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필수의료 형사책임 면제를”…정부 “국민 정서 고려해야”

정진용 2022. 12. 21. 13: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형사 처벌 부담…전공의들 필수의료 꺼려”
법조계 “필수의료 정의 명확히 해야”
환자단체 “최선의 의료행위인지 알기 위해 소송 필요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박효상 기자

의료계에서 그간 번번이 무산됐던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가칭) 제정이 이제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고의 또는 중과실을 제외한 정상적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해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21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는 대한의사협회 주관,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필요성 토론회가 열렸다.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사건과 관련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대목동병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 7명이 지난 15일 대법원에서 전원 최종 무죄 판결 받았다.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감염돼 패혈증으로 전원 사망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의료진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신생아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7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필수의료 붕괴는 국민 건강과 생명에 중대한 위해를 끼친다. 더 늦기 전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필수의료과를 지원하고 싶어도 잦은 법적 분쟁 위험성과 부담감으로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지원율은 20%나 급감했다”는 예를 들었다.

2010~2019년 검찰의 범죄인 주요 처분 결과에 따르면 전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건수 중 전문직이 22.7%를 차지했다. 전문직종 중 의사가 73.9%였다. 업무상과실치상 피해정도를 살펴보면 전치 1개월 이하가 57.5%로 경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의료행위별 의료과실 원인은 수술과 처치상 의료과실이 전체 과실의 66.7%였다. 해외의 경우, 영국과 일본은 경찰 신고부터 기소 건수 자체가 한국과 비교해 눈에 띄게 적다는 게 의료계 측 설명이다. 

의료계는 의료행위 중 발생한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부담을 △왜곡된 의료수가 △열악한 근무환경과 함께 필수의료 기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필수의료 진료과목은 환자 생명과 직결된 분야인 만큼 고난도, 고위험 수술이 많다. 의료인이 의료과오 없이 최선을 다해도 환자 사망 등 좋지 않은 결과의 발생 위험이 상존한다는 설명이다.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악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인에게 빈번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현실은 의료인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특히 형사처벌 가능성은 의료인에게 부담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면서 “제도적 보완장치로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필수의료, 진료행위 범위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진석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형사법은 명확성이 중요한데 필수의료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진료행위는 어디까지로 봐야할 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며 “필수의료에 대해서만 규정하기 보다는 의료 전 영역으로 특례법 적용을 확대하고 무면허, 미용 목적 의료행위 등 예외적인 부분은 적용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바꾸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환자단체에서는 특례법 제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윤구현 간사랑동호회 회장은 “의협에서 제시한 수치는 기소건수 중심인데 실제 유죄건수를 따져보면 연평균 21건에 불과하다”면서 “의사들은 최선의 의료행위였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걸 판단하려면 소송이 필요하다. 기소 자체를 막자는 게 가능한 목표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민식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업무상 과실치상 형사처벌하는 법이 많이 나타나는 추세와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청과는 의료사고 분쟁이 많은 과도 아닌데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진 배경이 과연 의료사고 때문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박미라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사고중재법이 제정돼 운영되고 있지만 의료사고와 관련한 형사처벌 특례 조항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료계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면서도 “특례법은 순기능도 있겠지만 이용자인 국민의 권리구제수단을 제한하는 방식이므로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보완책이 병행 검토돼야 한다. 복지부로서는 다른 직역과의 형평성, 그리고 국민 법감정을 고려해서 계속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