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작가로 불릴 수 있겠죠” 세번째 소설 낸 차인표
“삶의 기준은 행복… 오늘 행복하기로 결정하세요”
차인표를 만났다. 배우가 아닌 ‘소설가’로서다. 그는 최근 11년 만에 세 번째 장편소설 ‘인어 사냥’을 발표했다. 책을 펴낸 배우가 드물지 않지만 소설로 세 권까지 쓴 사람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개인 사무실에서 마주한 그에게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글이 안 써지는 순간엔 너무 괴롭지만 고통을 상쇄하는 기쁨이 있어요. 그 기쁨이 가장 컸던 게 이번이었어요. 예전에는 길을 가기 바빴다면 이번에는 주인공과 동행하면서 길옆도 둘러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소설의 배경은 1902년 강원도 통천 인근의 외딴섬. 어부 박덕무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데 이어 딸 영실이마저 치료가 어려운 폐병에 걸리자 절망에 빠진다. 그를 찾아온 공 영감이 누런 기름 한 방울을 먹이자 영실이의 고통이 잦아든다. 기름의 정체는 인어를 푹 고아 만든 인어 기름. 먹으면 1000년을 살 수 있다는 불로장생의 영약이다. 덕무는 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인어 사냥에 나선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고 잘 다듬어진 문장은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하다. 생명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메시지도 선명하다.
-책장이 쭉쭉 넘어가던데요.
“좀 쉽죠?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직진하는 스타일이라 글도 그래요. 가독성과 메시지, 재미가 목표였어요. 영화가 재미있으면 중간에 끊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두세 시간 동안 보잖아요. 제 책도 그렇게 쉽게 읽혔으면 했어요.”
-한국에도 인어 설화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조선시대 ‘어우야담’에 나오는 ‘어부에게 잡힌 인어가 흰 눈물을 비처럼 쏟았다’는 문장이 모티브가 됐다고요.
“바다에 접한 나라에는 거의 인어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일본 스코틀랜드 브라질 뉴질랜드 러시아…. 지역과 시대별로 모습과 성격이 다르지만 인어가 왜 공통적으로 등장할까 궁금해졌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눈물 흘리는 인어라면 우리 민족의 원천적인 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한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담아서 우리의 인어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는 2009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첫 소설 ‘잘 가요 언덕’을 펴냈다. 할머니들이 계신 나눔의 집에 봉사하러 다니면서 당시 11세이던 아들 정민군에게 할머니들에 대해 설명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소설이었다. 2011년에는 고달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세 남자의 이야기를 위트있게 담은 ‘오늘예보’를 선보였다. 첫 번째 책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출간됐고, 두 편 모두 몇만권씩 찍을 정도로 꽤 많이 팔렸다. 이후 단편영화 ‘50’과 ‘샤또 몬테’의 시나리오를 썼으니 꾸준히 글을 써온 셈이다.
-계속 글을 쓰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자유로움이에요. 창작만큼 또 다른 작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없어요.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려볼 수 있고요. 1만년 전 신석기인이 돼 씨를 뿌릴 수도 있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성 위에서 몽골군이 침략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울분을 삼킬 수도 있고요. 그것을 써내려가는 게 소설가들의 일인 것 같아요.”
-이번 책 초고를 3개월 만에 끝냈다고요.
“매일 예닐곱 시간을 앉아서 썼어요. 첫 책이 정말 오래 걸렸는데 쓰다가 멈추는 순간 6개월, 1년이 훅 가버렸어요. 그래서 하루에 3000자를 쓰고 다음 날 2000자를 지우더라도 ‘3보 전진 2보 후퇴’의 심정으로 했더니 석 달이 걸리더라고요. 대신 수정하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돌파구를 찾으셨어요.
“아침에 책상 앞에 앉으면 저는 꼭 맨 앞 페이지를 펴요.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단어 하나라도 고치고 나서 그날 써야 할 곳으로 가요. 다시 첫 페이지로 가는 게 첫 번째 생각, 초심으로 돌아가는 준비 운동이라고 할까요. 그러다 보면 막혔다가도 갑자기 돌파구가 생각날 때도 있고, 제일 좋은 건 자다가 꿈에서 떠오를 때예요. 어느 책에서는 꿈에서도 작품을 생각해야 진짜 작가가 된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작가가 차인표라는 걸 내세우지 않았으면 오히려 제대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한편으로 삐딱하게 보자면 본업인 배우에 영화 감독과 제작까지, 우물을 여러 개 파놓은 것 아닌가요.
“연출을 했던 것도 20년 넘게 연기자로서 작가의 표현의 도구로 살았다면 이제는 제가 좀 더 능동적으로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어요. 책에 대한 평가는, 일주일에 수백권의 신간이 나오는데 제가 어쩌다 유명해진 사람이라서 제 글을 알릴 기회를 얻었잖아요. 죄송할 만큼 특별 대우를 받는 거죠. 그래서 이전 책들 때는 TV 토크쇼부터 거의 다 거절했어요.”
