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해진 조폭②]음지에서 양지로… 檢 ‘수사 방치’
"조폭범죄, 부패범죄로 보고 수사 필요"… ‘강력부’ 부활 시급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음지에서 활동하던 조직폭력단체(조폭)가 점차 양지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합법을 가장한 업체 등을 운영하면서 자금을 확보하고 정계나 재계의 주요 인물과 친분을 쌓으면서 제도권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체를 설립한 뒤 협박 등을 통해 부품을 납품한다거나 부도기업이나 과다 채무회사를 상대로 기업사냥꾼들과 함께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번듯한 기업을 인수해 합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게 최근 조폭들의 사업 형태다.
심지어 조폭들을 일상에서 마주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전·현직 조폭들이 유튜브 삼매경에 빠지면서, 앞다퉈 채널을 개설하고 과거 범죄행위들을 무용담처럼 털어놓으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조폭들이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실체 파악이나 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檢, ‘조직범죄’ 담당 부서 통폐합… 검·경, 조폭 수사 사실상 방치검·경이 단속한 조폭의 전형적인 범죄 유형인 갈취·우발폭력·세력결속범죄는 2017년 2293건에서 2018년 1813건, 2019년 1135건, 2020년 844건, 지난해 676건, 올해 6월 기준 219건으로 급감했다. 최근 조폭들이 고수익의 지능화된 범죄를 저지르는 추세여서 갈취·폭행 등 단순 범죄 자체가 감소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10년대 초까지 수사기관의 대대적인 조폭 단속과 강력한 수사로 조폭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범죄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시기 조폭들은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범죄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설 도박장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개설로, 수백억원대 ‘대출 사기’ 범죄로, 해외 원정 카지노 도박 알선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수사망을 피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폭의 새로운 범죄 유형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폭 수사 조직을 축소시켰다. 대검찰청은 2018년 전국의 조폭 수사를 지휘하는 강력부를 반부패부(특수부)에 편입시키고, 2020년 조폭들을 전담해 관리·수사하던 대검 ‘조직범죄과’를 마약과와 통폐합했다. 조폭들을 떨게했던 검찰의 강력부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검찰의 조폭 수사는 명맥이 끊어졌다. 사실상 조폭들이 활개를 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은 조폭들이 암약하는 데 되레 기름을 붓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조폭범죄 수사 분야에 있어서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가 대폭 제한됐다. 또 지난해 7월 직제개편을 통해 직접수사 부서가 통·폐합되면서 전국 6대 지검에 각각 설치돼 있던 강력부가 2개(인천, 대구)로 축소됐고 마약·조직범죄 전담검사수가 전체적으로 감소했다. 현재는 서울중앙지검이 추가돼 전국 검찰청 중 단 3곳에만 강력부가 있다.
◆‘조폭 범죄’ 연구도 2006년 이후 無… "조폭 범죄 심상찮다"조폭에 대한 연구도 사실상 2006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조폭의 범죄 유형이 지능범죄 형태로 변모하면서, 폭력·갈취·도박 등 눈에 보이는 범죄들을 연구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최근 조폭이 저지르는 범죄를 연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2010년대 초반까지 조폭 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했던 것도 연구가 주춤하게 된 계기가 됐다. 조폭 범죄를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조폭이 곧 야쿠자에게 먹히는 게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박준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폭력조직이 옛날처럼 겉으로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고 행사가 있을 때만 나타나는 정도"라며 "(조폭들이) 하는 사업도 국내보다는 해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워낙 강력하게 단속을 해서 (연구자들은) 사실 우리나라 조폭들은 고사상태에 있다고 보고 있었다. 거의 와해 상태에 있었다"면서 "눈에 크게 보이지 않으니 10여년 정도 연구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맞고, 최근 들어 조폭 범죄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폭의 지능범죄는 사실상 부패범죄의 영역으로 보고 대비를 해야 하는데, 검경의 수사는 단순 폭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태다. 최근 조폭들이 저지르는 지능범죄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조폭의 지능범죄 수사는 기본적으로 부패범죄 수사로 봐야 한다"며 "(조폭의 지능범죄는) 공직 부패와도 연계가 되기 때문에 조직을 때려부수는 수사보다는 자금줄을 차단하는 수사가 우선이 돼야 하는데, 최근 조폭범죄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위축된 檢 ‘조폭 수사’… 대응 어떻게?검찰의 조폭 범죄 수사는 사실상 2016년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자 당시 검찰 수뇌부는 조폭 수사 인력을 보이스피싱 쪽으로 투입했고,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 조폭들이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조폭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정보수집 기능이 위축된 것도 검찰의 조폭 수사가 약화되는데 한 몫을 했다.
각 지검·지청별로 조폭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범죄에 대한 관리가 가능한데, 정보 수집 자체가 ‘개인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어서 수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는 조폭을 수사하는 부서를 한 곳에 모아 정보 등을 공유하면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단순 폭력에서 금융범죄로 영역을 넓힌 조폭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조폭을 전담하는 강력부뿐만 아니라 반부패부, 금융조사부 등 연관 부서가 한 곳의 검찰청에 모여 ‘집적효과’를 누려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강력부, 반부패부, 금융조사부가 모두 있는 검찰청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검찰 관계자는 "조폭 범죄를 수사하면서 자금 흐름 파악하고 배후 세력까지 확인하려면 적어도 3개월에서 6개월까지 필요하다"면서 "이런 수사가 과거에는 서울중앙지검 등 6대 지검에서 가능했는데, 무너져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스피 상장사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조폭이 들어가 있을텐데, 자체적으로 벌인 범죄행위가 발각되지 않은 이상 건드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며 "조폭들은 교도소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다. 교도소 갈 생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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