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저는 손글씨 연하장을 고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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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연말이다. 올해 저무는 날을 카운트하는 시점이다. 한 해 회한과 아쉬움이 많았지만 혹여 주변에 감사할 사람이 있으면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내게 영감을 주거나 용기를 북돋아 준 분들을 기억해 낼 시간이기도 하다.
이맘때 습관처럼 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한해 특별히 고마운 분에게 손글씨 연하장이나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는 작업이다.
▲ 손글씨 연하장 이미지 자료 |
ⓒ 이혁진 |
이래저래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 중에 가깝게 교분을 나눈 사람을 선정했는데 막상 보낼 분은 몇 안 됐다. 어버이 같은 은사님과 내게 각별한 선후배 몇 사람이 전부다. 나의 쾌유를 기원하는 음악을 선곡해 매일 아침 6시에 보내주는 절친도 들어있다.
보낼 대상을 고른 후 혹시 추가할 사람이 있는지 하루 더 시간을 가졌지만 열 명이 채 넘지 않았다. 카드 받을 분들을 하나둘 떠올린다. 쪼그라드는 대인관계 보폭이 새삼 서글프지만 나이 들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관계 다이어트'라 여기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보낼 몇 줄 안 되는 글귀와 사연을 작성하는 것이다. 한 분 한 분 그와 공유한 시간과 추억을 끄집어내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만 내겐 행복한 시간이다.
요새는 웬만한 대화와 인사는 '카톡'이나 '밴드' 등 간편한 SNS로 통하는 세상이다. 연하장도 SNS가 대신하고 있다. 나 또한 몇 년 전만 해도 그럴듯한 '모바일 연하장'을 한두 개 골라 단체 메시지로 보낸 후 새해 인사를 마친 양 행세했다.
그런데 아무런 의미 없이 건성으로 '축하해' 하는 연하장을 되받아 따라 하면서 마음이 영 불편하고 씁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형식적이며 의례적인 모바일 연하장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이에 모바일 연하장을 받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별도의 답장을 하지 않는다. 이름만 대충 써서 보내는 연하장이나 회사직함까지 인쇄한 연하장도 자주 받는데 식상하기는 마찬가지. 이후 나는 연하카드를 결코 모바일로 보내지 않고 있다.
사실 내가 손글씨 연하카드를 보내게 된 것은 학교 선배의 자상한 배려 덕분이다. 선배는 자주 만나면서도 연말이면 펜으로 정성껏 쓴 카드를 내게 보낸다. 카드에는 따뜻한 격려는 물론 예리한 통찰력까지 담고 있어 시선이 오래 머물게 된다.
이렇게 선배 연하카드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 묘한 매력이 있어 해마다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5년 전부터는 아예 나도 선배처럼 그런 연하카드를 보내고 있다.
손글씨 연하카드는 근래 내가 실천한 결심 중에서 손쉬우면서도 가장 강력한(?) 감정이입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른바 친서(親書)의 진정성을 깨달은 것이다.
손글씨 예찬
손글씨는 상대 즉 '수신인'이 존재하기에 읽는 사람의 입장과 심중을 헤아려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를 천천히 바르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속성의 문자메시지와 근본적으로 깊이와 울림이 다르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편지를 직접 주고받는 사람끼리는 만남도 어딘가 설레고 더 반가운 느낌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 나누는 인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편지의 잔잔한 감동이 직접 만나 인사할 때도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손글씨의 장점은 컴퓨터 활자체와 다르게 글씨 속에 작은 위로와 친화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씨를 생물체(生物體)라고 하는 이유이다.
손글씨는 또 선한 영향력을 낳는다. 일종의 '나비효과'랄까. 상대로부터 더 정감어린 손편지를 받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설령 답장을 받지 않더라도 '인사를 제대로 했다'는 뿌듯한 보람은 여전히 충만하다.
손으로 직접 쓴 글씨는 사람의 마음씨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손글씨에서 체온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설파한다. 십분 공감하는 이야기다. 편지를 교환하는 대상이 누구든 벌써 그와는 '남다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노마드' 세상에 번거로운 손글씨 카드나 편지가 외면받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친구 중에는 내가 하는 손글씨 고집이 '바보 같다'며 나무라는 친구도 있다.
애써 말리는 친구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내 수고로움보다 상대에게 몇 배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손글씨만큼 '착한 좋은 소통법'은 없다.
내가 연하장 하나에 너무 소심한지 모르겠다. 이제는 손으로 쓴 연하카드를 보내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고 마음이 찝찝하다. 하지만 내가 보낸 연하카드를 받고 기뻐할 상대를 떠올리면 벌써 훈훈해진다. 상대도 아마 내 연하카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파로 추운 연말연시, 손글씨 연하장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함께 하는 것과 같다. 손글씨 소통과 대화가 활발한 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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