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과 반 년 동안 시 낭독 모임을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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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옥 기자]
▲ 시 낭독 모임 들어가는 길 줌으로 만나는 길의 첫 화면 |
ⓒ 임명옥 |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줌(zoom)으로 만나서 시를 읽자는 제안을 했다. 코로나 시대라서 줌으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참 좋다고, 우리도 그렇게 줌으로 만나 보자고 한다. 친구는 자신이 단톡방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어 올릴 테니까 줌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하고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줌 모임으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자는 친구의 제안이 신선해 50대 중반인 우리는 해 보기로 했다. 줌으로 회의나 모임을 해본 일이 없었기에 나는 딸의 도움을 받아 줌 앱을 깔았다.
낭독의 기쁨
드디어 약속한 목요일 밤, 처음으로 줌 앱을 열고 회의 참가를 누르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화면에 내 얼굴이 보이고 모임을 제안한 친구 얼굴이 보이고 다른 친구들도 몇 명 들어와 있었다. 더구나 목소리도 들려서 서로의 표정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주에 한 번씩 우리의 시 낭독 모임은 시작됐다. 서울과 경기, 충청도 등 각자의 공간에서 줌을 통해 여러 명이 만나 모임을 한다는 것은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1시간 30분 동안 줌으로 만나 모임할 때마다 보통 다섯 편에서 일곱 편의 시를 같이 살펴본다. 줌 호스트인 친구가 단톡방에 올려 놓은 시를 한 사람이 낭독하고 그 다음 번에는 다른 사람이 같은 시를 또 한 번 낭독하는 방식으로 읽고 듣는다. 나는 시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 친구가 말해 준 시집을 구입했다.
친구들이 낭독하는 시를 듣고 있으면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친구가 읽는 시를 따라가다 보면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시가 다가온다. 묵직하게 혹은 아프게 혹은 힘있게 와 닿는다. 어느 때는 마음에 와 닿는 시구에 밑줄을 쳐 가며 듣는다.
내 차례가 되어 시를 낭독하다 보면 눈으로 시를 읽을 때와는 다른 몰입을 하게 된다. 눈으로만 읽던 시어가 입과 귀를 통해서 공감각적으로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시를 마음깊이 받아들이고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 한 편을 두 번씩 낭독해 읽고 난 후에 우리는 시에 대한 감상을 곁들인다. 어떤 친구는 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며 오늘날에 빗대어 얘기하고 어떤 친구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화자의 상황과 연관지어서 이야기한다.
나는 나대로 느낀 점과 인상적인 시구들을 이야기하는데 친구들의 감상을 듣고 있으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시의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면을 알게 되는 기쁨도 있다.
▲ 시 낭독 모임의 시집 창작과비평사 한국현대대표시선 |
ⓒ 임명옥 |
전에 많이 읽었던 김지하나 양성우, 정희성이나 김준태와 같은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시들이 있어 시 낭독 모임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하석의 '못2'나 김승희의 '추운 사랑', 이성선의 '저녁산을 바라보며' 등의 시들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김승희 시인의 '추운 사랑'을 읽으며 우리는 모두 마음 아파했다. 1983년에 발표된 시가 꼭 지금 일어난 참극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노래한다.
아비는 산에 묻고
내 아기 맘에 묻어
사랑은 그냥 춥고
천지는 문득 빙하천지네
1980년대 시인이 느꼈던 춥고 아프고 시리고 가슴 답답한 상황이 지금 또 반복되는 거 같아 우리는 시에 공감하고 시대에 슬퍼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젊고 어린 자식들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과 참극으로 인해 유족들이 느낄 세상이 어둡고 추운 빙하천지일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시렸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추운 겨울, 여름부터 시작한 시 낭독 모임이 벌써 반 년이 다 되어 간다. 이 모임을 하면서 우리는 공감과 연민을 나누었다. 오래된 친구들이지만 새롭게 알게 되고 배우는 부분도 있었다. 더구나 우리의 일상이 시를 통해 깊어졌고 이야기의 폭도 넓어졌다.
내년에도 그후로도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해서 서로의 아픔과 힘듦을 나눌 수 있기를, 그리고 시 낭독 모임을 통해 우리의 삶이 더 깊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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