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흘 남았는데..."…최악의 늑장예산

나주석 2022. 12. 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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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예산 편성 초유의 위기
취액계층 복지사업 차질 우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오주연 기자, 세종=이준형 기자] 2022년은 대한민국 국회가 다음해 예산안을 가장 늑장 처리한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국회가 정부의 새해 예산안 심사에 돌입한 지 115일째인 21일까지 여야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열흘 남은 연말까지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준예산을 편성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는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예산의 절반가량인 재량지출 집행이 불가피해 당장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이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데다, 가뜩이나 악화 일로를 걷는 우리 경제에 악영향이 될 수 있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예산안 협상을 위한 회동 여부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내 친 은계(친윤석열) 공부 모임인 국민 공감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선 (야당과 예산안 협상 계획이) 잡혀있지 않는다"고 전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민생경제를 위해 대승적 차원의 양보를 거듭했다"며 "이제는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결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양당 원내대표는 전날 오후 만나 쟁점 예산에 대한 조율에 나섰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헤어졌다. 현재 여야는 국회의장이 중재한 법인세 최고세율 1%포인트 인하와 행정안전부 경찰국 및 법무부 인사성보단 예산 감액,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증액 등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여야는 원내대표 담판을 통한 일괄타결 해법을 노리고 있다. 큰 줄기의 합의가 있으면, 세부적인 주고받기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2일 예산안의 법적 처리 시한을 넘긴 이후 국회의장이 정한 목표시한을 번번이 어긴 만큼 정부의 준예산 사태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의무지출과 공무원 급여 등 최소비용만 집행이 가능해 예산의 절반가량인 재량지출 집행이 불가능해진다. 복지사업 중단 가능성 때문에 저소득층이나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복지 사업은 대개 지방비가 12월 중 편성되면 지방 의회를 거쳐 매칭 재원을 확보한 후 추진됐다"면서 "(다만) 예산안 처리가 지연돼 지방비 확보도 순차적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예산 집행을 넘어 악화일로인 경제 전반에 걸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도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우리나라 경제도 전망이 암울한데 정치권이 예산조차 합의 처리하지 못한 점이 대내외에 알려질 경우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새해 예산안의 자동부의 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국회는 처리시한을 여러 차례 넘겼지만, 정기국회 회기를 넘긴 적은 올해가 처음이다. 예산안을 둘러싼 정쟁은 매년 반복됐지만, 이번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여야 대치는 이례적이다. 여야 모두 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나 악화한 여론보다 지지층만 결집에만 몰두한 결과다.

일례로 최근 국민의힘은 새로운 지도부를 당원투표 100%로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개정에 나섰다. 2004년 국민의힘의 전신이 한나라당이 도입했던 여론조사 30% 롤을 18년 만에 없애고 당심으로만 뽑겠다는 것이다.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해 예산안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SNS에 "길고 깊은 겨울이 옵니다. 추울수록 몸을 서로 기대야 합니다. 동지 여러분. 함께 힘을 모아 이겨냅시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고 지지층 결집을 촉구했다. 대다수 국민이 아닌 지지층만 만족하는 정치로 읽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치권에선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권교체가 맞물려지면서 악순환을 초래한 점도 올해 예산 정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올해는 여야 정권교체 이후 첫 번째 예산심사다. 정권교체는 통상적으로 예산안 심사가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 정설이다. 여기에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예산안과 관련해 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권한이 충돌한 점도 예산처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은 예산안의 안정적 처리를 위해 정부·여당에 더 유리한 구도를 제공한다. 예산안에 법정기한을 부여하고, 예산안 부수 법안의 경우 자동 부의 조항 등을 뒀다. 야당 등이 발목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또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비목 등을 설치할 때는 정부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정부 예산안에 대해 증액은 불가능하지만, 감액은 할 수 있다. 정부 원안에 일부 예산안을 삭감하는 형태의 수정안을 처리할 힘과 권한을 가진 것이다. 이 때문에 입법권과 예산 심의권을 국회, 특히 야당과 증액 동의권과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여당)의 충돌하는 상황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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