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지만 소년법정 선 나치 전범…‘18살 그때 그 죄로’

송태화 2022. 12. 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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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1만명 학살에 가담했던 97세 여성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이 여성은 나치 지휘관 비서 겸 타자수로 근무하면서 조직적 학살을 의도적으로 방관, 지지한 혐의를 받았다.

독일에서는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존 뎀야누크(당시 91세)에게 직접적 증거가 없는데도 살인 조력 혐의의 유죄를 인정한 것을 분기점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평결이 이어지고 있다.

강제 수용소에서 근무한 하급 관리들에게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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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수용소서 약 1만명 학살 가담 혐의
재판서 혐의 시인 “그곳 있었던 것 후회”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조력한 97세 여성 이름가르트 푸르히너가 지난해 10월 19일(현지시간) 독일 법원에 출석해 있다. AFP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1만명 학살에 가담했던 97세 여성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이 여성은 나치 지휘관 비서 겸 타자수로 근무하면서 조직적 학살을 의도적으로 방관, 지지한 혐의를 받았다.

영국 BBC 방송은 20일(현지시간) 독일 북부 이체호 법원이 1만505건의 살인을 조력하고 5건의 살인 미수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름가르트 푸르히너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독일에서 살인죄와 살인 방조죄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푸르히너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의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SS 나치 친위대 지휘관인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 겸 타자수로 일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살인에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슈투르호프 수용소는 1939년 나치 독일에 의해 설립됐다. 1945년 폐쇄될 때까지 6년여간 유대인과 폴란드인 6만명 이상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현장이다.

재판부는 푸르히너가 근무 당시 수감자 1만505명이 가스실 등에서 잔인하게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또 그가 서류 작업 처리 등을 통해 조직적 학살을 의도적으로 지지했다고 판시했다.

도미니크 그로스 판사는 “푸르히너가 일하던 사무실은 처음 수용소에 도착한 수감자가 대기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며 “그가 근무 중 화장터에서 퍼져나오는 연기를 보지 못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푸르히너의 변호인단은 그가 수용소에 벌어진 조직적 살인을 알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푸르히너의 이날 재판은 그가 범행 당시 18세였던 점을 고려해 소년법원에서 열렸다.

당초 푸르히너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 머물던 양로원에서 도망가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학살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등 책임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지난 6일 재판에 출석하면서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다. 당시에 슈투트호프에 있었던 걸 후회한다”고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날 재판에서도 혐의를 시인하며 당시 일에 대해 사과했다.

1943년 6월부터 1945년 4월까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사령관의 비서로 일했던 이름가르트 푸르히너(97)가 20일 독일 이체호 지방법원에서 살인 방조죄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EPA 연합뉴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끔찍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 너무 늦은 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미국 유대인 단체 ‘사이먼 비젠탈 센터’에서 활동하며 ‘나치 전범 사냥꾼’으로 이름을 알린 에프레임 주로프도 “소년법원임을 고려할 때 오늘 푸르히너에게 내려진 건 최선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사건 담당 검사인 맥시 봔젠은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이번 재판이 비슷한 종류의 재판(전범 재판) 중 마지막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존 뎀야누크(당시 91세)에게 직접적 증거가 없는데도 살인 조력 혐의의 유죄를 인정한 것을 분기점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평결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엔 독일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한 101세 남성도 징역 5년을 명령했다. 강제 수용소에서 근무한 하급 관리들에게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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