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기인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윤민섭 2022. 12. 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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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 이동주 인터뷰
지난달 한화생명 떠나 광동 이적


‘두두’ 이동주의 프로게이머 커리어는 짧지만 굴곡이 여러 번 있었다. 데뷔 시즌인 2020년엔 팀과 같이 휘청거렸고, 2021년엔 ‘모건’ 박기태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데뷔 3년 차인 올해, 비로소 빛을 봤다. 처음으로 팀의 붙박이 주전이 된 그는 내로라하는 LCK 탑라이너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한화생명과의 동행은 갑자기 마무리됐다. 지난 시즌을 꼴찌로 마쳤던 팀은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했고, 이동주 역시 지난달 캠프원을 떠났다. 그는 광동 프릭스로 이적했다. 전임자는 팀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기인’ 김기인이다. 부담감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연말이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의 팀 연습실에서 그를 만나 한 해를 마무리한 소감과 둥지를 옮긴 심경을 들어봤다.

-이 선수에게 2022년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날갯짓을 시작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사실 올해 스프링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기량이 발전했음을 느끼지 못했다. 시즌 개막 후 자연스럽게 맡은 역할이 늘어나고, 그것들을 잘 소화하기 위해 평소에도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듯하다.”

-지난해 이맘때 ‘CS 웨이브마다 내 플레이의 목적을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소한 생각이나 자세가 이제는 몸에 배었다. 작년과 다르게 매 상황에 따라 해야 할 플레이들을 본능적으로 해나간다. 초반 라인전 디테일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앞으로는 미숙한 운영 능력을 보완해나가야 한다. 사이드 플레이와 중후반 오브젝트 타이밍에 맞춘 팀 플레이 등을 개선해야 한다.
이 게임은 미드 선푸시가 가장 중요하다. 그걸 위해 본대에 합류해 힘을 주느냐, 사이드로 가서 상대방을 호출하는 식으로 팀에 도움을 주느냐 등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사이드 플레이도 여러 번 죽어봐야 느는 것 같다. ‘이 타이밍에는 나가면 안 된다’ ‘이 타이밍에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나가야 한다’ 등을 깨우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사이드 플레이는 개인이 아닌 팀 단위의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발전에 참고할 만한 팀이 있을까.
“올해 T1이 그런 플레이를 굉장히 잘했다. 인원수 차이를 활용해 사이드 포탑을 철거하거나, 상대 라이너보다 반 턴 또는 한 턴 빠르게 본대에 합류해 상대방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했다. 상대가 자신들의 운영에 휘둘리게끔 만드는 능력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T1의 운영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전 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부담감과 설렘이 공존했을 듯하다.
“처음으로 풀 타임 주전을 맡게 된 시즌이었다. 스프링 시즌엔 큰 부담감을 가졌다. ‘상대 탑라이너와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성장하기만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시즌을 치르면서 ‘망하지 않는 법’을 감 잡았다. 서머 시즌엔 과감하게 플레이하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누르고,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부담감이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올해 만개했다. 여름에는 매 시즌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페이커’ 이상혁의 LCK 올-프로팀 표를 받기도 했다. 최근 2023시즌 킥오프 특별전 팀 선발 과정에서도 ‘제우스’ 최우제가 이상혁에게 이 선수 선발을 추천했다는 후일담이 들렸다. 유독 T1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듯하다.
“T1과 붙을 때는 마인드셋부터 달랐다. ‘내가 조금이라도 변수를 만들어야 팀원들이 라인전을 마음 편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게임에 임했다. 그래서 다른 팀을 상대할 때보다 더 과감하게 플레이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서머 시즌 1라운드 맞대결이다. ‘제우스’ 선수와 사일러스 대 나르 구도로 맞붙었다. 실력과 별개로 운도 많이 따랐다. 원했던 타이밍에 라인을 걸어놓고 딜 교환을 시도했던 건 맞지만, 모든 스킬이 적중해서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 이런 건 운이 가미된 플레이다. 전령 앞에서 예측해서 쓴 스킬이 상대 정글러에게 맞아 궁각이 예쁘게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T1전에서 유독 좋은 컨디션으로 게임하고, 운까지 따라서 선수들이 나를 좋게 평가해준 것 같다.”

-상대팀에 따른 마인드셋 변화가 흥미롭다. 프로게이머들만이 실감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젠지였다. 내가 어떤 컨디션이든, 어떤 플레이를 하든 늘 상대 미드·정글에 대한 압박감을 심하게 받았다. 두 선수의 다른 라인 개입 능력이 워낙 좋았다. 미니맵에서 두 선수가 사라지기만 해도 중압감을 느꼈다. 라인전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든 상황이 자주 나왔다. 젠지가 유독 나한테 턴을 많이 투자한단 느낌을 받았다.”