-인터뷰를 망설였던 게 그래서였군요.
“그런데 이번 책을 쓰고 보니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소개하는 것까지가 글을 쓴 사람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저의 콤플렉스 아닌가 싶은데, 두 번째 책까지만 해도 연예인이 취미로 글을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동력을 잃어버렸다고 할까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외출을 못 하게 되면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됐고, 다시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이번 책은 독자 반응도 좀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고정관념이 줄어든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1, 2년에 한 편씩 쓰면 5~6년 후에는 작가로 불릴 수도 있겠죠.”
-1, 2년에 한 편씩이면 굉장한 다작인데요.
“루틴의 힘을 빌려야죠. 의지만으로는 힘들 때 습관이 대신 일을 해주잖아요. 이번 원고를 쓸 때도 매일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났어요.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래요. 새해에 이루고 싶은 건 여러 가지 있지만 목표는 딱 하나, 턱걸이 스무 개로 세웠어요. 지금 열 개 넘게 하니까 한 달에 한 개씩만 더 하면 이룰 수 있거든요. 오롯이 내 노력만으로 실현 가능한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면 거기에 삶의 영점이 맞춰진다고 생각해요. 그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루틴이 생기고요. 아주 사소한 턱걸이 하나가 다른 것을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그는 ‘루틴’이라고 말했지만 ‘성실함’으로 들렸다. 그의 아내인 배우 신애라는 언젠가 SNS에 ‘남편의 존경스러운 점’으로 ‘첫째, 매일 운동한다. 둘째, 매일 아침저녁 부모님께 안부를 여쭌다. 셋째,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썼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성실함과 반듯한 언행으로 데뷔 이래 한 번도 입길에 오르내린 적 없는 모범 연예인이자 선한 영향력의 아이콘이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원을 호소하면 수천명이 해외결연에 동참했고 구호단체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두 딸을 공개 입양해 키우면서 입양에 대한 인식까지 바꿔놓았다.
-검색하면 ‘차인표 명언’이 쏟아질 만큼 감동을 주는가 하면 때로는 과하다 싶은 열정으로 웃음을 주시잖아요. 드라마 속 ‘분노의 양치질’ 연기가 SNS에서 개그 코드가 된 게 넘치는 에너지 때문인데요.
“대신에 빨리 지쳐요. 예능 작가분들이 저더러 엄청 빨리 달리는데 금방 방전된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급한 성격 탓도 있는 것 같아요. 바른 생활 이미지 때문에 제가 경직되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재미없을 것 같고, 장난 안 칠 것 같고. 그래서 부담스러운 건 있지만 연예인으로 살면서 대중이 부여해주는 이미지가 없으면 더이상 일할 수 없잖아요. 어떤 이미지든 감사한 마음이에요.”
-청춘스타로 출발해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이에요. 나이 듦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이가 들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뒤에 오는 사람들한테 조금씩 물려주고 잘 비켜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물려주느냐 빼앗기느냐라면 저는 물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와 여건을 만들어 놓는 것도 중요하죠.”
-무엇을 하든 삶의 기준을 얼마나 행복한가에 둔다고 했어요.
“행복하다는 건 내 느낌이니까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행복하다고 결심하고 그 결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다 보면 하루가 끝났을 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예전의 저는 반대로 살았어요. 계속 내가 행복해질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 조건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제는 생각이 바뀐 거죠.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렇게 바뀐 계기가 있었나요.
“10년 전 동생을 암으로 잃었어요. 그때 많이 힘들었고 인생이 이렇게 짧고 허망한 거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깊이 고민했어요. 인생을 하루로 압축하면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잘 사는 게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과 같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자녀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가치관이 있으세요.
“두 가지를 얘기해요. 매일매일 기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살자, 그리고 감사하자. 감사가 생활의 중심이 되면 그게 너를 기쁘게 하는 도구가 되고, 어려울 때 돕는 도구도 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되니까 항상 감사하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잘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 벽에는 그가 18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 활동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한때 50명 넘는 세계 각국의 빈곤 아동들을 지원하다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후원을 ‘졸업’해 지금은 20여명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로 발이 묶여 있었지만 내년에는 후원하는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비전 트립을 가고 싶어요. 15~16년 전에 후원했던 아이와 처음 만난 장소에서 같이 사진도 찍어보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오늘 인터뷰에서 놓친 질문이 있을까요.
“음, 나이 든 사람한테는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지 않더라고요. 저한테 그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답하겠어요.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태어났을 때 축하해 주고 함께 살아주고 하늘나라 갈 때 배웅해주고, 이게 다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이미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제 아내가 보육원 아동이나 보호 종료 아동들을 위해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일들도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인터뷰용 사진 촬영을 마친 후 그가 갈아입고 온 옷에 있는 ‘야나’(You Are Not Alone‧너는 혼자가 아니야)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신애라가 홍보대사로 나선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 사단법인의 이름이다. ‘아내는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한 팀’이라던 그의 예전 인터뷰가 떠올랐다. 멋진 부부, 멋진 팀이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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