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꿈꾸는 아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

차효림 2022. 12. 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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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매일 아침 아이의 공부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한 '엄마 학교'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D+1 방학 1일 차, 아이를 엄마 학교로 들였다.

아이의 방학을 엄마가 계획하다니! 아이가 내게 화를 안 낸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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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효림 기자]

동지를 일주일 앞둔 지난주 목요일 아이가 첫 겨울방학을 맞았다. 제주에서 올해 1학년이 된 내 아이는 첫눈을 본 강아지처럼 그렇게 방학을 반겼다.

방학(放學)은 문자 그대로 학교를 잠시 쉬는 것이다. 하지만 배움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방학 동안에는 정형화된 교과에서 벗어나 학교 밖에서 학습을 이어 나가야 하므로 어쩌면 더 세밀한 계획과 부모의 관심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어릴 땐 짧게만 느껴졌던 방학이 부모가 되니 그렇게 길 수가 없다.

내 아이의 첫 겨울방학. 여행과 공연에서부터 여러 현장 체험까지 몇 달 전부터 고심하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물론 매일 아침 아이의 공부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한 '엄마 학교'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D+1 방학 1일 차, 아이를 엄마 학교로 들였다. 첫 교시는 영어였다. 오늘은 짧은 글 한 편을 읽고 문제 세 개를 푸는 것이 고작이었다. 책상에 앉으려던 아이는 오줌이 마렵다며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거실로 나가보니 아이는 행위예술이라도 하듯 대자로 뻗어있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에게 내려온 썩은 동아줄처럼 끊어질 것 같았던 내 정신줄을 겨우 다잡았다. 아이를 친절히 데리고 공부방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갑자기 목마르다며 물을 울부짖었다. 냉수 한 컵을 가져다주자 목마른 원효대사 마냥 단숨에 원샷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는 당당하게 한 컵을 더 주문하는 패기까지 과시했다.

지식에 그렇게 목마르면 좋으련만. 방학 첫날부터 집중하지 못하는 내 아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갑자기 오은영 박사를 빙의하며 아이의 심리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었다. 빈 종이를 아이에게 건네며 꿈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며 한석봉보다도 더 근엄한 자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 스파이
2. 경찰
3. 동물사육사
4. 비밀 요원

옳거니. 모두가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하는 직업이었다.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너 스파이가 되려면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 알아? 스파이 되는 시험 엄청 어려워."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스파이가 무슨 시험을 봐? 그냥 잘 숨고 잘 쫓으면 되지!"

아이는 곧바로 책상 아래 납작 엎드려서 주위의 적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도 빨리 숨어. 악당들이 발견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유아인보다 어이가 없는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일 것이다. 바닥에 엎드린 아이를 보니 그 순간 내 어릴 적 방학이 떠올랐다. 눈뜨면 친구들과 장화 신고 개구리를 잡으러 나가서 해질 때까지 원 없이 놀았던 방학. 그것이 나의 방학이었다.

아이의 방학을 엄마가 계획하다니! 아이가 내게 화를 안 낸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스파이를 꿈꾸는 아이에게 방학 내내 '놀고 쉬는 임무를 주겠노라' 다짐했다.

이제 아이에게 생애 첫 임무가 주어졌다. 이름하여 '작전명 놀멍쉬멍'. 놀멍쉬멍은 제주어로 '놀면서 쉬면서'라는 뜻이다.

아이가 첫 스파이 임무를 무사히 성공하길 바라며 엄마 학교도 방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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