LCK 제공


-젠지 외에도 특별한 느낌을 받은 상대가 있었나.
“팀보다는 ‘제우스’ 선수 개인이 인상 깊었다. 그와 라인전을 하면 실력 차이가 난단 생각이 들었다. 1대1 라인전에서 밀리지 않을 방법을 정말 많이 고민했다. 결국 실력 차이를 밴픽으로 최대한 좁혔다. 내가 아는 챔피언 상성을 활용해 ‘이렇게 밴을 하고, 몇 번째 픽으로 이 챔피언을 가져가면 내가 평소처럼 하거나 일정 수준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식으로 팀원들과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제우스’ 선수의 라인전 디테일이 뛰어나다. 갱킹을 흘리는 능력도 좋아서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젠지 외에도 많은 팀이 이 선수를 공략하려 힘썼다. 갱킹 회피법을 많이 생각해봤을 듯하다.
“단순히 갱킹 회피보다는 내가 갱킹을 흘렸을 때 팀이 이득을 보는 방법을 팀 단위로 많이 연구했다. 라인전은 다른 라인의 상성을 계산해서 밀물과 썰물처럼 조절해야 한다. 무조건 강하게만 나가면 결국 부러진다. 내가 라인전에서 상대를 거세게 밀어붙이다가 상대 정글에 와드를 설치하는 플레이도 많이 시도했다. 올해는 바텀라인이 워낙 중요한 메타였다. 탑라인 시야 확보를 포기하더라도 상대 정글에 와드를 설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메타가 가장 즐거웠고 또 가장 적응하기가 힘들었나.
“탱커들이 득세한 서머 시즌 중반부 메타가 가장 힘들었다. 팀 상황상 내가 탱커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 당시 오른이나 세주아니 같은 탱커들의 밸류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가 딜러 챔피언을 해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거나, 시야를 열어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러면 결국 딜러 챔피언 밸류가 상대적으로 달려서 게임이 힘들어지곤 했다. 그때 부담감을 등에 업고서 게임하는 게 힘들었다. 반대로 그웬이 리워크됐던 서머 시즌 초반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탑라이너답게 ‘칼대칼’ 싸움을 즐기는 편인가.
“개인적으로 근거리 대 근거리 챔피언 구도는 ‘칼대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원거리 대 원거리 챔피언, 이를테면 루시안 대 제이스나 케넨 대 원거리 챔피언 같은 구도를 ‘칼대칼’로 본다. 근거리 챔피언 간 대결에선 어느 한 쪽이 손해를 감수한다면 심하게 깨지지 않는다.
선수의 판단미스나 실수로 라인전에서 연속 다이브를 당하거나, 라인 형성 과정에서의 실수 때문에 갱킹 압박을 심하게 받는 게 아니라면 그렇다. 탑라이너가 섬세하게만 플레이한다면 근거리 챔피언 간 맞대결에서 구도가 심각하게 망가지는 상황은 생각만큼 자주 나오지 않는다.”

-올해 잭스를 7회 써서 3승4패를 거뒀다. 잭스는 LPL 탑라이너들의 전유물같은 챔피언이고, LCK 탑라이너들은 잭스보다 카밀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잭스를 이 선수만의 카드로 갈고 닦은 계기가 있었나.
“잭스는 일단 탑라이너 입장에서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잭스한테 실수로 한 번 잡히거나, 갱킹을 당해 주도권을 내주는 순간 카밀·피오라를 상대할 때보다 더 큰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카밀·피오라는 사이드 특화 챔피언인데, 잭스는 그런 것도 아니다. 탱커 아이템을 섞어도 딜이 충분히 나오니까 사이드는 사이드대로 까다롭고, 한타는 한타대로 까다롭다.
프로게이머의 연습 시간은 한정적이다. 잭스는 올여름까지 비주류 챔피언으로 평가됐다. 올해는 탑라이너들이 잭스보다 다른 챔피언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플레이오프와 롤드컵 선발전에서 잭스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늘었다. 이젠 다들 이 챔피언을 연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년에는 다른 탑라이너들도 후픽으로 뽑을 만큼 숙련도를 길러올 것이다.”

-지난달 데뷔팀인 한화생명을 떠나 광동으로 이적했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팀이 대대적으로 리빌딩될 예정이며, 나 또한 주전 경쟁을 하게 될 거란 소식을 11월 초중순에 사무국으로부터 들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3개였다. 잔류 후 주전 경쟁, 다른 팀으로의 이적, 자유 계약(FA) 자격 획득. 처음에는 ‘까짓거, 주전 경쟁 한 번 더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를 되돌아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발전하기 위해서 나의 시간을 온전히 팀 게임 연습에 투자하고 싶었다. 1~2주가량을 고민한 뒤 팀에 이적을 요청했다. 마침 광동에서 나를 원한다고 해서 이 팀으로 왔다.”

