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보단 실리 축구... 카타르월드컵 전술 트랜드
[박시인 기자]
▲ 킬리안 음바페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른 음바페는 프랑스의 주요 루트인 왼쪽 측면 공격을 담당했다. |
ⓒ 피파월드컵 공식트위터 캡쳐 |
사상 첫 중동이자 겨울에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이 29일의 대장정 끝에 막을 내렸다. 언더독의 반란, 리오넬 메시의 황제 대관식 등 풍성한 스토리 라인과 역대 가장 많은 골(172득점)이 터지면서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전해준 월드컵이었다.
세계 축구의 전술적인 트렌드를 보는 재미도 남달랐다. 많은 활동량과 역동성, 전방 압박의 중요도는 앞선 대회들보다 훨씬 부각됐다. 점유율이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빠른 공격 전환, 유연한 전술 운용, 적절한 선수 교체, 디테일한 전술을 보유한 팀들이 강세를 보였다. 또, 조직적이고 세밀한 중원 압박이 강조된 탓에 공격의 방향성이 주로 측면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짙었다.
승리와 직결되지 않는 점유율
축구 경기에서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점유율이다. 골을 많이 넣고, 적게 먹어야만 승리하는 축구에서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수록 최소한 상대에게 공격권을 내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점유율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마지막 목표인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대표적으로 한때 티키타카로 세계 축구를 선도한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도 가장 높은 76.8%의 경기당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4경기 중 독일전을 제외한 3경기(코스타리카전 1045개, 일본전 1058개, 모로코전 1019개)에서 1000개 이상의 패스를 시도했다.
코스타리카전에서 7-0 대승을 거뒀지만 이후 일본, 모로코를 상대로 공격 진영에서의 날카로움과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한계를 노출하며, 16강에 머물렀다. 이로써 스페인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이후 3번의 대회에서 한 차례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한 16개 팀 가운데 무려 7개국(덴마크, 독일, 벨기에, 멕시코, 에콰도르, 캐나다, 세르비아)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4년 전 2018 러시아 대회에서는 경기당 평균 점유율에서 50% 이상을 기록한 12개 팀 가운데 독일(74.7%), 사우디(59.1%), 튀니지(52.9%) 등 3개국만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높은 득점 비율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64경기 동안 172골이 터졌다. 171골이 나온 1998 프랑스, 2014 브라질 대회를 넘어서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무엇보다 슈팅 대비 골 정확도가 매우 향상됐다.
지난 19일(한국시간) 영국 BBC가 분석한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 통계에 따르면 이번 대회의 슈팅수 1458개는 2002 한일 월드컵부터 집계한 이후 가장 적은 수치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선 네 번의 월드컵과 비교해 페널티 박스 안에서 나온 득점은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이 가장 많았다. 박스 안 슈팅 비율은 62.7%, 박스 밖은 37.3%였지만 172골 가운데 무려 160골이 박스 안에서 발생됐다. 92.9%로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확률 낮은 중거리 슈팅에 의존하기보단 페널티 박스 지역 내에서 세밀한 부분 전술과 정밀한 골 결정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리느냐가 중요한 지표임을 방증한다.
▲ 일본 대표팀 일본은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후반 들어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를 통해 강호 독일-스페인을 잇따라 제압했다. |
ⓒ 피파월드컵 공식트위터 캡쳐 |
선수 교체 5장 증가, 다양한 전술 변화 가능
선수 교체가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확대되면서 두터운 스쿼드와 전술 변화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단순하게 선발 11명만으로 축구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후반전에 들어온 교체 자원들이 경기 흐름을 바꾸고, 경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 월드컵 64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선수들이 합작한 공격포인트는 30골 21도움이었다. 감독들도 경기 상황에 따라 교체를 활용함으로써 유연한 대처와 전략 수정이 용이해진 것이다.
특히 일본은 전반과 후반의 상반된 전략으로 재미를 본 대표적인 국가다. 독일, 스페인 등 강호를 맞아 전반에는 완전히 수비 진영으로 내려서며 버티는 데 주력했다. 두 경기 모두 전반에 선제골을 내주며 전략적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에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후반 들어 포메이션을 백스리로 바꾸고, 좌우 윙백에 미토마, 이토 준야 등 빠른 주력과 직선적인 돌파가 가능한 전문 윙포워드 자원을 교체 투입해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수비 라인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린 뒤 전방 압박의 강도를 높이며 상대의 실수를 유도했다. 그 결과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에 각각 2-1 역전승을 거두며 죽음의 조에서 1위로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현대 축구의 트렌드는 엄청난 활동량과 기동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 전방 압박이 중요시되면서 제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수비 가담에 소홀히 할 수 없다. 한 발이라도 더 많이 뛰고 체력적으로 무장된 선수들만이 살아남는 추세다. 5명의 교체 자원 투입이 가능함에 따라 체력 안배가 수월하고, 많은 활동량을 기반으로 하는 축구가 가능해졌다.
물론 교체 카드의 증가로 인해 상대적으로 스쿼드가 빈약한 '언더독'들은 토너먼트로 갈수록 한계를 드러냈다. 아무래도 선수층이 얇은 탓에 주전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체력 고갈로 이어졌다. 두터운 스쿼드를 보유한 모로코는 4강 신화를 달성하며 이변을 일으켰지만 나머지 한국-호주-미국-세네갈 등 비유럽 국가들은 16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측면 지향적인 공격 전개
대체로 공수 라인을 컴팩트하게 가져가면서도 미드필드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팀들이 대다수였다. 밀집된 공간으로 진입할수록 숫자 부족과 패스 경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중앙보단 측면 공격을 선호하는 팀들이 많았다.
축구전문통계업체 '후스코어드'에 따르면 왼쪽, 중앙, 오른쪽으로 공격 방향을 3등분할 때 프랑스의 왼쪽 공격 비율은 무려 41%에 달했다. 왼쪽 풀백 테오 에르난데스, 2선 왼쪽 윙어 음바페에게 집중적으로 공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주무기인 왼쪽 공격을 중심으로 2회 연속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4강에 오른 모로코는 오른쪽 공격이 무려 46%로 나타났다. 오른쪽 풀백 하키미, 중앙 미드필더 오른쪽에 위치하는 우나이, 그리고 오른쪽 윙어 지예시가 만들어내는 트라이앵글 전술이 최적의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조별리그에서 튀니지, 덴마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16강에 오른 호주의 경우 중앙 공격은 고작 16%에 불과했다. 측면에서 공간을 만든 뒤 최종적으로 공격수에게 크로스를 올리는 전술이었다. 스쿼드의 약세를 피지컬의 우세로 상쇄한 케이스다. 호주와 더불어 16강에 진출한 세네갈과 미국의 경우 역시 중앙 공격은 21%, 모로코는 22%에 머물만큼 무리하게 가운데로 고집하지 않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왼쪽은 34%, 오른쪽은 43%의 비율을 보였다. 이에 반해 중앙은 23%로 매우 낮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좌우 풀백 김진수와 김문환을 최대한 높은 지점으로 전진시킨 뒤 빌드업을 전개했다. 두 명의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는 측면 공간으로 빠르게 오픈 패스를 공급하며 공격을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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