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훈의 축구·공·감] 메시가 있잖아
카타르월드컵 우승을 이끈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35·파리생제르맹)는 요즘 ‘우승 트로피 놀이’에 푹 빠진 듯하다.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려놓는 사진들마다 FIFA컵(월드컵 우승 트로피)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뜨겁게 환호한 컷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트로피를 무릎에 올려놓고 찍은 장면에 이어 트로피를 품에 안고 잠이 든 침실 사진도 공개했다. 트로피와 함께 느긋하게 마테차를 즐기는 모습에 이르면 보는 이도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 느끼는 환희와 감격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월드컵 타이틀이 없더라도 메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선수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Ballon d’Or) 트로피를 7번(2009·10·11·12·15·19·21)이나 받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차례(2006·09·11·15) 정상에 올랐고, 올림픽(2008)과 남미 국가대항전인 코파 아메리카(2021)도 제패했다. 클럽월드컵(2009·11·15)과 20세 이하 월드컵(2005) 정상도 밟아봤다.
각종 우승 트로피를 싹쓸이한 그가 월드컵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한 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한 단계 더 올라서려는 목표 의식과 도전 정신 때문이다. 메시는 2006년 독일 대회를 시작으로 4년마다 어김없이 본선 무대에 출전했지만, 좀처럼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개인 통산 5번째이자 마지막 기회인 카타르월드컵에서 기어이 정상을 밟았다.
메시의 이러한 4전5기 성공 스토리가 심각한 경제난으로 고통 받는 조국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엔돌핀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30년 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92.4%가 올랐다. 중앙은행이 지난 9월 기준금리를 75%로 인상했음에도 폭등을 거듭하는 물가는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어려운 시기에 메시가 월드컵 우승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지금 아르헨티나 사람들 사이에선 ‘messy, but messi(모든 게 엉망이지만, 우리에겐 메시가 있잖아)’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부디 메시가 거둔 성과를 발판 삼아 그들도 힘차게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20여 년 전 외환위기에 신음하던 중 메이저리거 박찬호(49), 골퍼 박세리(45)의 활약에 새 힘을 얻은 한국 국민들처럼.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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