 전문 자회사 SBJDNX를 설립했다. 해외법인 현지에 설립하는 최초의 자회사로 일본 금융 회사인 도쿄키라보시파이낸셜그룹이 설립 중인 디지털전문은행에 클라우드 뱅킹 시스템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디지털 사업 추진 전담 조직인 ‘Future Bank Group’을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베트남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금융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실적도 좋다. 올해 3분기 기준 신한은행은 분기·누적 기준 모두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신한은행의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은 9094억원으로 전 분기(8200억원) 대비 10.9%, 전년 동기(7593억원)에 비해 19.8% 끌어올렸다.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5925억원으로 KB국민은행(순익 2조5506억원)을 4년 만에 제치고 ‘리딩뱅크’ 타이틀을 가져왔다.
사모펀드 피해자 문제 해결 숙제
물론 진 행장이 회장이 되면 할 일은 더 늘어나고 많아진다.
물론 그는 행장 취임 전 지주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행장 취임 후에도 지주와 금융 계열사 간 IB 업무를 통합하는 GIB 업무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은행장과 지주 회장은 엄연히 생각할 거리나 업무 반경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특히 해외 IR 등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금융 회사 경쟁력을 해외 투자자에게 인정받아야 하는가 하면 M&A를 통해 못다 한 금융 계열사 포트폴리오도 완성해야 한다는 책무도 있다.
미국, 유럽 등 금융 선진국의 다양한 혁신 금융 모델, 특히 IB, 유니버셜뱅크 등 직접 기업 투자와 스타트업 육성, M&A까지 통합하는 미래형 금융지주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 요청도 있다. 지주 회장으로서 차세대 신한금융그룹 리더를 키우는 일도 남았다. 사모펀드 피해자 문제 해결, 새해 경기 침체 여파 대응 등 금융권에 산적한 현안도 앞에 놓여 있다. 별명 ‘미스터 스마일’에 걸맞은 표정을 회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9호·송년호 (2022.12.21~2022.1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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