-스크림과 같은 팀 게임에서만 느끼거나 배울 수 있는 지식이 있나.
“이 게임은 시즌마다, 보름마다 크고 작은 패치를 적용한다. 나오던 챔피언이 안 나오게 되고, 안 나오던 챔피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프로게이머는 그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패치노트만 보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실력 증진에 별 효과가 없다. 직접 라인전을 해보면서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를 가려내야 한다. 솔로 랭크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정보들, 팀 게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정말 많다.”

-광동 입단 직전 김대호 감독이 테스트를 제안했다고 들었다.
“처음 테스트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올해 그래도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나는 여전히 입단 테스트를 거쳐야만 하는 선수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스트 전에 감독님과 한 차례 미팅을 가졌다. 올해 휴식기를 가지셨던 만큼 LCK를 전부 챙겨보셨을 거 같진 않더라. 내가 올해 리그에서 했던 플레이를 테스트에서도 그대로 보여드리면 내 가치를 납득하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스크림을 테스트로 활용했다. 나는 늘 해왔던 것처럼 플레이했고, 감독님께서도 내가 마음에 드신 듯했다. 이 게임에는 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플레이가 있다. 내가 리스크 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의 플레이를 시도하는 점을 높게 사신 것 같다.”

-김 감독의 피드백에 대한 궁금증도 이 선수가 광동행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했다.
“결과론적인 피드백을 하지 않으신다. 특정 상황을 복기하면, 당시에 선수가 어떤 심리로 플레이했는지를 들어보신 뒤에 최선의 플레이를 제안하신다. LoL이란 게임은 밖에서 결과만 놓고 보면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게임 중인 선수의 생각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게임 중인 선수의 심리를 고려해 어디까지가 최선의 플레이고, 어디부터가 ‘입롤’ 인지를 정해주셔서 와닿는다.”

LCK 제공


-최근 2023년 스프링 시즌에 대비해 스크림을 시작했다. 새로운 팀원들의 성향은 전부 파악했나.
“정글러 ‘영재’ (고)영재는 앞서 한화생명에서 1년 넘게 함께했던 적이 있어서 서로 성향이나 스타일을 알고 있다. 다른 선수들도 어떤 플레이를 어떻게 하고 싶어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실천하는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보완하고 발전해나가는 단계다. LCK 출전 경험이 가장 많은 내가 선수들의 성장 시간을 벌어주고 싶다.”

-안 되는 걸 되게 하기 위해 오프시즌이 있는 것이다. 현재 광동 선수단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다들 LCK 출전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나오는 문제점들이다.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가야 하는데, 너무 높은 뜀틀을 마주해서 잠시 정체된 느낌이다. 하지만 경험상 이걸 한 번 넘어선 뒤로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미 나와 주변 선수들의 변화를 지켜봤다. 한화생명 시절 ‘아서’ 박미르 선수가 처음엔 못 했던 플레이를 나중엔 잘 해내는 걸 보며 그렇게 느꼈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고, 내 선택이 옳다는 확신을 갖고 나아가면 된다.”

-사실상 맏형이나 마찬가지인 포지션을 맡게 됐다. 부담감은 없나.
“오히려 작년 이맘때보다 부담감이 덜하다.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내가 충분히 해결해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게이머는 실전이든 연습이든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수 있다. 특정 선수나 팀과 맞붙으면 버거움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리플레이를 복기해보면 ’상대가 너무 잘해서 내 플레이까지 강제당했다’ 싶은 경우는 많지 않다. ‘내가 이 부분을 보완하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은 경우가 많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광동의 탑라이너 자리는 특별하다. ‘기인’ 김기인이라는 팀 역대 최고 선수의 후임자로 들어왔다.
“‘기인’ 선수가 이 팀에서 워낙 잘했다. 그의 플레이에 익숙한 광동 팬들께서 탑라이너에게 유독 엄격하실 수도 있다.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기인’ 선수가 이곳에서 했던 플레이들을 내가 모두 똑같이 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나 또한 나만의 번뜩이는 플레이, ‘기인’ 선수가 안 했던 플레이를 해보이겠다. 그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냉정하게 광동이 내년에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 거로 예상하나.
“스프링 시즌은 플레이오프 막차 또는 정규 리그 7위 마무리까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선수들이 빠르게 성장한다면 서머 시즌에는 안정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더 나아가 롤드컵행 막차 탑승까지 노려볼 수 있다.”

-이 선수만의 개인적인 내년 목표가 있나.
“사실 올해 서머 시즌에도 같은 목표가 있었는데 이루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 LCK 올-프로 팀 탑라이너로 선정되고 싶다. ’LCK의 탑라이너’를 꼽을 때 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가 되고 싶다. ‘기인’ 선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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