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꽃 구경 처음 해본 할머니 “2000원 내밀며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박용미 2022. 12. 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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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독병원은 1905년 11월 20일 개원해 한센병 환자, 결핵 환자,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며 예수님의 '긍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꽃구경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말에 몸빼바지 걸친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조선대학교 교정을 찾았습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는 할머니의 눈이 금세 행복해 보였습니다.

신사복에 넥타이 멘 남자와 몸빼바지 입은 할머니가 입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서 장미를 보는 모습이란! 할머니는 그날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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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원목협의회 병원선교 수기 (3)벽이 아닌 문을 향한 시간, 호스피스 이야기
광주기독병원 직원들이 지난해 광주 병원에서 열린 성탄 행사에서 환자에게 성탄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광주기독병원 제공

광주기독병원은 1905년 11월 20일 개원해 한센병 환자, 결핵 환자,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며 예수님의 ‘긍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포사이드 선교사를 통해 실천된 곳이며 마지막 죽어가는 여성 한센병 환자를 벽돌 굽는 가마터에서 돌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돌봄이 오늘날 호스피스 사역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광주기독병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조선대학교가 있습니다. 매년 5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 조선대 교정에서 장미 축제가 열립니다. 장미 축제가 열릴 때면 생각나는 할머니 한 분이 있습니다. 10년 전인가 호스피스 완화 병동에 입원한 그분은 늘 혼자였습니다.

“나는 젊은 나이에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갔는데 후처로 갔어. 딸 둘을 낳았는데 환경이 좋지 못하였는지 고등학교 때 둘 다 가출했지. 그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일찍 남편이 죽고 이제껏 혼자 살았지. 나라에서 주는 것하고 거리에서 박스 줍고 판돈으로 살아왔어. 지금 죽어도 아쉬울 것 하나도 없지.”

꽃구경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말에 몸빼바지 걸친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조선대학교 교정을 찾았습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는 할머니의 눈이 금세 행복해 보였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몸빼바지 속에 손을 넣더니 천 원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더울 것인디 아이스크림 사 먹어.”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나눠 먹었습니다. 신사복에 넥타이 멘 남자와 몸빼바지 입은 할머니가 입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서 장미를 보는 모습이란! 할머니는 그날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중년의 여성 한 분이 할머니 병상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야가 내 큰 딸이여, 30년 만에 이렇게 만났당게.” 서울에 살고 있다는 큰딸이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엄마가 입원한 병실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큰딸의 표정은 무덤덤했습니다. 아마도 엄마에 대한 어릴 적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둘째 딸 소식은 큰딸도 몰랐습니다. “아마도 죽었는가 봐, 살았으면 전화 한 번쯤은 했것제….” 할머니는 죽기 전에 둘째 딸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나 봅니다.

며칠이 지난 후 간호하던 큰딸은 없고 혼자 누워있는 할머니 표정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큰 따님 서울로 올라가셨나 봐요.” “아니, 그것이 아니고 내가 큰 고민이 있당께. 내가 평생 종이 팔아서 모은 돈이 1000만원 있는디, 그 돈 있어야 병원비도 치르고 장례도 치를 것이 아니여. 그런디 엊그제인가 큰딸이 돈 있으면 1000만원만 빌려달라고 그라지 않겠나. 분명히 나한테 돈 있는지 모를 것인디, 그 말 듣고 시방까지 내가 밥도 못 먹고 가슴이 꽉 내려앉아 답답하당께! 우짜면 좋다냐.”

저는 함께 고민하다가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제안했습니다. “엄마 마음에 30년 만에 만난 딸에게 빌려는 주고 싶은데 병원비 장례비 걱정되어서 고민하고 계신 거죠. 할머니 그동안 딸한테 미안한 마음도 많았는데 빌려주지 말고 그냥 드리세요. 그런데 딸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하세요. 병원비 장례비 때문에 500만원은 돌려줘야 한다고요.”

다음 날 병실에 가보니 엄마와 딸이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목사님, 잘 되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요. 고마워요.” 딸은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겠지만 나는 할머니의 말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며칠 후 병원 장례식장에서 딸을 만났습니다. 30년 만에 만난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고맙다는 딸의 한 마디에 저도 대답했다. “엄마랑 장미꽃 구경 가서 아이스크림도 얻어먹었으니 제가 더 고맙죠.”(박재표 광주기독병원 원목)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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