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한류⑤]14세 이하 어린이 7400만 명…애니메이션이 미래다
해외 전문가 영입해 완성도 난제 해결…상품화도 한창
현지 회사 운영하는 오승현 감독 "기술력 수준급 반열"
인도네시아 콘텐츠 산업에서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분야는 애니메이션이다. 2015년만 해도 전체 매출은 2380억 루피아(약 200억3960만원)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6027억 루피아(507억4734만원)다. 4년 만에 2.5배 늘었다. 해외 지식재산(IP) 아웃소싱 수출에 주력하다 자체 IP 개발로 영역을 넓힌 결과다. 현지 애니메이션산업협회에 등록된 회원사는 120곳. 일흔일곱 곳은 자체 IP를 보유한다. 방송은 물론 광고, 디지털 유통채널, 캐릭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IP 확장을 추진한다.
태세 전환에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뒷받침이 한몫했다. 국가 중점 전략 산업으로 설정하고 육성한다. 낮은 연령대 소비와 노동집약적 산업 특성에 주목한 결과다. 14세 이하 어린이·청소년 수는 7400만 명. 산업구조 틀은 여전히 저비용 고효율이다. 문화관광창의경제부는 연평균 애니메이션 스물세 편 제작을 지원하고, 멘토 트레이닝·포럼·IP 개발 워크숍 등 진흥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화교육부는 직업 고교 일흔두 곳에 애니메이션 전공 과정을 마련했고, 산업부는 관련 자격 검정을 진행해 자격증을 부여한다.
매년 배출되는 애니메이션 전공자 수는 약 5000여 명. 수혜 기업으로는 MNC 애니메이션(MNCA)이 손꼽힌다. 제작한 거의 모든 작품이 모기업인 MNC 미디어 그룹 산하 채널 RCTI에서 방영된다. '엔똥', '키코', '작스톰', '티투스', '비마', '딘다와 노비' 등이다. 지상파 노출로 단기간 인지도를 확보해 다양한 머천다이즈·캐릭터 제품으로 상품화된다. 상반기 출시돼 인기를 끈 스마트폰 게임 '키코'가 대표적인 예다. MNC그룹은 다양한 IP를 바탕으로 자바 라도에 테마파크도 짓는다.
파생 상품·사업이 성공하려면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부터 높아야 한다. MNCA는 2014년 말 오승현 감독을 총괄 이사로 데려와 난제를 해결했다. 국내에서 영화 '원더풀 데이즈(2002)' 제작에 일조하고, 미국 애니메이션 채널 니켈로디언에서 '아바타: 아앙의 전설'·'파이어 브리더'·'제너레이터 렉스'·'트론 업라이징' 등을 개발한 전문가다. MNCA에 둥지를 트고 '키코' 등을 제작했다. 지금도 시청률 8.5% 이상을 기록하는 인기작이다. 오 감독은 "'도라에몽'에 이어 편성된 덕"이라며 겸손해했다. '도라에몽'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이다. RCTI에서 31년째 같은 시간에 방영할 정도다.
오 감독은 2018년 자카르타에 애니메이션 제작사 SHOH 엔터프라이즈를 차렸다. 넘치는 수요에서 성공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14세 이하 인구 수가 남북한을 합친 규모다. 가정에서 리모컨까지 쥐고 있어 계획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직원 160여 명은 모두 현지인이다. 오 감독이 직접 기술을 가르쳤다. 그는 "인도네시아에 애니메이션과를 운영하는 대학이 많지 않다. 커리큘럼도 졸업생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없을 만큼 허술하다"라며 "인턴사원 여든 명을 한꺼번에 뽑아 일일이 가르쳐야 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만족도는 최상이다. 오 감독은 "손재주와 창의성이 탁월하다. 영어에 능통해 해외 비즈니스도 곧잘 해낸다"며 "무엇보다 직업적 성공을 추구해서 배우겠다는 열정이 넘친다. 열 번을 다시 작업하라고 해도 불평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기술과 생산성 향상은 사업 다각화로 연결됐다. SHOH 엔터프라이즈는 자체 IP 개발과 파트너십을 통한 IP 공동 개발을 모두 진행한다. 대표적인 성과는 지난 4월 한국 공중파에서도 방영한 '상상꾸러기 꾸다'이다. 제주도를 모티브로 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한국·중국·인도네시아 세 나라에서 최초로 공동 투자를 받았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최초로 월트디즈니컴퍼니·드림웍스와 애니메이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계약도 맺었다. 오 감독은 "우리 회사의 기술력이 수준급 반열에 올랐다는 방증"이라고 자랑했다.
SHOH 엔터프라이즈는 인도네시아에 한국 애니메이션도 다수 소개한다. '미니특공대', '고고 다이노', '몬카트' 등의 현지 송출 판권을 확보해 공중파에 내보낸다. K-팝이나 K-드라마만큼 인기가 높진 않다. 여전히 '도라에몽'을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강세다. 하지만 오 감독은 "인터넷·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애니메이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인터넷 환경도 개선되면서 노출 빈도가 높아지는 추세"라며 낙관했다.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활로를 찾고자 하는 한국 기업이 있다면 언제든 돕겠다"고 약속했다.
자카르타=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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